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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혜 Apr 10. 2020

재택근무를 통해 없던 집중력 찾아가는 이야기

나의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된 놀랍도록 간단한 방법


집중력이 부족한 사람은 어떻게 재택근무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에게 크나큰 도움이 된 이 방법들은, 사실 집에서 일할 때에만 특별히 도움이 되는 방법들이 전혀 아니고, 연구실에서도, 일하는 장소와 무관하게 도움이 되었을 방법들이다. 다만 연구실에서는 이런 ‘기법’들 없이도 연구실이라는 물리적 세팅과, 주변 사람들도 다 일을 하는 분위기와,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이 좀 더 물리적으로 구분될 수 있는 환경 덕분에 어찌어찌 그냥저냥 집중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재택 감금 근무의 시작으로 인해 그 모든 외부적 요인이 없어지다 보니 아래 글에서처럼 "일을 하나도 못하겠어" 상태에 빠져버렸다.


위의 글을 쓰면서 호기롭게도 “일에 집중하는 방법이 찾아왔다”면서 재택근무 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둥, 이제 뭔가 좀 알 것 같다 라는 둥,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방법을 공유하겠다고 했는데, 정말 그분은 말 그대로 일단 “찾아왔다”가 24시간 함께하시지는 않고, 왔다 갔다 하신다… 그래도 “집중하는 방법”의 존재와 효과를 체험할 수 있었고, 다행히도 아주 가버린 건 아니고 않고 왔다 갔다는 하시며, 절박할 땐 조금 더 확실히 소환이 가능하고, 머무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지는 것 같기도 하며, 다른 분들에게는 더 오래 머물다 가실 수도 있으니 소개를 하고자 한다.


특히나 이를 통해 재택근무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에 엄청난 변화가 있다고 느꼈다. 첫 주와 둘째 주 초반 절실하게 “그냥 차라리 돈 안 받고 한 달만 휴직할 수 없나”, “도저히 재택근무 한 달은커녕 2-3주도 못 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1주일만 버텨보고 지도교수나 인사팀에 물어보아야겠다고 구체적으로 고민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한 달이든 두 달이든 재택근무 자체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첫 번째 임계점은 지난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아직은 이전에 비해 “나아졌을” 뿐 헤매는 부분이 더 많긴 하다. 그래도 둘째 주 금요일에 있던 미팅과, 넷째 주 월요일에 있던 미팅을 둘 다 성공적으로 끝냈다. 비록 둘 다 벼락치기를 안 한 건 아니지만 늘 미팅 전날 새벽까지 준비하곤 했는데 첫 미팅 전날엔 밤샘 각오도 할 필요 없이 평소에 자던 시간에 자고, 두 번째 미팅 전날엔 한 시간 정도만 늦게 자서, 앞으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럼 어떻게 이렇게 조금 더 편안한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었을까?


1. 일단 가장 크게, 그리고 빠르게 (거의 순식간에) 도움이 된 것은 그 유명한 ‘포모도로 기법


2. 두 번째는 일단 뭐라도 하자, 잘하려고 하지 말자 라는 마음가짐. 이게 맞는 방향인지 어떻게 될지 걱정할 시간에 일단 하기로 한 거 하자, 설사 그게 당장 목표한 첫 번째 논문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어차피 다 공부가 되니까. 그리고 방향성에 대한 고민은 쉬는  시간이나 주말에 하면 되지 (근데 주말에는 벼락치기는 해도 그런 깊은 고민을 안 한다는 게 함정).




놀랍도록 간단한 포모도로 기법


포모도로 기법은 몇 년 전부터 여기저기서 들어봤었고, 심지어 지난가을 박사과정 시작하면서 시간관리를 해 본다며 관련 앱도 다운로드하긴 했는데 이번에야 처음 써보게 되었다. 여태까지는 “너무 심하게 간단”하여서 이게 효과가 있나 싶어서 인지 연구실에서는 그냥저냥 집중이 되어서 필요성을 크게 못 느꼈는데, 1주일을 ‘아무것도’ 못 하면서 ‘뭐라도’ 해야 되는데, 하고 막막해하는 와중에 이 방법이 떠올랐다.


포모도로 기법은 이 블로그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듯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간단한” 시간관리 방법으로 '집중해서 25분간 일하고 5분간 쉰다', 4번 집중하고 나서는 5분 대신 20분을 쉰다가 방법의 전부. 필요한 도구도 타이머 단 하나, 부엌 타이머든 폰에 있는 타이머든, 이거 하나만 있으면 된다. 처음 이 기법을 창안한 사람이 부엌에 있던 토마토 모양 타이머를 사용한 이탈리아 사람이라 이탈리어로 토마토인 포모도로가 이 기법의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사진출처: https://blog.taskpigeon.co


일단 (당장 재미는 없지만 해야 하는) 일이나 공부를 시작해서 읽고 쓰기 하다가 지겨워지면 (약 시작한 지 3분 뒤), 아 이메일 좀 볼까, 메신저 대답 좀 할까, 블로그 글 좋은 게 떠올랐는데 좀 써둘까, 아 이거 기사 찾아볼까, 부엌에서 간식 좀 가져올까 하는 마음이 드는데.. 그때에 22분만 참자 해서 좀 하고, 다시 시간을 확인해서 15분 10분 5분이면 딱 그만큼만 참자 하면 참을 만하다. 25분이라는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뒤에 하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나 같은 산만한 인간도 25분만 참자, 하고 재미없는 것 같아서 도저히 시작하지 못하던 논문도 읽을 수 있게 해 주고, 또 읽다 보면 재밌어지기도 한다. 읽어보니 영 아니라서 버려도 되는 논문이 생기기도 하고.


25분이 보통 인간이 쉽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하는데, 정말 처음에 1시간이라고 했으면 못 했을 집중도 25분이라고 하니 할 만하다. 처음 해보고 이조차도 어렵게 느껴진다면 20분이나 15분으로 줄여봐도 되겠지만 그럼 너무 집중 시간이 짧으니 25분 버텨보는 걸 목표로 해보자. 그리고 쉬는 시간 5분은 정말 순식간에 가서 보통은 10분, 때로는 15분, 어쩔 때는 25분 집중하고 25분 이상 쉬게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25분씩이라도 계속 집중할 수 있다는 게 어디냐 싶다. 목표가 너무 낮은가?


지난주에는 나는 20분 타이머가 더 맞지 않을까 싶었는데 오늘은 25분 집중하고 5-10분 쉬는 게 아까워서, 30분씩으로 늘렸는데도 어렵지 않았다. 특히 그 25-30분 동안은 메신저에 알림이 들어와도, 새 메일이 들어와도 확인하지 않는 게 크게 도움이 된다. 아예 알림이 오지 않게 해 두면 더 좋고. 어떤 메신저든 메일이든, 웬만하면 다 25분은 기다릴 수 있다. 개인적으로나 업무적으로 급하게 기다리거나 응답해야 하는 연락이 있다면 그것만 알람을 해두면 되고.


일단 포모도로 기법을 사용하는 데에는 아무 타이머만 있어도 되지만, 나 같은 경우엔 별도의 포모도로 앱이나 프로그램을 쓰는 게 도움이 되었다. 따로 폰이나 아이패드에서 입력할 필요 없이 컴퓨터에서 바로 알람이 뜨고 입력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쓰고 싶은데 연구실 노트북이다 보니 프로그램 깔기가 쉽지 않아서 웹 기반 프로그램을 찾다 보니 엄청 뛰어난 기능을 가진 서비스는 아니지만 일단 이 사이트를 사용하고 있다.


앱이나 타이머만이 아닌 다른 기능이 있는 프로그램을 써서 좋은 점은, 일단 어떤 일을 할지 목록을 적어두면 타이머 하나 시작하고 끝낼 때마다 그 일이 Todo에서 에서 Done으로 넘어가는 걸 확인할 수 있는 것과, 일 마다 카테고리를 정하면 나중에 하루에 어떤 일을 얼마나 했는지 표로 볼 수 있기 때문!


다만 이 결과를 표로 보면 처음엔 (그리고 아직도) 대단히 충격적이다. 포모도로 쓰기 시작하고 두 번째 날은, 정말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쉬는 시간도 웬만하면 5분을 지켜가며 계속 읽고 쓰던 날이었다. 그런데 나는 모니터 앞에 적어도 10시간은 앉아 있었던 것 같은데 일한 시간이 5시간 8분이라고?? 물론 그날은 왜인지 브런치 글도 써서 (대체 왜?) 글 쓴 시간은 2시간 14분. 10시간 중에 7시간 22분밖에 집중을 못했다고?


나중에 충격에서 벗어나 계산해보니 이건 사실 엄청나게 집중을 잘한 결과였다. 그 이후에 조금 더 여유로워진 다른 날들은 보니, 하루 집중시간이 4-5시간이면 양반이고 2-3시간인 날들도 있었다. 물론 일정 정리하고 이메일과 슬랙을 확인하고 답장하고 논문을 찾는 시간은 ‘집중하기’ 시간에 포함을 안 하고 정말 시작하기 어려운 '읽고 쓰기'만 포함해서 그렇기도 한데..


포모도로 기본 규칙을 지킨다면 집중 25분 x 4번에 짧은 쉬는 시간 5분 x 3번 + 긴 쉬는 시간 20분 x 1번이니 집중 100분에 쉬는 시간 35분 이 한 세트가 된다. 그러니 쉬는 시간을 하나도 늘리지 않고 이걸 반복한다 해도 8시간 앉아 있을 때 최대 집중 가능 시간은 5.9시간 (5시간 54분), 10시간 앉아 있었다면 최대 집중 가능 시간은 7.4시간 (7시간 24분)이 된다. 그리고 해 보면 알겠지만 25분 집중은 쉽지 않은데 5분 쉬는 시간은 숨만 몇 번 쉬어도 금방 지나가고 화장실 한번 다녀오고 물 한잔 가져오면 이미 초과다. 그러니 7시간 22분은 10시간 동안 아주 알차게 집중을 한 엄청난 성과였던 것!




"뭐라도 일단 하기로 한 일을 하자, 놀랍도록 의미 있는 논문을 쓰려고 하지 말고"의 마음가짐.


그리고 두 번째 도움이 된 방법도 간단히 말하자면 "일단 하고 보자"의 마음가짐이니 포모도로 타이머와 비슷한 철학이다. 사실 박사과정 초기의 불확실함에 아직 있다 보니 (다만 이것은 초기만의 문제가 아니라 박사과정 끝날 때까지 계속 돼 라고 조언해 주신 경험자 분들이 꽤 있다) 이 논문이 읽을 가치가 있나, 이 방향으로 쓰는 게 맞나, 이번 주에 하기로 한 이 일이 도움이 되나, 다른 걸 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의문에 매 순간 든다. 여태까지는 그런 의심에 몸과 마음을 풍덩 맡기고 아주 자주, 드넓은 구글 스콜라의 바다를 헤매며 새로운 논문을 수집하는데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런데 이러다 보면 읽을 논문들이 계속 쌓이기만 하고 정작 읽고 취하거나 버릴 논문을 고를 시간이 없게 되는 것이다!  실제 읽고 판단하고 정리하는데 시간을 쓰지 않으니까.


그래서 그냥, 일단 눈앞에 정해진 거 하기로 했다. 사실 이 결심 처음 하는 거 아닌데. 이번엔 정말 그냥 눈앞에 한 걸음씩만 가기로 했다. 나 같은 경우는 다행인지 (장기적으로) 불행인지 (단기적으로) 지도교수랑 격주로 미팅하고 뭘 읽고 정리할지, 어느 부분을 쓸지 대강 정한다. 도움이 매우 많이 되지만, 지도교수도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이거 방향이 맞는 거야 하는 의문이 들어서 자꾸 옆으로 새곤 했다. 그런데 그래도 어느 정도 경험 있는 사람이랑 같이 정한 거고, 지난 몇 개월간의 패턴으로 보아 고민하느라 아무것도 안 하느니 이해해서 나쁠 것 없는 논문들을 읽고 쓰고 정리하는 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싶었다. 또 고민할 시간에 읽고 정리하다 보면 이 논문이나 방향이 맞는지 아닌지 더 잘 알게 되기도 하고 다른 어떤 논문을 찾아야 할지도 보이고. 설사 지금의 일이 우리가 정한 첫 번째 주제의 논문으로 결과물이 나오지 않더라도, 어쨌든 관심이 있어서 고른 논문들이고 다 공부가 되는 것이니까. 포모도로 틀어놓고, 일단 25분 읽고, 또 25분 하고, 그렇게 논문 하나 읽어보고, 그다음 거 읽거나 그다음에 쓰기로 한 부분, 글의 퀄리티는 신경 쓰지 말고 일단 쓰고. 정말 등산할 때 한 걸음만 더 한 걸음만 더 하는 심정으로.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니까 꽤 재밌다. 결과물이 쌓이는 것도 뿌듯하고.


생각해보니, 학부생 때 다 터득했어야 할 일을 이제야 터득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무조건 새로운' 연구를 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의미가 있는' 연구여야 된다는 압박이 있는 박사과정은 특성인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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