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눈보 Sep 03. 2022

가족 관계를 채색할 수 있는 페인트가 있다면

[서평] 이희영 <페인트>


좋은 부모란 무엇일까?
아니, 그전에 부모가 된다는 건 어떤 것일까?
내가 부모가 될 자격이 있는 걸까?


막연히 '아이를 갖고 싶다' 뒤에는 늘 꼬리표처럼 붙는 질문들이 무수히 많았다. 현재는 몇 가지의 물음표만을 느낌표와 마침표로 바꾼 초보 엄마가 되었다.


아이를 낳기 한참 전에 위와 관련된 이야기를 엄마가 된 친구와 나눈 적이 있다. 언젠간 기회가 된다면 아기를 낳고 싶은데, 내가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를 포함한 앞선 걱정에 대해서 말이다. 친구는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이미 좋은 부모가 될 준비가 된 것이라며 따뜻한 조언을 건네주었다. 하지만 이런 고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나중에 있을 실수에 대한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런 고민을 하는 나에게 이 소설은 열린 질문을 자주 던져주었고, 주인공인 제누 301에겐 질문에 대한 따뜻한 공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이 소설은 자식이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미래에는 인구 감소가 큰 문제이기 때문에 아이를 낳고 키우기를 원치 않을 경우 나라에서 관리하는 고아원인 NC 센터에서 키워준다. 아이는 13살이 되는 해부터 부모 면접을 통해 부모를 선택할 수 있으며, 그 부모를 페인트라고 지칭한다. 하지만 19살 때까지 원하는 부모를 만나지 못하면 퇴소 후 자립하게 되는데, 사회에서는 NC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차별적 요소가 된다.


소설에서는 역으로 자식이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설정을 함으로써 부모 자식과의 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읽고 난 후 여러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나중에 아이가 성인이 된 후에 좋은 부모로서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 아이가 성장하면서 하게 될 무수한 선택들을 내가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결정하거나 권유할 수 있다면 그 적정 선은 어디까지 일까?


한 번은 남편에게 어떤 부모가 되고 싶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남편은 자식과 부모 간엔 친구 같은 부모, 엄격한 부모와 같은 수식어가 붙는 자체가 어색한 것 같다고 했다. 부모와 자식 간은 그 인연 자체로 완성되는 것이며, 아이가 태어난 후 함께 살며 맞춰가고 이해해나가며 비로소 가족이 되는 거 아니냐고. 결국 자식도 세상을 함께 살아나갈 인생의 동반자다. 소설 속에서 말하듯 '만들어가는 관계'이니까.


아마도 소설 속에서 말하는 페인트의 다른 뜻은, 의도와 다르게 다투고 상처 주는 관계 속에서도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보듬어 주며 함께 관계를 색칠해 나가는 paint를 말하는 게 아닐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