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승혜 Jan 28. 2020

독일에서 서울을 거쳐 프랑스로 돌아온 2019년

지속 가능한 삶, 모임, 커뮤니티, 기후위기, 비폭력대화 그리고 팟캐스트

툴루즈 소식 글을 시작하면서 월 2회 써 보겠다고 했는데, 지난 3개월 동안 딱 한 달에 한 개씩 썼다. 쓰고 싶은 주제도 많이 밀려 있고, 쓰기 시작한 글들도 많은데, 이렇게 되다니. 올해에는 좀 더 부지런히 월 2회 쓰기를 지켜볼까 한다.


...라고 1월 초에 쓰기 시작한 글인데 벌써 1월 말.


이번 글은 연구주제에 대해서 쓸 예정이었지만 1월이 가기 전에 2019년을 돌아보는 게 기억도 더 생생하겠지. 특히나 2019년에는 꽤 다양하고 즐거운 일을 시작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여러 가지 기대되는 2020년이 시작되었으니 기록으로 꼭 남기고 싶기도 하고.


지난 2019년의 가장 큰 일이라면 드디어 원하던 박사과정에 합격해서 출근하기 시작했다는 것! 재작년 독일에 있으면서 여기저기 지원하고 인터뷰도 보고 했는데, 꼭 가고 싶어서 자리가 나기도 전에 미리 교수님께 연락도 하고 찾아가 만나기도 했던 곳의 박사과정 공고가 드디어 작년 초에 나왔다. 서류와 인터뷰는 3월에 끝났지만 결과가 나오는데 시간도 좀 걸리고 어차피 가을에 시작하는 포지션이라 4월부터 서울에 와 있기로 했다.


그렇게 오게 된 서울에서는 오랜만에 소중한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엄마 아빠와 지내며 화기애애한 시간과 지지고 볶는 시간을 오락가락 함께 하고,  할아버지도 매주 찾아뵙고, 오랜 친구들도 만나고, 고양이가 있는 친구와 함께 얼마간 살아도 보는 감격스러운 생활도 해보고, 자주 못 보아도 정겨운 친구와 선생님과 함께하는 동네 요가 수업도 나름 꾸준히 가고, 수채화며 담채화며 퍼실리테이션이며 이런저런 수업들도 찾아 듣고, 여행도 좀 다녔다. 서울에서 다시 살 일은 없을 거라고 몇 년간 생각했었는데, 여기 할 것 도 많고 배울 것도 많고 만날 사람도 많고, 좀 살 만한데? 게다가 환경 분야는 여기서 해야 할 일이 더 많고 더 급한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2018년 방문 때 잠시 빤짝 든 이후로 다시 들어서 박사과정 합격 연락이 오기 전까지 좀 고민이 되기도 했다.

나의 서울 생활을 한층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던 분.

2018년 서울에 왔을 때, 치앙마이에서 알게 된 지인과 함께 도시에서의 지속 가능한 삶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는 모임을 열었고, 다채로운 분야에서 더 좋은 삶과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일하는 많은 분들과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고보니 그룹도 만들긴 했었는데...). 이때의 경험을 통해 서울에서도 환경과 지속 가능한 삶 분야에 있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 외엔 감사하게도 광주에서도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한국에 몇 주 있질 않아서 그런 모임을 꾸준히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기에 이번에는 연속적으로 모임을 해보자 싶어서 비건 요리모임으로 시작해 보기로 했다. 독일에서 꾸준히 하던 거라 익숙해서 쉽기도 하고,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고.. 다행히도 요리모임 하기에 딱 좋은 공간을 딱 알맞은 시기부터 사용할 수 있게 되기도 했고.


그렇게 4월부터 간헐적으로 시작된 요리모임은 6월부터는 매 주 열리게 되었고, 6월 말엔 제로 웨이스트를 주제로 한 강연과 비건 바베큐가 함께 어우러진 옥상 파티로 이어졌다. 모임에 종종 나오는 분들이 생기다 보니 나도, 그분들도 서로 친구가 되기도 하고, 새로 온 분들이 와도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공통의 가치와 즐거움과 고민을 바탕으로 서서히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가는 것이 즐거웠다. 7월 요리모임을 거쳐 7월 말 파티를 시작으로 참가자에서 같이 모임을 기획하는 친구들로 바뀐 이들이 생긴 덕에 모임도 더 다채롭고 흥미로워졌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인지 모임의 개설과 홍보도 페이스북에서 인스타그램으로 넘어와 정착. 무엇보다 그때부터 함께 한 팀이 "살리다 프로젝트"로 발전하여 나의 떠남 이후에도, 남은 팀원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즐겁고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모임과 파티를 자연스레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 이번 서울 방문의 가장 큰 새로운 즐거움과 보람이 아닐까 싶다. 독일에서는 몇 년간 모임을 해도 내가 없을 땐 지속이 잘 안되었는데.. 물론 주 모임 공간이 우리 셰어하우스 거실이어서 그렇기도 했지만 (몇 년간 함께한 정든 독일 집 거실모임집밥이야기들은 링크에).


서울의 기후변화 청년단체인 빅웨이브를 알게 되어 활동에 참여하게 된 것도 기억에 남는다. 빅웨이브에서는 정기적으로 세미나도 하고 기후정책 등에 관련된 스터디도 심도 깊게 해서 갈 때마다 새로운 사람들로부터 새로운 것들을 배워서 정말 좋았다. 너무 늦게 알게 되어서 더 오래 참여할 수 없다는 게 아쉬울 정도로! 그래서 유럽에 있으면서도 활동 멤버로 가입까지 해서 단톡방에서 열심히 눈팅도 하고 간혹 대화에 참여도 하며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앞으로 해외에서 환경/기후변화 관련 연구를 하는 사람들도 같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교류할 수 있는 활동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고 있다.


비폭력 대화를 배우게 된 것도 서울 살이의 아주 큰 수확이었다. 10년도 더 전에 심리학 수업을 들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비폭력 대화에 대해서 듣고, 책도 읽은 기억이 있다. 그때도 정말 신기하다고는 생각했었는데, 유용한 “대화의 기술” 정도로만 생각했었는지 한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번에 서울에서 우연한 기회에 비폭력 대화를 기반으로 한 커뮤니케이션 미니 워크숍을 듣게 되었고, 이게 단순히 대화의 기술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인간관계뿐 아니라 나 스스로를 위한 근본적인 치유의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스터디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람마다 본인에게 잘 맞는 배움의 방식이 다 다를 텐데, 나는 뭐든 모임을 통해서 배우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회사를 다니면서 우연히 참여하게 된 동네 북카페의 책 모임을 시작으로 아티스트 웨이, 드로잉, 그리고 사내 책모임과 채식 모임까지 각종 모임을 섭렵하던 그 시절의 영향인지, 그때 마침 나에게 잘 맞는 배움의 방식을 운 좋게 발견하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기본적으로 외향성보단 내향성이 크지만 내향성이 비사교적임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게 된 것 같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즐거워도 만남에 에너지가 드는 사람이 내향성이고, 사람을 만나야 충전이 되는 사람이 외향성이라는 기준을 따른다고나 할까. 비폭력 대화의 경우는 더 알아보려고 책을 검색했더니 워크북이 나와서, 그럼 워크북을 할 모임이 있나 대강 검색해보니 안 보이길래, 없으면 내가 만들면 되지 하는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을 따라 참가자를 모집하는 글을 SNS 올려서 연습모임을 꾸리게 되었다. 일종의 창조성 개발 워크북인 아티스트 웨이 모임을 만들었었기에 친숙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비폭력대화 워크북 연습 모임은 정말 기대 이상으로 좋았는데, 초보자들끼리 하다 보니 책도 읽고 연습도 따라 해도 궁금한 점들이 종종 생기고 좀 더 깊게 배우고 싶어 졌다. 그래서 더 검색을 해보니 그제야 비폭력 대화 센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정식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정말 강력 추천한다. 그렇다고 아직 완전히 체화되어서 모든 곳에 다 자연스레 적용하게 된 것은 아니지만. 할 말이 많아 비폭력 대화에 대해서는 써도 써도 쓸 말이 많을 것 같으니 따로 글을 써야겠다.


모임과 배움을 이야기하니 또 빠질 수 없는 것이 커뮤니티 라이징 스터디 모임! 사내 책모임을 할 때 알게 된 분이 SNS에 소개한 책을 보고 흥미로워서 댓글을 달았더니, 안 그래도 관련해서 모임을 하실 거라고! 다행히도 서울에 딱 도착하니 모임을 모집하셔서 냉큼 신청을 하고 책을 구해 순식간에 다 읽고 모임에 나가게 되었고, 남이 하는 모임에 가는 편안함을 만끽하며 커뮤니티란 무엇인가에 대해 즐거운 토론과 심도 깊은 고민을 해보게 되었다. 내가 독일에서나 서울에서 하던 모임들도 꾸준히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기도 했고, 모임과 커뮤니티가 10년간 내 삶의 윤택함에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기에 정말 흥미로웠다. 이를 바탕으로 글도 쓰고 책도 내고 하는데 다 참여하고 싶었는데, 유럽에 돌아오고 나서부터는 시간적 여력이 줄어들어서 이 또한 단톡방 눈팅에 머물고 있음이 정말 아쉽고 모임에 보탬이 못 되어서 죄송하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여가생활을 되돌아보니 (위에 다 여가생활 아니냐고 하시면 할 말은 없지만..) 작년 초에는 그림도 꾸준히 그리고 우쿨렐레도 종종 연습했었는데, 서울에 가면서부터는 중단되었다. 재작년 여름에 밴쿠버에 놀러 갔을 때 천재 같은 선생님의 지도하에 수채화를 배우고, 작년 초에는 연필로 고양이를 그리는 재미를 알게 되었고, 서울에서는 친절하고 능력 있는 고보님에게 연필 그리기와 수채화까지 배우고 감격하였으나.. 고보님과 어느 순간 프로젝트를 같이 하게 되면서 만나면 모임 기획하느라 그림 그릴 시간은 안드로메다로 가버려서 중단. 내가 들으려고 드로잉 수업 열어달라고 졸랐으나 성사되지 않았는데.. 앞으로 꼭 꼭 열어 주시길 바랍니다.


대신 유럽에 와서 집-연구소-마트로 단순화된 일상의 빈 시간을 아주 크게 차지하고 있는 것은 팟캐스트. 평소 통근길의 자전거나 지하철이든, 여행할 때 기차에서나 공항이나 비행기에서도, 이동할 때는 무조건 듣고, 종종 요리할 때도 듣고.. 생산적인 일은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그렇다고 인터넷 서핑이나 하기 아쉬울 때도 팟캐스트를 듣는다. 사실 팟캐스트 자체는 10년도 전에도 들었던 것 같고, 10년 전 나의 비거니즘의 시작을 Food for Thought이라는 팟캐스트와 함께 해서 (완전 강추) 아직도 어느 거리를 걸으면서 뭘 들었었는데 하는 생각이 목소리와 함께 생각나기도 하고, 독일에 처음 와서는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과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열심히 들었던 기억도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몇 년 동안 잊고 있다가, 비폭력대화를 배울 수 있는 팟캐스트 (‘대화 만점’)가 있다길래 시작한 뒤로 헤어 나올 수 없는 팟캐스트의 매력에 다시 풍덩.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화 만점은 더 이상 업데이트가 안 되는 팟캐스트라 다 들어버리고 나서는 또 우연한 기회에 듣똑라에 빠져버렸다. 여기는 쌓인 에피소드도 몇 백개인데 현재 업데이트도 주 3-5일 되고 있어서 평생 다 못 듣고 죽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기쁨을 함께 느끼고 있다. 저 다 못 들어도 되니까 꼭 오래오래 해 주세요. 가끔 다른 팟캐스트도 듣는데 관심 있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개별 에피소드만 찾아 듣는 것 외에 (듣똑라도 이렇게 알게 되었다) 연속으로 듣는 건 가디언 Long Reads 정도. 듣똑라와 팟캐스트에 관해서도 따로 글을 써야겠네…


박사 과정에 대해서는 이전에도, 앞으로도 꾸준히 글을 쓸 예정이니, 주제도 연구실 사람들도 정말 맘에 쏙 들어서 매우 만족스럽다 정도로만 하고 자세한 이야기는 앞으로 종종 전하도록 하겠다.


2019년의 마지막과 2020년의 시작은 10일 묵언 위빳사나 명상 코스와 함께 했는데… 정말 강력 추천한다는 말 외에는 나도 아직 모르는 게 더 많고 내가 뭔가 설명할 능력도 안 되는 것 같아서 따로 글을 쓰겠다고 약속하기도 어렵다. 다만 이후로 (거의) 매일 명상을 하고 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하면서 2019년 돌아보기를 마무리하고 2020년 계획 글로 1월 내에 돌아오는 것으로!

매거진의 이전글 왜인지 스타트업과 비슷한 것 같은 연구실 생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