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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혜 Jan 01. 2021

2020년의 고민: 세상은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

올해의 논픽션. 사회변화, 기후변화, 경제학, 그리고 우리의 세계관

올해의 논픽션: <21세기 시민혁명>**** 마크 엥글러, 폴 엥글러


사실 내가 읽은 거의 모든 책들(16권)이 이 분야인 데다 다 너무 좋았어서 하나를 고르기는 어렵지만, 지금 단 하나를 고르자면 <21세기 시민혁명>****. 전 세계가 기후위기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위기로 치닫고 있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를 신경 쓰지도 않고, 우리들이 이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게 아닐까 싶을 때, 변화는 분명히 가능하고 이를 불러오기 위해선 어떤 행동들이 어떤 방식으로 일어나야 할지, 보다 구체적인 희망을 준 책이라서?


사실 “안전한 세상”, “차별 없는 세상”, “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분배”, “온실가스 배출 제로” 등의 더 나은 사회의 방향성과 이를 위한 제안들은 수많은 보고서와 논문들, 기사들, 책들에 이미 많이 제시되어 있다. 이렇게 “어떤 사회가 되어야 한다”에 대한 옵션들과, 이에 따른 구체적인 정책들도 많이 나와 있는데 왜 이 정책들은 도입되지 않고 세상은 바뀌지 않을까? 어떻게 보면 우리는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실현될 수 없다고 이미 포기해 버린 것 같기도 하다. 시스템도 문제고, 이를 이루는 우리들도 이기적이고, 당장 먹고살고 생존하기도 팍팍한 세상인데.. 사회변화를 위해 고민을 하고 실천을 하는 사람들은 영원히 소수에 머물고 세상은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고. 그러니까 그냥 지금 눈 앞의 일에만 집중하자고. 그리고 사회변화를 위해 더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그 소수의 사람들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다 포기했거나 관심이 없는데, 과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까, 만약 가능하다면 어떻게? 의 해결책을 찾지 못해 무기력감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이 책은 명쾌하게도 변화는 일어날 수 있다고, 그리고 그 변화가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기후변화” 의제만이 아니라 인종차별과 독재정권에 맞서는 전반적인 사회문제를 다루고, 의제와 상황마다 구체적 방법은 달라지는 만큼, 이 책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액션 플랜이나 전략까지 제시되진 않지만, 역사적인 증거와 근본적인 철학과 방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반갑다. 2018-2019년의 멸종 반란 Extinction Rebellion과 선라이즈 무브먼트 Sunrise Movement가 이 책에서 영감을 많이 받아 실제 액션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이 책의 효용성이 더 고무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시민의 비폭력 투쟁은 지난 세기 수십 년에 걸쳐 여러 차례 역사적인 순간들을 만들어냈다. 비폭력 투쟁은 부패한 정권을 끌어내리고, 인종차별을 철폐하고, 제국주의에 저항하고, 자본의 폭력에 맞서고, 불공정한 체제를 무너뜨리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비폭력 투쟁의 설계자들이 발전시켜온 지난 수십 년 간의 실험 전통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러한 전통에서 얻은 교훈이 그 후 어떻게 세련되게 다듬어지고 마침내 사회정의 실현의 역사적 획을 긋는데 기여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비폭력 행동의 전통이 어째서 21세기의 정치 생활을 바꿀 가장 효과적인 시민 투쟁의 전략이 될 수 있는지를 설파하는, 혁명적 변화를 꿈꾸는 우리 모두가 읽어야 할 책이다.”.

-       <21세기 시민혁명> 책 소개에서 가져옴


이 책이 “올해의 논픽션”으로 선정된 것은 꽤나 최근에 읽었기 때문에 기억에 많이 남는다는 점도 물론 있지만 이 이후에도 세 권을 더 읽었는데도 이 책이 올해의 책이다. 특히나 더 많은 사람들과 같이 읽고 이야기하고 싶은 책이라 1월부터 시작하는 기후위기 책모임 시즌2의 책도 이 책으로 골랐다.


올해의 논픽션 하나 더 고르면 <기후변화의 심리학>****. 부제가 “우리는 왜 기후변화를 외면하는가”인데. 부제가 다 했다. 기후변화의 과학은 분명한데 왜 사람들은 이를 부정하거나 (사실 우리나라엔 이런 사람은 많지 않다), 아니면 인식하고 걱정한다면서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지에 대해 답답함과 초조함을 느끼고 있다면.. 이 책에서 왜 사람들은 사실 그 자체, 혹은 실천적 변화의 필요성을 외면하는지 여러 가지 예시와 이론을 들어 명쾌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당장 어떤 상황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해야 한다 라는 해답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 사람들이 이를 외면하는 건 당연한 일이구나, 우리의 뇌는 그럴 수밖에 없구나 하는 것을 알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어려운 게 당연한 거구나. 그리고 무엇이 문제임을 인지했으니 해결책도 보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기승전결이 분명한 책은 아니고 여러 곳에 연재한 글들을 모은 책이라 마지막 결론을 딱 해답이 나오진 않지만 그래도 너무 좋았다. 왜 기후변화 이슈에 사람들이 관심이 없을까 답답함과 무기력감을 느끼는 모두에게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1-2위 책이 한국어판 출판사가 같다는걸 이제서야 깨달았다!


이 책은 전혀 읽을 계획이 없다가 아티클 모임에서 이 주제인 주차에 발제자분들이 아티클이 아니라 책을 발제하신다고 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그런 결정을 한 발제자분들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 책과 전반적으로 이 주제에 대해 따로 글을 쓰고 싶기도 하고, 발제자 분도 글을 쓴다고 하셨으니 나중에 글이 나오면 링크를 걸어둬야지.


그다음은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진짜 엄청엄청 강추! 이건 기후변화와는 관련이 없는 내용이고 정말 누구나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이다. 왜 우리는 더 이상 이상적인 사회를 논하지 않게 되었는지,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갈 있다는 희망이 없는 우리들은 왜 오히려 더 유토피아를 논해야 하는지, 어떤 세상들이 가능할지, 탄탄한 사례들과 연구 결과들을 바탕으로 엄청 술술 잘 읽히게 쓰여있다. 기본소득이 주요 내용이긴 하지만 그 외에도 사회 전반에 걸쳐 여러가지 통찰을 남겨주는 것 같다. 기본소득에 대해 호의적이든 회의적이든 추천! 이 책에 대해서는 따로 또 글을 쓰고 싶다.


"어째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부유해졌는데도 점점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지, 어째서 빈곤을 완전히 퇴치하고도 남을 만큼 풍족한데도 수백만 명이 여전히 빈곤에 허덕이는지, 과거 사람들이 그토록 꿈꾸던 모든 것이 풍요로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역사학과 진화심리학, 경제학과 사회심리학, 문학 등의 경계를 넘나들며 파헤친 문제작이다.

이 놀라운 프로젝트는 스티븐 핑커(“케케묵은 좌우파의 상투적 주장에 지쳤다면 이 책이 펼치는 위대한 논쟁을 즐겨보라”), 지그문트 바우만(“현대 사회를 치유하는 데 기여하고 싶은 사람들의 필독서”) 등 석학들의 극찬을 받았다. 토마스 피케티 이후, 현대의 사회적 구조와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방대한 연구를 통해 밝혀냈으며, 시대적 비판을 참신하고 독창적으로 보여주는 저서로 평가받고 있다." - 책 소개에서 가져옴


올해 가장 많이 읽은 책: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나오미 클라인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는 사실 올해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읽고 정리하고 논한 책이다. 나에게는 앞의 세 책들이 조금 더 새로운 사실과 방법론을 제시해줘서 4위로 밀린 것뿐이지 기후변화와 불평등과 현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 보기에는 이만한 책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왠지 “고전”에 반열에 오를 듯한  (혹은 이미 오른)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나오미 클라인은 그레타 툰베리 이전의 가장 인지도 있는 기후변화 활동가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앞의 <기후변화의 심리학>이 기후변화가 문제라는데 왜 우리는 변하지 않는지를 “개인적 심리”의 관점에서 살펴봤다면 이 책은 현 사회경제 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이 둘은 물론 상호 보완적이다), 특히 기후변화가 “환경을 보호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생존과, 특히 사회적 불평등과 어떻게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의 부제인 “자본주의 대 기후”에서 나타나듯이, 현 시스템이 기후변화와 사회적 불평등을 얼마나 구조적으로 가속화시키는지, 그리고 기후변화 대응이 얼마나 구조적으로 방해받고 있는지가 아주 구체적으로 상세하고 명쾌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괜히 베스트셀러가 아니야. 다만 이 책이 2014년에 나와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6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을 읽으면, 여기에 나온 구조적인 문제들 중에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고, 상황은 오히려 더 심각해지기만 한 것 같아서 더 답답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 상황의 돌파구를 보여주는 것 같은 <21세기 시민혁명>이 더 반가웠다. 결국 이 두 책은 상호보완적이기도 한 것 같다.


<21세기 시민혁명>과 <기후변화의 심리학>은 기후변화 자체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고 (<기후변화의 심리학>은 마지막에 기후변화 과학을 간략하게 다루는 챕터가 부록처럼 있긴 함) 이 이슈에 이미 큰 관심을 가지고,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 왜 세상이 변하지 않는지에 대한 답답함을 가진 독자들을 위한 책들이라면, 기후변화 문제를 접하기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가 기후변화와 불평등과 사회구조적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는데 더 입문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이 책의 가장 큰 단점은 책이 엄청 두껍다는 거.. (한국어판 798쪽! 그리고 저자가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는 내용도 쉽고 재밌게 글을 엄청 잘 쓰는데 번역이 원서만큼 유려하지는 않은 것 같다). 크고 두껍고 구체적인 입문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적합하지만 더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이 책의 핵심을 다 담지는 못해도 일부 모은 더 얇은 책이 있다면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인 클라인이 2019년에 출간한 <On Fire: The Burning Case for Green New Deal>*** 가 어떻게 보면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의 핵심적인 내용들과 최근의 내용까지 포함한 강렬한 에세이들을 모은 에세이집이라 그 좋은 대안일 텐데 (겹치는 내용도 나온다) 번역이 안 되어 있어서 아쉽다. 2017년 책인 <노 No로는 충분하지 않다: 트럼프 충격 정치에 저항하고,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얻는 법>의 2부가 기후 불평등에 대한 내용이고 전체 384쪽밖에 안되니 괜찮은 시작점이지 않을까 싶은데 읽어봐야겠다.

현 세대의 '침묵의 봄'은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가 더 가까운 것 같은데.. '거주불능 지구'는 이미 있는 관측 결과들과 과학적 시나리오들을 잘 읽히게 잘 정리한 책


<2050 거주불능 지구>*** 이 책도 아티클 모임 발제자분이 책 발제를 한다고 하셔서.. 전혀 읽을 생각이 없다가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흥미로워서 빨려 들어갔다. 사실 엄청 유명하다고 여기저기 언급되는 것은 보았는데,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아포칼립스를 보여주는 공상과학에 가까운 글이 아닐까 하고 제쳐두었었다. 하지만 실제 읽어보니, 생각보다 훨씬 더 건조한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대신 글은 건조하지 않고 아주 술술 잘 읽히게 쓰임) 긍정주의에 입각한 (저자의 입장) 책이었다. 공신력 있는 과학적 연구 논문들과 보고서들만을 바탕으로, 최악의 (지구 평균 기온,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4-5도 이상 상승) 시나리오도 아니고 초국적 협력으로도 달성할까 말까 불확실한 꽤나 이상적인 시나리오(2도 상승)를 따라도 (현재 각국의 선언되기만 한 정책들이 실제로 다 도입된다고 해도 3-4도 상승 예상됨) 기후변화로 인한 심각성이 어떨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폭염, 빈곤과 굶주림, 해수면 상승, 산불, 기후 재난, 가뭄, 해양 생태계와 물 순환 시스템의 붕괴, 대기오염, 전염병, 경제적 붕괴, 분쟁, 그리고 결국 시스템 붕괴까지.. 일부 내용은 미래까지 갈 것도 없고 이미 일어나고 있는 데이터를 소개하는데도 재난적인 상황이다.  


현 사회 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도 뒤에 조금 다뤄지지만, 그보다는 기후변화로 인한 상황의 심각성을 구체적으로 잘 다루고 있어서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와 상호보완이 잘 되는 책인 것 같다. 두께도 한국어판 기준 424쪽으로 훨씬 얇고. 기후변화를 책으로 공부하여 입문하고자 한다면 (사실 입문에는 다큐멘터리가 더 쉽고 좋은 방법일지도 모르겠지만..) <2050 거주불능 지구>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기후변화의 심리학> <21세기 시민혁명> 이 순서로 읽으면 좋을 것 같긴 하다.


아! 근데 아주 가볍게 시작하려면 <랩 걸>의 저자인 호프 자런의 새 책인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가 짧고 (276쪽) 술술 금방 읽히게 잘 쓰였다고 들었는데 아직 안 읽어봤다. 이 책은 구조적 문제와 해결책보다는 개인적 차원의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고 언뜻 들었는데, 결국에는 이 책들 다 읽으면 좋다는 거 아니겠는가.

 

그 외에 기후변화 관련 책은 그린 뉴딜 스터디를 위해 제러미 리프킨의 <글로벌 그린 뉴딜>**과 노암 촘스키가 경제학자 로버트 폴린과 쓴 <Climate Crisis and the Global Green New Deal>*** 을 읽었다. 한국 정부도 올해 여름에 그린 뉴딜 정책을 발표했는데 기후변화와 불평등, 민주주의의 위기를 다 잡을 그린 뉴딜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볼 만하다. 이 책들은 둘 다 현재 사회경제 정치적 시스템의 문제는 인지하지만 다 갈아엎어버려야 해 하는 내용은 아니고 (촘스키의 말에 따르면 자본주의가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걸 갈아엎기 전에 기후변화 문제가 닥칠 것이기에 시간이 없어서)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보다는 실질적 정책적 제안들에 더 초점을 두고 있다.


<21세기 시민 혁명>을 읽고 직접행동에 더 관심이 생겼다면 위에 언급한 멸종 반란 Extinction Rebellion에서 엮은 에세이집인 <This Is Not A Drill: An Extinction Rebellion Handbook> *** 도 정말 좋았다. 2021년 출간을 예정으로 한국어본도 번역 중이라고 한다!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이건 1930년대 대공황 이후 노동운동을 이끈, 미국 최대 노동조합의 창립자인 알린스키가 70년대에 쓴 책으로 사회개혁을 위한 지역사회의 조직화에 대한 구체적인 방식들을 제안하고 있다. <21세기 시민 혁명>에서 알린스키의 조직론에 대해 자세히 다루는데 알린스키식 조직은 그 자체로는 빠르고 큰 변화를 불러오기 어렵지만 폭발적인 비폭력 시민 투쟁으로 불러온 모멘텀을 유지할 때 도움이 된다… 고 나온 것 같은데 책 모임 하면서 다시 읽고 정리해 공유하겠습니다.


올해의 첫 책: <도넛 경제학> 케이트 레이워스


"올해의 책"을 시작으로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썼더니 사회운동과 기후변화와 그린 뉴딜 관련 책들이 먼저 등장했는데, 올해 이렇게 꾸준히 책을 읽을 수 있게 해 준 올해의 첫 책은 <도넛 경제학>***이었다. 우리 지도교수인 L이 이 책을 읽었는데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다고 하도 칭찬을 하고 내 논문 미팅할 때마다 언급해서 찾아보니 흥미로운 내용이라 혹했다. 사실 L은 마크롱의 팬이고 사회구조적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여서 GDP의 무한 성장의 불가능함을 논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책을 극찬하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저자인 케이트 레이워스는 도넛 경제학 개념도 그림으로 명쾌하게 잘 만들고 글도 정말 잘 썼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사회적 기초(기반)가 충족되는 안 쪽의 원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지구의 생태적 한계인 바깥쪽의 원 밖으로 나가지 않는, 두 원 사이의 공간이 인류가 안전하고 정의롭게 머물 수 있는 도넛이다.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가 문제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이념 논리에 휘말리지 않고, 그냥 정말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전 세계 국가들이 GDP와 GDP의 무한한 성장(영원히 착륙할 수 없는 비행기)에 메이는 것이 왜 문제인지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끔.



그래서 2020년 (2021년 아님 주의) 새해를 맞이하여 <도넛 경제학> 오디오북을 질렀다. L이 오디오북으로 들었다고 했기 때문에 십 년 전에 마지막으로 접했던 오디오북 생각이 났다. 그때도 오디오북이 잘 맞았던 것 같고, 팟캐스트를 워낙 열심히 들으니까 책 읽는 건 눈도 아프고 힘든데 오디오북은 그렇지도 않고 좋을 거다 싶었는데 정말 신의 한 수였다. 책도 정말 재밌었고 내용도 유익해서 논문에도 쓰고 그냥 기후변화 부분에 대한 상식을 쌓는데도 큰 기반이 되었다. 게다가 이 책 덕에 오디오북을 듣기 시작했기에 올해 이 책들을 다 읽을 수 있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다음 오디오북으로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골랐다. 2018년 친구네 집에서 발견하고 읽다가 미처 다 못 읽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무척 인상적이 었던 기억이 있었는데 역시나 좋았고 내친김에 같은 작가의 <호모 데우스>**와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도 읽었다. 마지막 책은 에세이 모음이라 앞에 두 개에 비하면 가벼웠지만 그래도 다 좋았다! 다만 1-3월에 읽은 책들이라고 이제 와서 어떤 내용이었지 하고 생각해보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책을 읽고 기록도 안 하고 책에 대해 얘기할 상대도 없었고 책모임도 안 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아쉬워라. <사피엔스>에서 농업혁명은 인류 최대의 사기다라고 한 건 기억난다. 정말 강렬했다.


<오늘부터의 세계>**는 이 책이 대통령 추천도서인데 이 책에 반다나 시바의 인터뷰도 있다고 해서 의외라고 생각했다는 지인의 얘기를 듣고 나도 그게 신기한 것 같아서 읽어봤다. "에코 페미니즘" 개념의 창시자라는 반다나 시바의 짧은 인터뷰나 소개글은 여기저기서 봐서 기대를 했는데 사실 이 책에 실린 반다나 시바의 인터뷰는 나 개인적으론 별로였다. 그런데 장하준과 누스바움의 인터뷰가 정말 정말 좋았고 제러미 리프킨의 인터뷰도 위의 <글로벌 그린 뉴딜> 내용을 짧게 축약해서 한국 상황에 맞게 얘기한 거다 싶어서 괜찮은 것 같다. 그런데 이걸 다 읽고 추천을 하기까지 한 거라면 이 책 인터뷰이들이 한 말에 어느 정도 동의를 한다는 말 아닌가? 그럼 우리나라 정부는 훨씬 더 다른 방향으로 빨리 움직여야 할 것 같은데.. 싶지만 정부가 대통령 한 사람의 의지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뭐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도 알 수 없으니.


아무튼 장하준 교수의 인터뷰가 좋아서 생각해보니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책도 정말 흥미롭게 읽었었는데..  마침 ‘경제학’에 대해 더 깊이 있게, 그런데 전통적인 수요 공급 곡선의 미시 경제학 말고, 공부하고 싶었어서 찾아보니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책이 있어서 읽기 시작했다. <오늘부터의 세계>의 인터뷰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보다는 읽는데 품이 조금 더 들지만 (아무래도 경제학의 역사와 각종 학파들도 나오고) 진짜 설명이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눈으로 잘 안 듣고 앱의 자동 읽기 기능으로 읽는데 꽤 괜찮다. 

오늘부터의 세계 추천하지만.. "코로나19 이후 변화의 판도"를 어떻게 예측한다는건지.. 이런 세상이 올 것이다, 라기보단, 이런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에 가까운 책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팩트풀니스>***. 명불허전 좋은 책이다. 어떻게 보면 <기후변화의 심리학>에서 나타나는 것과 반대의 편향이 나타나기도 하는 건데.. 세상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은 위안이 되기도 하고, 세상은 "좋아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다" 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며 분명히 더 나아져야 한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 지금 상황을 명확하게 아는 것은 중요하다 라는 점도 명쾌하게 다가왔다.


"이 책은 사람들이 '극적인 세계관'을 선호하기에 만들어진 '사실 아닌 느낌'과 '현실 아닌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이러한 세계관 속에서 단단하게 굳어진 '체계적 오답'에서 벗어나야만 '진짜 현실'을 타개할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전한다. 인간은 편견에 갇힐 수밖에 없지만, 그 안에만 머물러서는 모두가 바라는 '인간다운 삶과 세상'은 이룰 수 없다는  지적이다. "

"각설하고 우선 첫머리에 나오는 열세 가지 문제를 풀어보자. 대번에 머릿속 세계와 실제 세계가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고,  당연히 문제를 풀어갈 방법과 방향도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대단히 부정적이고 사람을 겁주는 극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보면 스트레스와 절망감"이 줄어들어 문제 해결에 더 집중할 수도 있겠다. 저자의 의견처럼 세계가 생각만큼  나쁘지 않은지는 모르겠으나, 더 나아져야 하는 건 분명하니 공통의 출발점 '팩트'를 확인하는 데에서 시작해야겠다.

- <팩트풀니스> 책 소개에서 가져옴


마지막으로 올해의 책 목록을 다시 한번 공유하며 2020년의 책 소개를 마칩니다.

*과 **과 ***과 ****표시는 추천 정도로, 별이 많을수록 추천 강도가 올라감! 작품성과 상관없이, 오롯이 현재 내가 남들에게 권하고 싶은 정도!


1. 올해의 소설: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보건교사 안은영*** 정세랑

목소리를 드릴게요** 정세랑


2. 올해의 에세이: 깨끗한 존경*** 이슬아  

아무튼 떡볶이** 요조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김하나, 황선우

더 사랑하면 결혼하고, 덜 사랑하면 동거하나요?*  정만춘


3. 올해의 (에세이 외) 논픽션: 21세기 시민혁명**** 마크 엥글러, 폴 엥글러

이 분야는 책이 많으니까 굳이 더 세부적으로 나눠보자면.. 세부 주제별 책 순서는 추천 정도가 아니라 (추천 정도는 별표) 각 주제에 관심이 있을 때 어떤 순서로 읽으면 좋을지를 생각해봐서 정했다. 하지만 당연히 꼭 이 순서로 읽을 필요는 없다는 것!


기후변화와 불평등의 심각성과 사회구조적 문제

2050 거주불능 지구***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On Fire: The Burning Case for Green New Deal*** 나오미 클라인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나오미 클라인


이렇게 심각한데 우리는 왜 변하지 않을까?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

기후변화의 심리학: 우리는 왜 기후변화를 외면하는가**** 조지 마셜

21세기 시민혁명: 비폭력이 세상을 바꾼다**** 마크 엥글러, 폴 엥글러

This Is Not A Drill: An Extinction Rebellion Handbook*** Extinction Rebellion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사울 D. 알린스키


새로운 사회를 위한 새로운 경제학과 아이디어들

오늘부터의 세계: 세계 석학 7인에게 코로나 이후 인류의 미래를 묻다**
안희경 / 제러미 리프킨, 윈톄쥔, 장하준, 마사 누스바움, 케이트 피킷, 닉 보스트롬, 반다나 시바

도넛 경제학: 21세기 경제학자를 위한 7가지 사고방식*** 케이트 레이워스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뤼트허르 브레흐만


조금 더 구체적인 사회 불평등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대안 (그린 뉴딜)

글로벌 그린 뉴딜** 제러미 리프킨

Climate Crisis and the Global Green New Deal*** 노암 촘스키 & 로버트 폴린


조금 긴 호흡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바라본다면

팩트풀니스: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 한스 로슬링, 올라 로슬링, 안나 로슬링 뢴룬드

사피엔스*** , 호모 데우스** ,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유발 하라리


4. 올해의 실용서: 놓아버림*** 데이비드 호킨스

The Writing Workshop: Write More, Write Better, Be Happier in Academia*** Barbara W Sarnecka (이건 아직 사실 한참 안 읽어서 다 읽은 책 계산에 안 들어감)

오늘 또 일을 미루고 말았다* 나카지마 사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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