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왔던 나의 은밀한 욕망
웃긴 사람이 좋다. 그리고 부럽다.
사실 부럽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그리고 가질 수 없어서 더 간절해지는 욕망일까. 나는 진심으로 웃긴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다.
내 짧은(혹은 짧지 않은) 삼십년 인생에 나는 단 한번도 웃긴 사람 이었던 적이 없다.
나는 그러니까 그런 캐릭터를 맡아왔던 것 같다. 웃음 감별사라고 해야하나? 아무 개그에나 반응을 보여 주지 않고 나의 웃음을 트리거 하는 사람한테만 미친듯이 웃어주는, 웃겼을 때 희열을 느끼는 그런 캐릭터를 맡아왔달까. 아재개그를 하는 사람한테는 가차없이 정색한 얼굴을 보여주었다. 몹쓸 개그는 못들은 척 할 때도 많았다. 사람들이 못들은 창피한 개그를 듣고 다시 큰소리로 말해줘서 모두의 놀림감이 되게 하기도 한다. 조금 짖궂다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그렇게 함으로 나는 그사람이 본인의 개그로 다른사람을 즐겁게 해준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지만 마음으속으로는 나는 언제나 사람들을 웃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니 아직도 그러고 싶지만, 지금은 오르지 못할 나무라는 것을 깨닳았다. 내가 남들이 웃어 주길 바라고 하는 말들에서 돌아오는 반응은 거의. 대부분. 어색한 침묵이었다. ( 너무 불쌍해 하지 않아도 된다. 개그 욕심 부리는데에 소심해서 자주 시도하지도 못했다.)
가끔 내가 아무생각 없이 한 행동에 사람들이 빵 터질때가 있을지 언정 의식적으로 웃기려고 한 말이나 행동에 사람들이 내가 원했던 반응을 보여준적은.... 없는 것 같다.(잠시 눈물좀 닦고 와야겠다....씁)
이 글을 곧 보게 될 내 절친 여리는, 웃긴사람이다.
부럽다. (내가 너 웃긴거 부러워 할 줄은 상상도 못했지?) 그도 예전만큼 많이 웃기진 않지만(맞아 사실이야. 세월이 흐른 요즘 조금 노잼이 되었어.), 그래도 여리는 웃긴 캐릭터의 범주에 속한다. 여리는 춤추는것도 웃기다. 부럽다. 이상하게 뛰는것도 웃기다. 부럽다. 사람들 놀리는것도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지 않게 웃기다. 부럽다. 선은 넘지 않으면서도 그 비상한 머리로 신선하게 약 올리는게 웃기다. 부럽다.
친구인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면 나의 까칠한 이미지 때문인가, 화내는 줄 아는 사람도 많다. 상처를 받았을 사람들한테 미안하다. 나를 찍은 동영상을 보면 나도 왜 화가 나있지 싶더라. 다시 한 번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사실 그 순간 그저 그대를 웃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웃긴사람들은 보통 모든게 다 웃기다.
그 사람의 주변에는 웃긴 친구도 많다. 그래서 SNS에 쓰는 글도 웃기고, 반응도 웃기다. 글이 재치있고 웃긴 사람이 실제로 웃긴 사람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웃긴사람이 쓴 글은 대체적으로 웃기다. 웃긴사람은 진지한 글을 써도 웃기다. 본인은 사람들이 웃긴 캐릭터만으로 봐서 그게 컴플렉스일지 모르겠으나 나는 부러움을 느낀다.
그들은 웃긴 에피소드도 많이 생긴다. 어디 짧게 여행을 가도, 잠시 주말에 쉬러 가도, 재미있는 일이 생긴다. 버라이어티하게 살아간다. 대체적으로 평탄한 나의 인생하고는 다르다. 나는 어딜가도 별 일 안생기던데, 이들은 꼭 뭔가 사건이 터진다. 혹은 아주 평범한 일상을 사람들한테 재미있게 풀어낸다. 세상을 자신의 능력으로 재미있게 보는 건가?
노력해도 안되는 타고난 재능이란게 바로 이런 것일까
나를 웃게하는 사람은, 그리고 모두를 웃게하는 사람은 천진난만함이 있는 것 같다. 그 천진난만함에서 나오는 기분 좋은 웃음이 있다. 거기서 부러움이 시작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다시 태어나면 웃긴사람이 되고싶다. 이번 생에는 웃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고로 나는 다음생을 노린다. 부디 다음 생에는 웃기고 재치있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길 빈다. 과연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까 싶긴 한데, 아무튼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웃긴 사람이고 싶다. 이번 생에는 일단, 태어난 대로 살아야지 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