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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눈보 Sep 04. 2022

벌레가 되어도 출근 걱정은 하지 않았으면 해.

[서평] 박윤진 <벌레가 되어도 출근은 해야 해>

올해로 공무원 10년 차인 나는 임용 첫날 선배님이 했던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나와 동기를 첫 발령지로 데리고 오신 그 선배님은 이런저런 규칙과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안내해 주시다 별안간 창밖의 소나무를 가리키며 “저 나무가 잘 심어졌다고 생각해?”라고 물으셨던 것 같다. 그리곤 곧바로 “시장님이 잘 심었다고 하면 잘 심은 거야. 여기서 가장 전문가가 누군지 알아? 바로 시장님이야.”라는 말을 생각할 틈도, 한숨 돌릴 여유도 없이 질문 뒤에 급하게 이어붙이셨다. 나에겐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생각할 시간은 애초에 주어진 적이 없었다.


회사는 시스템이다. 시스템은 매뉴얼대로 움직인다. 따라서 개인의 개성이란 시스템의 고장 원인이 된다. 매뉴얼은 개개인을 1도 생각하지 않고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위 문장을 읽고 떠오른 일화다. 그리고 약간 우스운 사실은 임용 후 몇 년간은 귀에 피어싱 7개를 하고 귀가 훤히 보이는 숏컷을 한 채 탈 공무원스러운 모습에 스스로 흡족해하며, 누구보다도 조직에 순종적이고 헌신적으로 일했던 신규자 시절 나의 태도였다. 마치 부모님께 반항하고 싶어 문 쾅! 소리 나게 닫으면서도 혼날까 봐 “바람 불어서 그런 거야!”라고 씩씩대며 애꿎은 매트리스만 퍽퍽 때리는 심정이었던 것 같다.

때론 호기롭게 상사에게 내 생각을 열심히 전달했던 것 같다. 그러다 문득 그 행위를 멈추곤 했었다. 업무를 하며 아이디어를 내고 새로 일을 만들수록 얻어지는 건 내 업무분장표의 공백을 채우는 업무가 한 줄씩 늘어나는 것, 그리고 기타 등등의 업무를 떠맡게 된다는 것. 또 그 일로 인해 발생하는 민원 대응, 그리고 결재권자와 지역구 의원을 설득해야 하는 등의 산 넘어 산인 끝없이 이어지는 일, 일, 일.

그런 폭풍이 한차례 휩쓸고 가면 종국엔 현실 자각 타임을 가지며 풀린 눈꺼풀을 연신 부비는 내가 검은 모니터 화면에 덩그러니 비칠 뿐이었다. 그렇다고 봉급이 오르는 것도, 진급이 빨라 지지도 않는 시스템은 뻔히 알고 있었다. 5년 차가 넘어가며 내가 이렇게 일을 해야 하나? 어차피 큰 잘못을 안 하는 이상 잘리지도 않는데 그 메리트를 내가 너무 못 누리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들었다. 매너리즘에 깊이 빠졌었던 것이다.

깊은 고민에 잠기거나 벽에 부딪힐 땐 늘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으로 되돌아가곤 한다. 나는 쉽지 않은 걸 알지만 능동적으로 움직이길 원한다. 누군가가 답인 것처럼 건네는 말들에 물음표를 갖고 나만의 정의를 내리고자 한다. 무엇을 할 수 있다면 내 의지와 생각이 1그램이라도 담겨야 진정성을 느끼고 활력을 갖는다.

일을 비교적 덜 지치고 계속할 수 있는 이유에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승진과 타인의 평가가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적다. 대신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목적성과 공익성과 의미를 되새길 뿐이다.

내 바램은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해서 고민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만약 내가 승진과 칭찬이 최종 목표였다면 1일 1좌절, 1일 1무력감을 내 직업 뒤에 동전의 양면처럼 새겨놓았을 것이다. 그리고 수시로 뒤집어 보며 나의 보람과 기쁨의 패를 타인에게 오롯이 맡긴 채 무기력감에 빠졌을 것이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벌레가 되어도 ‘출근은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하며 먹고사는 일에 목을 매고 삶에 대해 사유는커녕 삶을 음미할 생각조차 못 한 채 끝끝내 껍데기가 되지 않을까?

자조적인 이 글은 서평을 빙자한 개인적인 반성문이다. 그리고 나열했던 생각을 잊고 싶지 않아 박제시키고 싶은 글이기도 하다. 나는 앞서 적은 것처럼, 다짐처럼 살아내지 못한다. 무의식적으로 무비판적으로 생각 없는 벌레처럼 공허한 문서를 찍어내기도 하고, 매 순간 열심히 일하지도 못한다. 때론 내가 일을 하며 내린 업무지시는 누군가에게 무기력감을 주었을 것이다. 임용 첫날 시장이 전문가라고 했던 선배의 말처럼 나의 요구가 누군가에겐 타협의 공간은 1mm도 침투할 수 없는 갑갑한 명령 그 자체였을 지도 모를 일이다. 공극이 많은 질문을 던지는 선배가 되고 싶다는 작은 희망을 내비친다면 너무도 지키기 힘든 다짐일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일은 나의 삶에 어떤 의미일까? 어떻게 하면 월급충으로 덩그러니 남아있지 않게 될까? 내가 일을 대하는 태도가 맞는 것일까?

물음표 하나에 무수한 제곱 공식을 성립하게 만드는 이 책을 만나는 시간이 참 반가웠다.

되돌아보지 않는 삶, 음미하지 않는 삶, 검토 없이 사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자신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지 않는다. ‘나’ 말고 누가 ‘나’의 삶을 음미하겠는가. ‘나’의 삶을 검토할 자격이 ‘나’ 말고 과연 누구에게 있겠는가.
맞다. 나의 삶을 검토할 자격은 나에게 있고,
끊임없는 물음표에 마침표를 찍는 일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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