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도 상처를 받았지만, 커서 생각해도 그들은 어른스럽지 못했다
가끔 나의 어린 시절을 곱씹어 보곤 한다. 내성적이고 조용했던 덕에 큰소리를 듣지는 않았지만 가시가 되어 박힌 말들과 행동들이 있다. 가끔씩 떠오르는 나쁜 어른들이 있다.
진짜 그건 좀 별로였어요
지금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지각 술래잡기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집 바로 옆에 위치한 시골 초등학교였다. 집이 가까울수록 지각을 많이 하는 법. 나는 언제나 지각을 했다. 바로 옆에 위치해 있으나 담장 때문에 빙 둘러서 다시 운동장을 가로질러 등교를 해야 했기 때문에 스쿨버스를 타고 다니던 애들보다는 많이 걸어야 했다(고 변명을 해본다).
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까 4학년이었을까. 매번 혼만 나다가 내일부터 지각하면 매를 맞을 거라고 담임 선생님이 말을 하였다(나는 매 맞는 것을 극도로 무서워했다). 그다음 날도 노력을 하였으나 어김없이 지각을 하였고, 겁이 난 나는 시계를 보고 그대로 집으로 다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나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그 뒤로 같은 반 아이들도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집까지 나는 그 무리에 겁에 질려 쫓기며 달려갔다. 아직도 뒤에 나를 따라 뛰어오던 담임선생님과 아이들의 모습이 선명히 기억에 남는다. 집에 도착해 울면서 엄마에게 안겼고 엄마는 나를 달래어 혼내지 않을 것을 약속받고 담임선생님에게 인도하였다. 다시 학교에 돌아가서 매를 맞았지만, 그 순간은 그렇게 무섭진 않았다.
이때 이후로 친한 친구라도 따라오면 막연한 공포심을 느낀다. 트라우마로 남은 것이다. 선생님, 꼭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쫓아서 달려야 했나요. 엄청 무서웠다고요. 진심.
언니의 그늘 속에 집어넣던 그들
언니와 나는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다. 2년 차이로 1년이 겹쳤는데 체감상으로는 3년 내내 같이 다닌 느낌이다. 조용한 나와는 달리 언니는 활달하고 외모가 준수하였으며 전교 부회장까지 맡은, 한마디로 인기가 많은 유명인이었다.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아서 오히려 같이 다년던 해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가끔 언니가 무대에 나가면 웃긴 정도? 그런데 2, 3학년 담임 선생님은 달랐다. 2학년 담임선생님은 과거 언니의 담임을 맡았던 선생님과 교무실에서 마주 하였을 때 언니 자랑을 하던 언니 담임에게 내가 보는 앞에서 언니가 낫죠?라고 하였다. 아니 당신은 내 담임이었잖아?
3학년 담임선생님은 학부모와의 대화에서 부모님께 보내는 영상을 찍어서 띄웠는데 내가 말하는 영상에 자막으로 내 이름이 아닌 언니 이름을 적어놓았다. 그리고 사과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 졸업 후에 바로 찾아뵈었을 때는 너무 당연하게도 그새 이름을 잊어 누구였지 라고 물어보셨다(그 후로 다신 학교로 찾아가지 않는다).
정작 나는 딱히 언니에게 열등감을 느끼거나 그러지 않았다. 인기쟁이인 언니가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그들의 말은 나에게 상처를 줬다. 같은 학생도 아니고 선생님이, 어른이 그런 말을 해서는 안됐다.
외가에만 가면 내볼 은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볼 때마다 볼을 세게 물어 항상 고통을 줬던 외삼촌도 있다. 귀여워서 그랬다고는 하지만 그건 폭력이었다. 한 번은 다른 성인 남자들과 담배연기로 가득한 방에 나를 데려가고선 담배를 피우며 담배냄새 좋지?라고 하셨다. 세상에 어린아이를 담배연기 가득한 방에 집어넣은 것으로도 모자라 냄새 좋냐니... 커서 다시 만난 그분은 아직도 본인만 아는, 나이를 앞세워 막말을 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도, 지금도 외삼촌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른스럽지 못한 어른들
위에 적은 것들 말고도 문득 떠오르는 상황들이 있다. 반박을 하지 못하고 상처 받는 어린 나와 같은 어른으로 보았을 때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을 어린이에게 했던 나쁜 어른들. 선생님이 그랬던 것들은 아무래도 깊이 기억 속에 박혀있다. 적어도 아이를 지도하는 선생님은 부디, 어른스럽게 행동하기를 바란다. 저위에 언급한 선생님들은 아직도 변하지 않았겠지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