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엄마와 버스를 타면 목적지를 묻기도 전에
잠에 취하곤 했다.
엔진의 웅웅 거림은 자장가가 되었고,
내 머리는 자석에 이끌리듯 엄마의 어깨로 향했다.
그러면 엄마는 익숙한 듯 한쪽 팔로 나를 감싸 안았다.
그때의 내게 엄마의 어깨는
세상에서 가장 넓고 단단한 자리였다.
그 위에 머리를 얹기만 하면
어떤 소음도, 흔들림도 나를 깨우지 못했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습관처럼 엄마에게 몸을 맡겼다.
잠결에 눈을 떴을 때,
바로 앞 좌석에 앉은 모녀가 눈에 들어왔다.
백발이 희끗한 어머니가
중년이 된 딸의 어깨에 기대 잠들어 있었다.
딸은 어머니가 불편할까 봐 몸을 조금 더 기울여
그 무게를 조용히 받아내고 있었다.
아주 평범한 장면이었지만,
나는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 순간 알았다.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이 시간과
앞 좌석에 앉은 저들의 시간이
결코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여전히 엄마의 어깨에 기대 잠드는 아이였지만,
앞 좌석의 딸은 이미 누군가의 어깨가 된 사람이었다.
그날 내가 본 것은
엄마가 늙어간다는 사실보다,
조만간 내가 맡게 될 역할이었다.
기대는 자리에서,
기꺼이 버텨주는 자리로.
버스는 멈추지 않고 달렸지만
내 시선은 그날 이후 조금 달라졌다.
미래를 미리 훔쳐본다는 건
준비가 되는 일이 아니라
언젠가 감당하게 될 몫의 무게를
조금 일찍 알아차리는 일이라는 것이다.
아직은 엄마의 어깨가 필요하다.
그 자리에 기대 잠드는 시간이 가장 편안하다.
그래서 요즘은 버스를 타면 괜히
엄마 옆에 더 바짝 앉는다.
미래를 훔쳐본 건 찰나였고,
그 무게는 아직
천천히 받아들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