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늘었지만, 설계의 중심은 사라지고 있다
AI 시대에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가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가 어떤 서비스를 만들게될지와 고객이 무엇을 책임지게 될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같은 기술을 써도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 차이는 모델의 성능이 아니라, 어디서부터 출발했는지에서 생긴다. 그래서 AI 전환의 초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기술을 도입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중심에 두고 설계할 것인가다.
AI는 이미 조직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전략 디자이너로 여러 산업의 AI 전환 프로젝트를 경험하며 느끼는 감정은 비슷하다. 변화의 속도는 분명히 빨라졌는데, 조직은 아직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정리하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모델 중심으로 재편되는 팀 구조, 자동화 범위가 빠르게 넓어지는 업무들, 그리고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역할과 책임. 우리가 익숙했던 일의 방식은 더 이상 기본값이 아니다.
이 혼란은 가장 먼저 회의실에서 드러난다. AI 전환 논의가 시작되면 질문은 자연스럽게 갈라진다. 임원들의 질문은 대체로 명확하다.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유지 관리는 가능한지, 투자 대비 성과는 언제쯤 나오는지. AI를 하나의 투자로 본다면 당연한 질문들이다.
반면 같은 조직 안에서 실무자들이 던지는 질문은 전혀 다르다. 이걸 쓰려면 우리는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지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걸 고객이 정말 사용할지에 대한 질문이다. 여기에는 숫자보다 불안이 있고, 효율보다 역할 변화에 대한 감각이 있다. 이 두 질문 사이에는 종종 아무도 명확히 설명하지 않는 공백이 생긴다.
최근 몇 년간 많은 기업이 AI를 활용해 수십, 수백 개의 기능과 제품을 만들어냈다. 파일럿은 성공적이었고 데모는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꾸준히 사용되는 기능은 많지 않다. 이유는 단순하다. 고객은 이 기능이 왜 필요한지 모른다. 기존 방식보다 편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서비스가 고객의 흐름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접근은 비슷했다. 기존 프로세스의 일부를 잘라 “이 단계만 AI로 바꿔보자”는 방식이다. 기술적으로는 가능했지만, 경험 전체를 다시 설계하지는 않았다. 고객의 일상은 그대로인데, AI는 그 위에 덧붙여진 기능으로만 남았다.
이런 결과가 반복되는 이유는 AI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문제는 설계의 출발점이 점점 사용자에서 조직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험 전체를 기준으로 보지 않고, 내부 효율과 구현 가능성에서 먼저 출발하는 순간 설계는 다시 제공자 중심으로 돌아간다. 사용자는 설계 과정에서 점점 멀어지고, 결국 AI는 도입되었지만 경험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전략 디자이너의 역할이 다시 선명해진다. AI 시대에 전략 디자이너의 역할이 부각되는 이유는 새로운 기술을 더 잘 알아야 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원래 해오던 일을 끝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술이 아니라 사용자를 기준으로 출발하고, 조직의 효율이 아니라 경험의 흐름을 먼저 보고, 부분적인 자동화가 아니라 전체 구조가 작동하는지를 설계하는 일이다. AI는 이 균형을 대신 잡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이 균형을 의식적으로 설계하는 사람이 필요해졌다. 그 역할은 여전히, 전략 디자이너의 몫이다.
이 시리즈는 AI 시대에 전략 디자이너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기술의 속도 속에서 잠시 흐려졌던 설계의 중심을 다시 확인하는 이야기다. 다음 편에서는 전략 디자이너의 역할이 왜 확장되는 것처럼 보이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실제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다뤄볼 예정이다.
기술은 계속 발전한다. 하지만 사용자를 중심에 두는 일은, 지금 오히려 더 분명한 결단을 요구한다.
By insight.co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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