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에는 회 먹는 게 아니라던데,
나는 비가 오니까 회가 먹고 싶어졌다.
오년 전 읽었던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다시 한번 읽었다.
그리고 왜 이 책을 좋아했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 책을 주제로 한바탕 떠들고 난 뒤
혼자 마을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늦은 저녁 혹은 이른 밤.
북적이는 동네 횟집 앞을 망설이며 서있다가 확신없는 무게로 유리문을 열었다.
술에 취해 한껏 커진 사람들의 목소리 사이를 뚫고
창 밖으로 도로가 보이는 문간에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광어회 한 접시와 소주 한 병을 시키고
어색한 침묵을 인간실격을 들춰보는 것으로 메운다.
반짝이는 철제 원형 테이블 위 광어 한 접시, 그리고 이가 시리도록 찬 소주 한 병이 있다.
나의 이 사이에서 꼬독꼬독하게 살아있는 회를 느끼며 소주를 들이킨다.
처음 읽었을 때와는 달리 당시 일본의 배경이나
다자이 오사무가 태어난 집안 따위도 생각해보게 된다.
어쩌면 비슷한 사람도 다른 시대에 태어나면 다른 길을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여러번 자살시도를 했지만 마지막의 성공적인 자살을 앞두고
더 이상 글을 쓰고 싶지 않아졌다고 했다.
역시 사람이 더 이상 하고 싶은 게 없을 때가 끝이라고 생각한다.
축축한 바깥 풍경이다.
귀가 따갑게 떠드는 사람들의 목소리에도,
광어회에도 모두 비가 스며있는 것 같다.
제가 가진 행복이라는 개념과 이 세상 사람들의 행복이라는 개념이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 ... 그러나 그런 것치고는 자살도 하지 않고 미치지도 않고 정치를 논하며 절망도 하지 않고 좌절하지도 않고 살기 위한 투쟁을 잘도 계속하고 있다. 괴롭지 않은 게 아닐까? 철저한 이기주의자가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확신하고 한번도 자기 자신에게 회의를 느낀 적이 없는 것은 아닐까? ... 그러다 생각해 낸 것이 익살이었습니다. ... 그것은 인간에 대한 저의 최후의 구애였습니다. - 인간실격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