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백대 일이라는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어렵게 입사했는데, 퇴사 절차는 이에 비해 너무나도 쉬워 허탈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행정 절차보다는, 스스로 퇴사를 결심하고,
1) 팀원들에게 퇴사 의사를 밝히고, 2) 남은 퇴사 날까지 묵묵히 일을 하고, 3) 마지막 날에 인사를 드리고 나오는 일련의 과정들은 결코 쉽지 않았다.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했고, 책임감과 주도적 업무를 해왔지만, 새로운 환경에서의 커리어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한 뒤부터는, 담당 매니저님인 상무님께 어떻게 퇴사 의사를 밝힐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내가 퇴사 의사를 밝히면, "나를 싫어하시겠지?", "뭔가 배신하는듯한 느낌을 드리진 않을까?" 등등 지금까지 쌓아왔던 신뢰, 관계, 정이 모두 휘발될 것 같은 불안감도 있었다. 특히, 당시 상무님이 하필이면 가장 바쁜 시기에 계셨고 인력 한 명 한 명이 너무나 귀중한 시기였기에 더욱더 퇴사에 대한 말씀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결국 퇴사 희망일 한 달 전쯤, 상무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문자 메시지를 드렸고, 상무님도 단번에 눈치를 채시고 IFC빌딩 아래 흡연장으로 오라고 회신을 주셨다.
나는 묵묵하게 퇴사에 대한 생각을 말씀드렸고,
상무님께서는 분명 예상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당황한 기색이 있으셨지만, 이내 차분히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네가 정말 잘 적응하고 있고, 앞으로도 많은 성장 가능성이 보여 개인적으론 네가 조금 더 이곳에서 일을 해보고 결정했으면 좋겠어.. 정말 아쉽고.. 하지만, 동시에 네가 이 말을 내게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고 또 어려웠을지 그 심정을 이해해, 그러니 나가는 마지막 날까지 너의 마음이 변해서 다시 남아있기를 희망한다 해도 나는 너를 다르게 대하지 않을 것이니 남은 기간 동안에도 충분히 더 고민을 해보길 바란다"
그 말씀을 듣는데 정말 울컥했다. 예상치도 못한 답변이었고, 정말 죄송스럽고 감사했다. 남은 한 달은 내가 IBM에서 일한 날들 중에 가장 열심히, 가장 책임감을 가지고 일했다.
'좋은 헤어짐'을 위해선 꼭 이 부분이 필요해 보였다.퇴사 의사를 밝히는 직원의 태도, 그리고 그 의사에 대응하는 상사에 태도가 맞물려야 좋은 헤어짐이 성사 되는 것임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 뒤, 퇴사 행정 절차 때문에, 조금씩 내가 퇴사한다는 소식이 주변에 알려져 갔으며, 동시에 조금씩 내 마음도 퇴사를 확정 짓는 쪽으로 기울어져 갔다. 많은 분들이 해당 소식을 듣고 아쉬워했고, 또 응원을 해주셨다.
퇴사 날, 홀로 오피스 휴게실에 앉아,
그동안 감사했던 사람들에게 퇴사 인사 메일을 써 내려갔다.
처음 퇴사를 마음먹었을 때 두렵기도 했지만, 분명 설레는 기분이 더 많았는데, 퇴사 당일이 되니 정든 곳을 이제 떠나야만 한다는 게 기분이 이상했고 그리 기쁘지만은 않았다.
평소엔 감사함과 소중함을 잘 느끼지 못하다가, 막상 이별을 하게 되면 그 마음이 배로 느끼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 아닐까.
오늘이 딱 퇴사1년째 되는 날이라 마음이 싱숭생숭해 글을 쓰게 됐는데, 이 글을 읽는 퇴사 준비생들도 꼭 좋은 헤어짐을 하고 나오면 좋겠다.
퇴사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퇴사에 대한 의사를 주위 상사 및 동료에게 밝히는 일인 것 같다. 막상 얘기하고 나면, 그 뒤부터는 본인이 최선을 다해 '좋은 헤어짐'을 실천하고 나오면 되는 것이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상무님께는 너무나 많은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지금은 전무님으로 승진하셨는데, 앞으로도 승승장구하시고 건강하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