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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눈보 Jun 04. 2023

실조 된 자율신경계를 찾아서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는 자율신경계를 실조 되게 합니다.

파이팅을 하지 않으면 하래야 할 수 없는 출근길. 

한 동안은 출근이 너무 지겨워 부석순의 '파이팅 해야지 (Feat. 이영지)'라는 노래로 내 일상을 범벅해 버렸었다. 나를 이 노래로 가스라이팅하지 않는다면, 우리 아기의 기저귀 값도 못 버는 엄마로 무기력하게 추락할 것만 같았다. 꾸역꾸역 하는 출근길, 운전석 창문새로 재빠르게 지나쳐 가는 행인 1, 2, 3, 4... 들도 마냥 즐거워서 출근하는 건 아니겠지라는 얄팍한 삶의 이해로 몇 개월을 지냈던 것 같다.(현재 진행 중일 수도 있음.) 한 때는 삶을 느끼는 감각이 50 정도는 열려있었던 것 같은데, 높은 강도의 업무와 민원인들의 욕받이로 살아간 지 어언 5개월 정도 됐을 때 내 고막이 걸레짝처럼 너덜너덜 해짐을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나의 나약한 정신력이 더욱 빛을 발하며, 되려 큰 자극은 감각을 닫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맛조개처럼) 

역치값이 낮은 나의 인내심은 금세 바닥을 드러내고, 온몸이 '제발 쉬어!!'라고 외치는 함성을 먼지처럼 무시한 채 일에 매진한 결과, '자율신경실조증'이라는 낯선 병명을 왼쪽 가슴에 턱 하고 달게 되었다. 뭐가 실조가 돼? 자율신경이 뭔데.. 네가 뭔데! 왜 실조가 됐니. 

실조 된 자율신경을 찾기 위한 2주간의 병가를 내고 내내 약 먹고 누워 자기를 무한 반복했었다. 못 일어날 정도로 아파서 쉬었지만, 아플 때 쉴 수 있도록 배려해 준 팀원들과 가족들에게 한편으론 감사함을 느끼는 시간들이었다. 

쉬면서 이제껏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들이 뭐였을까, 왜 이지경이 되도록 나를 이렇게 방치했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들이 탱탱볼처럼 통통거리며 신경계 사이사이를 훑고 지나다니는 것만 같았다. 

일을 할 때 사용하는 대화 방식, 아직 덜 내려놓은 미적지근한 열정, 지우개로 슥슥 지운 듯 흐릿하게 남아있는 일말의 신념들이 작용한 결말일까. 당장 팀인사가 바뀌지 않는 한 내가 나의 평온한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수정해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점점 진하게 새겨지고 있다. 

나만 힘들다는 착각, 내 짐이 가장 무거울 것이라는 투정에서 벗어나 더 가벼워지고, 깊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니, 더 이상 지금 상황에서 나를 나아지게 하기를 멈추는 게 더 필요한 일일지도 모를 일이다. 

나만의 답을 찾는다면 비슷한 주제로 다시 타자를 두드리겠지?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대명제를 가슴에 아로새기며 다음을 기약하는 짧은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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