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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만 Jan 09. 2022

탈출구가 보이지 않던 때, 반려냥 '참깨'의 위로법

동거 8개월, 참깨와 나의 '묘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어렸을 때, 나는 인형을 좋아했다. 당시에 나와 함께 살던 인형은 아기처럼 생긴 '똘똘이'였는데 그 인형 입에 우유통을 대면 '꿀꺽꿀꺽' 소리가 났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똘똘이가 갑자기 안쓰러워 보였다. 과자, 과일, 사탕 등 맛있는 음식을 먹는 나와는 달리 똘똘이가 먹을 수 있는 건 저 우유밖에 없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똘똘이에게 다른 음식을 주기로.



그렇게 나는 내가 아끼던 과자를 잘게 부숴서 똘똘이 입에다 넣어주었다. "자, 어서 먹어!" 그러자 똘똘이는 '꿀꺽꿀꺽'하는 소리가 아닌 이상한 소리를 내었고 심지어 우유통에도 반응하지 못하게 되었다. 고장 난 것이었다. 당황했던 나는 이쑤시개로 부서진 과자들을 빼내며 엉엉 울었다.



누군가를 위한다는 마음'만'으로 시작한 행동은 그게 진심이라 하더라도 상대방의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 경우, 이기적인 행동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이 일은 인형만이 아니라 사람, 동물을 마주할 때도 유념해야 한다는 큰 교훈을 주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나는 수없이 비슷한 실수들을 해왔다. 가족, 친구, 애인 등 소중한 내 주변인들에게 말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반려동물과 살기로 결심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공간의 누추함 때문이기도 했지만 반려동물이 아플 때, 내가 보살필 수 있는 경제적 형편이 될지, 반려동물의 죽음을 내가 마주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자신이 없었다.


그러던 중 운이 좋게도 햇볕이 드는 지금의 원룸에 살게 되면서 '살아갈 공간을 찾지 못한 고양이에게 내가 사는 공간을 내어주는 건 괜찮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생겼다. '집사가 되고 싶어!' 욕심으로만 남지 않길 바라는 간절한 용기였다.


참깨와의 만남, 감히 '묘연'이라고 해도 괜찮을까 


▲   우리집에 오기 전 참깨의 이름은 "달래"였다. 털 색깔이 참깨와 비슷해 새로운 이름을 지어줬다. ⓒ 조혜민


그런 마음으로 내가 처음 검색한 곳은 유기동물 입양 플랫폼이었다. 동물과 함께 사는 친구들에게 들은 이야기와 동물보호단체의 입장을 그간 접하면서 '동물은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유기 동물을 입양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그래서 나는 집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유기동물 입양 플랫폼인 '포인핸드'라는 앱을 설치했다. '포인핸드'는 전국 보호소 유기동물에게 가족을 찾아주는 플랫폼 서비스로 동물을 사지 않고 입양하는 문화를 만드는 활동을 하고 있다.  


'포인핸드'에는 입양게시판이 별도로 있었고, 유기동물을 임시 보호하고 있는 개인 또는 유기동물보호소에서 입양을 필요로 하는 동물들에 관한 글들이 게시되었다. 나처럼 입양을 원하는 사람들은 입양 안내사항을 읽고 임보인에게 직접 연락해 입양신청서를 받은 후, 충분한 고민을 바탕으로 작성하는 과정을 갖게 된다.  


한편 임보인은 입양신청서를 바탕으로 입양신청자가 반려동물과 함께 살 수 있을지에 대해 판단하고 입양 과정을 완료한다. 나의 경우, 임보인이 직접 고양이를 우리 집에 데려왔고 입양신청서에 기입한 내용들이 맞는지 등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유기동물 입양 플랫폼에 올라온 많은 고양이 중 나는 참깨를 '선택'했고 감사하게도 그 고양이는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이 과정을 거치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양이들 중 참깨를 선택할 수 있었지만 참깨는 함께 살 사람을 선택할 기회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누군가의 선택을 받길 기다리는 것이 고양이에겐 전부인 상황에서 나와 고양이의 관계를 감히 '묘연'이라고 해도 괜찮을까. 그렇기에 나는 내 스스로가 괜찮은 사람인지 묻기 시작했다. '나는 고양이와 살아도 괜찮은 사람인가', '고양이는 우리 집에서 살기 괜찮을까'와 같은 질문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나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실 이 모든 행동은 입양신청서 덕분이었다. 입양신청서의 질문에 답하며 부족한 나는 준비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고양이가 뛰어놀 수 있게끔 집안 가구들의 위치를 바꿨고 고양이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했고 인근 동물병원들의 위치 등을 확인했다.


입양신청서에는 가족구성원을 확인하는 질문도 있었는데 그 이유는 입양 후, 가족 구성원들의 반대로 인해 유기되는 반려동물이 많은 상황 때문이었다. 또한 장기간 여행, 출장을 갈 경우에는 어떻게 할지 등을 물으며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되돌아보게 하는 질문들이 있었다. 이 과정들은 동물을 입양하기 전 충분한 고민과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다.   


▲   쉬면서 멍때리고 있는 이쁜 참깨  ⓒ 조혜민


그렇게 시작한 참깨와의 일상은 생각보다 많은 변화를 주었다. 무엇보다 내가 참깨에게 느끼는 감정은 그간 관계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참깨가 우리 집에 온 1월 말은 내가 활동하던 정당의 당 대표 성추행 사건으로 힘든 시간이었다.


나는 당시 대변인이었기에 착잡함보단 '정의당은 지금의 시간을 잘 마주하고 이겨낼 것이다'라는 말을 기자 분들에게 습관적으로 하곤 했었다. 하지만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내게도 지치고 무겁고 두려운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또, 당 사건을 마주하고서 며칠 후, 나는 내 친구의 부고를 전해 들었다.


중심을 잘 잡고 싶었지만 탈출구가 보이지 않아 먹먹하던 시간들이었다. 퇴근을 하고 돌아온 집에서 나는 자주 울기만 했다. 그런 나를 참깨가 지켜보는 일상이 반복되었고, 그래서 더 미안했다. 나보다 행복한 집사를 만났다면 참깨는 더 행복하게 지낼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우울함이 참깨에게 그대로 전해지진 않을까 두려웠다.


그때였다. 울던 내게 참깨가 다가와 솜방망이 같이 생긴 발로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래서 참깨를 부여잡고 엉엉 울었다. 최근에야 고양이들이 집사의 눈물을 보고 다가와 만지는 건 마치 수도꼭지처럼 물이 주르륵 흐르는 게 신기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어이가 없고 웃음이 나왔지만 그럼에도 참깨에게 고마웠다. 돌아보면 참깨 덕분에 그 시간들을 견딜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참깨 ⓒ 조혜민


참깨를 위해, 그리고 참깨들을 위해 


참깨와 지내면서 나는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낀다. 너무나도 참담한 현실 앞에 무엇을 말하고, 해야 하는지를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끊이지 않게 들려오는 동물 학대 소식에 나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러한 학대가 가능한 것인지 살펴보니 우리나라에선 동물의 법적 지위 자체가 '사물'이어서 학대를 하더라도 벌금 정도만 내는 것이 현실이고, 마땅한 처벌이 이뤄지고 있지 않았다. 생명임에도 불구하고 그 소중함 자체가 비참하게 다뤄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는 많은 시민의 노력으로 최근 법무부는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항을 추가한 민법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동물의 생명권 보호라는 개정 취지가 명확한 만큼 후속 개정 등을 기대할 수 있는 다행스러운 시작인 셈이었다.


반가운 소식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2021년 2분기 표준국어대사전 정보수정내용에 '길고양이'가 새롭게 추가되었다고 한다. 기존에는 '사람이 기르거나 돌보지 않는 고양이'라는 정의로 '도둑고양이'라는 단어가 등재되어있었다. 그러나 이는 사람의 음식을 훔쳐먹는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시키는 용어로 자칫 동물학대를 정당화하는 지칭어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길고양이가 도둑고양이로 일컬어지는 '오명'을 벗게 된 좋은 소식이었고, 스트릿 출신인 참깨 앞에 집사인 내가 어깨를 으쓱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   참깨와 나 ⓒ 조혜민


어느덧 참깨와 함께 지낸 지 8개월이 지났다. 당장 내일이 되면 기억되지 않을 수 있는 오늘의 참깨와 보낸 시간들을 잊지 않고, 고양이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작은 보탬이 되고자 참깨와 함께 사는 시간들을 기록하며 행동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도로에서 사고로 세상을 떠난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그럼에도 작고 작은 우리 집에서 신나게 뛰어다닐 참깨, 그리고 거리에서의 일상을 살아갈 또 다른 '참깨'를 위해서 말이다. 그게 정당 활동을 하는 집사가 참깨를 가장 정중히 '받드는 일' 아닐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참깨님. :)


(본 글은 2021년 8월 20일,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를 통해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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