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미리 쓰는 유언장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를 위해 언젠가는 써야지 했던 유언장을 써본다

by 쵬개


안녕. 저입니다


제가 갑자기 세상을 뜨게 된다면 이 유언장이 유용해지겠지요. 언제나 글이 세상을 떠난 사람이 남길 수 있는 가장 좋은 기록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깊은 생각들을 남길 수 있고 실제로 같이 있다고 느껴진다고 할까요. 그렇다고 제가 또 유언장만 남긴 건 아니고 평소에 동영상을 많이 찍었기 때문에 제가 보고 싶을 때마다 하나 씩 꺼내 보시면 돼요. 보고 싶지 않다면 말고요.



제가 갑자기 세상을 뜨게 된다면 그전까지는 하고 싶은 걸 한 인생이었으면 좋겠네요

우선 세상을 떠도 자유롭고 싶으니 꼭 화장을 해주세요. 화장 후 재는 남김없이 세상을 떠돌도록 산에, 그리고 바다에 여기저기 마구마구 뿌려주세요. 화장 전 저의 장기는 기증이 된 상태였으면 좋겠네요. 그러려면 죽어도 곱게 죽어야 했겠네요. 마마파파 맞아요 저는 장기기증을 신청해 놓았어요. 보잘것없는 저의 장기라도 다른 사람이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서요. 받는 사람이 보험이 안되어 있어 비용 부담을 해야 한다는 걸 감안하고도 장기기증을 신청한 거라 조금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이지만 이것도 기부의 하나가 아닐까요. 비용처리를 하게 되더라도 너무 서러워 마시고 제가 모은 돈으로 처리를 해주시어요. 저의 장기가 멀쩡할 수록 돈도 더 많이 들겠네요. 껄껄



돈 얘기를 먼저 할까봐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저의 자산은 여기저기에 뿌려져 있어요. 통장에 코인에 주식에 적금에. 자연스럽게 마마파파에게 돌아가겠지요. 주식이랑 코인은 더 오래 들고 있다가 언젠가 엄청나게 불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때 쓰면 기분이 좋겠어요.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면 바로 쓰셔도 상관은 없어요. 그리고, 저의 장례절차와 복잡한 서류처리 등등이 다 끝나면 가족여행을 떠나세요. 휴양지가 좋겠죠. 고생을 했을 테니. 그리고 남은 돈은 마마 파파의 노후자금으로 쓰세요 남김없이. 언니랑 동생 녀석은 음, 평소에 갖고 싶은 거 하나씩만 사. 내가 마마 파파 노후자금 어느 정도 마련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가족여행도 보내주잖아! 호화로운 휴양지 사치 여행이 되길 바라. 아끼지 말고 펑펑 써줘. 여행 가서 사도 되겠다 그렇지.



아, 정말 꼭 들어주었으면 하는 게 있어요

제가 몇 년간 일기를 꽤나 열심히. 꾸준히 썼거든요. 근데 그것은 정말 말 그대로 저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었던 친구라서 한 글자도 보지 말고 저의 몸과 같이 불태워주세요. 지켜볼 거예요. 좋은 생각도 많이 하고 밝은 생활도 하고 그랬는데 저의 어둡고 더러운 면만 담겨있는 일기를 본다면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저도 아무도 보여주기 싫고요. 바로 태워주세요. 엄마라면 저의 말을 지켜주겠죠? 일기를 보는 대신 이 브런치를 구경하시는 게 더 실제로 제가 평소에 가졌던 생각들과 감정들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평소에 생각하던 아무 주제나 적었으니까요. 그림도 그렸답니다. 볼 건 많아요. 그러니까 일기는 손대지 말아 주세요(단호).


저의 물건들은 언니랑 동생 그리고 려리가 나눠가져. 나의 소중한 맥북과 아이패드와 에어팟프로와 침대와 책들 등등(돈이 될만한 건 다 전자기기네). 내가 귀신이 되어 붙어있진 않을 테니 어디다가 팔지 말고 써줘. 아까워.. 다 나눠가지고도 남는 건 버리고.. 명품 같은 건 없으니까 괜히 찾아보지 말고. 맥북은 려리가 가져갔으면 좋겠다.



장례식에는 누가 올까?

장례식에 온 사람들에겐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너무 슬퍼하지도, 즐거워하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그냥 아쉬워하는 정도면 좋을 것 같아요. 좋은 친구가 갔구나. 괜찮은 사람 하나를 잃었구나 정도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지금 제가 더 잘 살아야겠지만요. 저에게 악감정을 품고 있는 사람은 풀었으면 좋겠어요.(장례식장에 온 사람들에 한해) 서운하거나 기분 나쁘게 했다면 미안합니다. 저한테 미안함을 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장례식에 와서 마음으로라도 사과를 하면 용서를 해주도록 하겠어요. 안 왔으면 끝까지 싫어할 겁니다. 생각나는 사람이 몇 명 있기는 하네요.

저와 마지막까지 연락을 하며 좋은 관계를 가졌던 친구들에겐 정말 고맙습니다. 나 같은 사람하고 친구를 계속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겠어요. 감정 기복 심하고 까칠하고 까탈스럽죠. 물론 좋은 점도 있으니까 계속 친하게 지냈던 거겠죠? 그래도 친구 고르는 데에 까탈스러운 사람이라 저의 선택을 받고 계속 친구인 여러분은 어딜 가서나 인정받을 좋은 사람들인 겁니다. 다 같이 친하게 지내세요 저의 장례식을 계기로. 모임 이름은 쵬개친구들 어떤가요.


상주로, 아니면 정말 가까웠던 사람들로 저의 장례식을 계속 지키실 분들께 저의 마음을 담아 진심으로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마음이 아프네요 생각만으로도. 전 언제나 여러분을 대신해서 죽을 준비가 되어있었어요. 기왕이면 제가 희생하여 맞게 된 죽음이었으면 좋겠지만 최근 들어 떠나는 사람이 제일 이기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슬픔은 남게 된 사람들만의 몫이니까요. 떠난 사람은 고통이 없죠. 이기적이게 먼저 떠나서 미안합니다. 그러니까 너무 슬퍼하지는 말아요. 저는 이기적 이게도 원했던 것처럼 먼저 떠난 것일 뿐일 테니까요. 꿈으로 찾아갈 기회를 신께서 주신다면 여러분에게 한 명 한 명 찾아가서 깊은 대화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꿈에서 만나지 못한다면 그건 허락을 못 받은 걸 테니까 기다리지 마세요.



마지막으로

유언이 원래 이렇게 길게 적는 건가 싶긴 하지만 저보다 길게 적는 사람도 충분히 많겠죠. 멋있게 세줄 하고 끝내고 싶지만 저는 그런 멋있는 사람은 아닌가 봅니다. 그렇다고 생에 미련이 많은 건 아니에요. 이 유언장을 누군가가 눈물을 흘리면서 읽게 될 날이 오길 바라지 않지만, 없는 것보단 위로가 되리라 믿습니다. 나중에 제가 할머니가 되어 낄낄 거리면서 읽어도 재미있겠군요(에휴 어린 쵬개야 너는 철없는 꼬부랑 할머니가 될 예정이란다). 그래도 혹시나 내가 세상을 갑자기 떠나게 되어할 말을 못 하고 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은 오늘 이후로 없겠네요.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그럼 이만 유언장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안녕 먼저 미지의 세계로 가 있을게(BGM : In to the unknown). 안녕 지구야 나 있을 때 까진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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