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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만 Jan 09. 2022

수의사 선생님의 한마디, 집사는 신용카드를 꺼냈다.

돈이 없어도 반려동물과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을 꿈꿉니다

몇 년 전, 처음으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평소에도 생리통이 심하던 나는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진통제를 복용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날 따라 유독 몸이 좋지 않았다. '왜 이러지' 하는 마음으로 약을 먹고 밥을 든든하게 챙겨 먹어도 몸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열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집에 온 내가 엄마에게 한 말은 "서 있질 못하겠어"였다.

급히 병원 응급실에 갔고 몇 가지 기본 검사들을 한 후,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리곤 의사 선생님이 다가와 말을 거셨다. "아니, 지금까지 안 아팠어요?" 당시 내가 받은 진단명은 급성 신우신염이었다. 1주일 이상 입원이 필요하다는 말씀에 그날 바로 입원했다.

침대에 누워 급성 신우신염의 증상이 무엇인지 찾아보니 열이 나고 등 뒤를 살짝만 쳐도 엄청난 고통이 느껴지는 거라고 했다. 그간 설명되지 않았던 내 몸 상태를 정확히 설명한 말이었다. 확인이 되고 이해가 되니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고양이는 아파도 티가 나지 않아요"

  

참깨를 데려오기 전, 고양이에 대한 정보들을 찾으며 공부할 때, 가장 무서웠던 고양이의 특징은 "아파도 티가 나지 않는다"였다. 안 그래도 고양이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무엇이 불편한지 파악하기 쉽지 않을 텐데 특히 고양이는 아파도 티를 내지 않는다니. 덜컥 겁이 났다.


그 말 때문인지 참깨가 우리 집에 오고 뛰어다니는 동안 참깨의 얼굴은 유독 다른 동물의 얼굴과는 다르게 감정이 담겨 있는 정도가 다르다는 걸 알았다. 표정 자체의 변화가 많이 없다고 할까. 참깨를 한참이나 들여다보아도 이 표정이 무얼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나는 참깨의 작은 변화에도 유난스러운 집사가 되곤 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참깨 눈 옆에 뭐가 묻은 것 마냥 덕지덕지 붙은 날이었다. '아니,이게 뭐야!' 급히 고양이 커뮤니티 사이트를 뒤적여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참깨와 비슷한 고양이들의 사진을 올리며 "이게 뭘까요, 병원 가야 하나요?"라는 진심 어린 질문들이 있는 게시물들을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빠르게 댓글들을 확인했다. 댓글은 친절했다. "그거 눈곱이에요." 순간 어이가 없어서 웃고 참깨의 눈곱을 떼줬다. 


어떻게 참깨와 소통해야 할까 고민하던 찰나, 우연히 집사들이 고양이들의 말을 번역하는 어플을 사용해 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플을 켠 상태에서 고양이의 울음을 들려주면 번역해서 알려주는 기능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나도 해 봤다.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참깨가 내게 말을 건 그 순간, 참깨는 내게 말했다. 이렇게.



▲  고양이번역기에 반응한 참깨. 충격받은 나. ⓒ 조혜민


사실 나는 "고양이는 아파도 티를 내지 않는다"는 말에 쉽게 기대고 싶진 않았다. 나는 응급실에 가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지만 참깨는 내가 확인하지 않는 이상 치료를 받기 어려운 나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티를 내는" 참깨의 모습을 찾고 싶었다.


하루 중 잠시라도 시간을 내어 참깨의 털을 살피고, 눈 앞에서 장난감을 흔들며 잘 뛰어다니는지를 확인하고, 밥그릇과 화장실을 통해 내가 없는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알고 싶었다. 언어가 다른 참깨와 내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소통할 수 있는 우리만의 언어를 찾는 것,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만이 유일한 해답이었다. 



참깨와 함께 병원에 가다


그러던 어느 날, 참깨 배에 작은 상처가 생겼다. 당황한 나는 다시 고양이 커뮤니티에 들락날락거리며 유사한 게시물을 찾았고 "링웜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니 병원가는 게 제일 좋다"는 댓글들을 확인했다. 순간 무서워서 급히 참깨를 이동장에 넣어 병원에 갔다. 


▲  이동장 안에 들어간 참깨. 장난감도 함께 넣어주었다. ⓒ 조혜민


병원에 간 참깨는 이동장 안에서 우엥우엥 울기 시작했다. 불안할 만했다. 병원에서 진찰을 먼저 받고 있던 고양이와 강아지가 모두 다 소리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참깨의 눈은 더 커졌고, 불안함이 극대화됐는지 울지도 않았다. 눈을 크게 껌뻑거리는 참깨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휴대전화로 유튜브에서 물고기 영상을 틀어 이동장 앞에 두었다. 집에서 틀어주면 신기하다는 듯이 보던 참깨는 별 반응이 없었다. 


진찰을 기다리며 내게 커뮤니티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다. 정보를 공유한다는 것만으로 함께 돌본다는 느낌을 주었다. 집사들의 온라인 공동체 돌봄이 실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엄마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이어졌다. '인터넷도 없고 휴대전화로 검색하기도 어려웠던 때, 나를 키운 엄마는 대체 어디서 정보를 얻어서 돌볼 수 있었던 걸까.' 나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동장에서 참깨 꺼내볼게요." 참깨 순서가 되어 수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이동장의 문은 열렸지만 참깨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이동장 뚜껑을 열어서 참깨를 꺼냈다. 그때였다. 참깨가 호다닥 수의사 선생님의 허벅지를 밟고 바닥으로 도망쳤다. 그리곤 그렇게 사라졌다. 


똑똑한 참깨는 그 찰나에 수의사 선생님이 사용하던 컴퓨터 본체 뒤를 숨을 공간이라고 생각했는지 깊게 숨어 버렸다. "참깨야, 참깨야." 수의사 선생님이 부르기 시작했다. 옆에서 당황한 나는 수의사 선생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선생님. 참깨는 참깨가 아직 자기 이름인지 모를 것 같아요. 그래서 참깨라고 불러도 나오지 않을 것 같아요.ㅠㅠ" 결국 컴퓨터 본체를 꺼낸 후, 온 몸에 먼지가 묻은 참깨를 꺼냈다. 



고양이는 집사가 지킨다?


참깨의 상처를 본 수의사 선생님은 "작은 상처고 괜찮아질 것 같다"면서도 "피 검사를 하면 혹시라도 있을 문제를 확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수의사 선생님은 내게 친절히 설명해주셨고 선택권을 주셨지만, 사실 이 말이 내게 온 순간 피 검사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검사를 하지 않아 참깨가 나중에 더 아프게 된다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렇게 나는 피검사를 한 참깨와 집에 돌아왔다. 진료비는 검사비를 포함해 6만7200원이었다. 생각보단 다행스러운 금액이었다. 병원비가 많이 나오더라도 참깨의 건강이 우선이니 써야 한다는 마음으로 신용카드를 챙겨온 나였다. 일을 그만둔 후, 처음으로 신용카드를 사용한 날이었다. 


▲  장난감을 누르고 있는 참깨. 영재일까.. ⓒ 조혜민


감사하게도 참깨는 금방 나았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 있었던 건 분명하게도 내가 참깨의 상처를 확인할 수 있었고, 병원에 데려갈 시간이 있었으며, 계산할 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편으론, 이런 일을 겪고 보니 참깨에게 위급한 상황 등이 발생해 돈이 드는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참깨를 위한 별도의 적금을 마련해야 하는 걸까' 싶기도 했다. 찾아보니 반려동물에 대한 적금과 보험 상품이 여럿 있었다.


이미 시장은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었고 하나의 상품이 되어 '유망한 신 산업'으로 꼽히고 있었다. 마음 한구석에서 껄끄러움이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선을 그을 순 없었다. "우리 가족에겐 보험이 적금일 수밖에 없었어"라고 말했던 아빠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모두 보험을 여러 개 든 상태다. 내가 고3이던 당시, 대장암 진단을 받은 아빠가 수술비, 입원비 등으로 '현실적인 충격'을 마주한 덕분이었다. 위급한 상황에 필요한 안전망은 사회가 만들어주지 않았다. 그때 우리 가족은 오늘의 돈을 쪼개고 보험에 '투자'해 스스로 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는 씁쓸한 교훈을 얻었다. 



돈이 없어도 참깨를 지킬 수 있으려면


나는 참깨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그린다. 그러나 현재 정기적인 수입이 없는 내게 '참깨가 아프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크게 다가온다. 그래서 다시 정기적인 수입이 생긴다면, '참깨를 지킬 수 있을 정도의 돈'이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도 했다.


하지만 나는 집사인 내 삶의 책임을 오롯이 혼자 지고 싶진 않다. 사보험을 통해 성긴 그물망 같은 안전망을 만들어야만 했던 아빠와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그 곁에 참깨 역시 따스한 안전망을 느껴볼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다행스럽게도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삶을 응원해주는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논의는 이미 시작되었다. 경남도는 동물병원마다 제각각인 진료비 부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병원마다 진료비를 공개하는 자율 표시제를 도입했고, 저소득층에게는 반려동물 진료비 일부를 지원하고 있다. 또한 서울을 비롯한 지자체 역시 의료 서비스 개선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을 위해 논의하고 있다.


▲  고양이도 자고 일어나면 부어요... ⓒ 조혜민


나는 내가 앞으로 마주하게 될 가난의 무게를 참깨가 짊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 역시 집사로서의 책임을 다하겠지만 참깨와 반려하는 시민의 삶이 사회적 안전망이라는 이름으로 국가라는 이름으로 지켜지길 간절히 바란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반려인들이 그럼에도 반려동물을 책임지며 행복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세상, 반려동물의 병원비도 국가 보험 적용이 되는 세상. 너무 큰 꿈이 아니길 바란다.


(본 글은 2021년 9월 3일,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를 통해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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