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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틸그레이 Jul 15. 2024

테헤란로 한복판에서 만난 동박새에게

동박새야.

너는 지금 자유롭게 날고 있을 텐데 저 인간은 오래전 일에 왜 저리 마음을 쓰고 있나 싶지. 이 종이 원래 좀 그래. 너희에게 삶은 그저 지나가는 한숨뿐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인간은 찰나마다 의미를 부여하고 평생 곱씹으며 괴롭게 살게 되더라. 안 그러려고 마음을 다스려보는데 쉽지 않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네 모습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네가 그리되지 않았을 것 같아서, 그 와중에 네가 너무 예뻐서, 너를 그 매캐하고 시끄러운 길에 두고 온 나 자신 때문에 마음이 좀 패인 것 같아. 너는 몰랐겠지만 그즈음 인간들 사이에 전염병이 만연해 있었거든. 거리 공기는 경계심으로 팽팽히 당겨져 있었고 수직선이 가득 내리꽂히는 무채색의 테헤란로는 더욱 경직되어 있었다. 그날따라 이른 봄의 태양이 유달리 창백하더라니 그 햇볕 아래 네가 누워있었어. 거리의 유일한 자연물인 가로수 뿌리 옆에.


길을 걷다가 문득 너무 기묘한, 이 길의 것이 절대 아닌 아름다운 녹갈빛의 작은 점이 시야에 들어와서 뭔가 하고 다가갔지. 남부 지방에서 새싹의 빛깔을 두르고 동백꽃의 꿀을 먹고 산다는 새를 한 번 보고 싶었는데 그렇게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 너는 잔잔하고 평온한 얼굴로 눈을 감은 채 반듯이 누워있었는데 상처도 보이지 않아서 일순간 자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착각도 들었다. 하지만 작은 새들의 경계심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알고 있었으니 바로 누워 깊이 잠든 네 모습은 살아 있지 않다는 증거였지… 동박새가 여기에 왜? 머릿속에 의문이 가득해졌다. 너를 깨워 물어보고 싶었어. 빌딩 유리창에 부딪혔니? 쌀쌀한 날씨에 동사한 걸까? 누군가 너를 고향에서 데려왔을까? 남쪽에 산다는 새가 어쩌다 차갑고 딱딱한 북쪽 대도시 한복판까지 올라왔는지 알 수 없었어. 동백나무는커녕 잠시 쉴 곳도 마땅치 않은 동네인데. 기후 온난화로 사과나무가 강원도까지 올라왔다는데 너도 그랬던 걸까.


콘크리트에 둘러싸인 한 뼘짜리 토양 위에 누워있는 것이 마음 아팠다. 가족같이 키운 반려동물도 죽으면 폐기물이라 하던데 네 작은 몸이 가게 될 곳은 뻔했다. 근처 선릉의 녹지에라도 옮겨주고 싶었는데 일정이 있었어. 하필 몸만 달랑 나왔던 터라 거둘 만한 도구도 없었고 그날따라 근처에 쓰레기 한 톨 없더라. 한동안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너를 지나치게 되었어… 보내지 못할 편지를 쓰고 있자니 멋대로 만든 죄책감이 글자만큼 선명해진다. 의미 없는 집착인 거 알아. 그래도 자연의 섭리를 거침없이 거스르며 살아가는 종의 일원으로서, 네 시신을 폐기물 처리장보다는 작게나마 순환하는 땅에 보내주고 싶었거든. 그러면서도 그 작은 실행을 이루지 못했으니 참 비루한 개똥철학이다. 


눈을 감고 네 얼굴을 들여다보던 순간으로 돌아가 본다. 10차선 도로를 가득 채운 거칠고 무심한 소음들이 장송곡처럼 울려. 하찮은 일정이야 얼마든지 미루고, 널 소중히 감싸 쥐고, 선릉의 흙으로 데려가 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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