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나이 그게 뭐라고

내가 그들에게 가진 불만과 결국 나도 그들과 똑같다는 아이러니함

by 쵬개


아무 얘기니까 정말 아무 얘기 쓸데없는 얘기. 진지하지 않고 엉뚱한 얘기들을 많이 쓰려고 했는데, 오늘은 그냥. 조금은 다크한 얘기를 해보려 한다. 바로 한국식 나이다.



우리 코리안 피플은 처음 만나자마자 나이부터 묻는다


처음 만났다. 외모적으로 동생이라고 생각해서 어리게 보고 말도 편하게 하다가 나이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말을 조심하게 된다. 반대로 외모적으로 나보다 나이가 많겠거니 생각해서 좀 어려워하던 상대가 나보다 어린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 갑자기 그 사람을 대하는 게 편해진다. 이게 맞는 것일까?



한국 사회에서 나이가 많으면 그것은 큰 무기가 된다

어느 무리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사람이 대장 노릇 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그의 무식한 대장놀이에 막내가 불만 소리를 내면 여기서 나쁜 사람은 막내가 된다. 그렇다. 이것은 나의 경험담이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무조건 대접을 해줘야 하는 것일까.


나이가 많다고 해서 그 사람이 더 어른스럽거나 더 현명하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그 사람은 원래 독단적인 사람인데 항상 나이가 많아 왔었어서인지 막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그는 자신보다 어린 사람은 하대하고 나이가 더 많은 사람한테는 놀랍게도, 정중했다. 어쩌다 보니 갑자기 그 인간의 험담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도록 하겠다. (사람들한테 어린 동생 뒷담이나 까고 다니는 철없는 ㄱ새끼..... 후)



살아가다 보면 두 가지의 경우가 있겠지

내가 어린 경우 혹은 내가 더 늙은(?) 경우. 동갑도 있지만 보통은 동갑은 동등한 위치에 서기에 나이로 인한 불편함이 없다. 그럼 그 외 두 가지 각기 상황에서 불편한 점.


1. 내가 더 어린 경우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압박감.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압박감. 뭐든 다 동생이니까 안 좋은 걸 가져가야 하고 좋은 건 양보해줘야 한다는 부담감. 그렇지 않으면 버릇없다고 불리게 될지도 모른다. 나이가 더 어리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반말하고 하대 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어려서 의견이 묵살당하는 것도 지켜봐야 한다. 아주 자연스럽게 당연하다는 듯 잡다한 일을 담당하게 되는 것도 물론.


2. 내가 더 늙은 경우

대표가 되어야 한다. 나이가 많을수록 대표가 될 확률이 높다. 뭐든 도전해보는 것은 나이 많은 사람 순으로 하도록 주변에서 부추기는 분위기가 있다. 내가 더 나이가 많으면 왜인지 이끌어줘야 하고 돈계산도 내가 다해야 하고 이렇게 해야 한다는 부담감.


내 나이 서른

서른이라는 나이는 어린 사람 중엔 많은 편인 그런 애매한 나이인데, 벌써부터 어른인 척 본인보다 어린애들한테 개소리하는 또래들에게 한소리 할 수 있으니 그건 편하다. 많은 나이 차이로 나를 불편해하는 이십 대 초반의 어린 친구들을 보면 씁쓸하지만(내가 몇 년 전에 어른한테 보였던 그 예의 바른척하는 미소를 나한테 보이고 있더라).


정신연령 =/ 신체 연령

사람의 정신연령은 그 사람의 신체나이와 일치하지 않는데 태어난 나이에 따라 서열이 정해지는 한국의 나이 문화는 정말이지 불편하다. 이 나이 문화 때문에 결국은 꼰대가 나온 것이 아닐까.


마지막 문단

요즘 기업들은 호칭이라든가 다 빼고 무조건 님+존댓말을 쓴다고 하는데, 다양한 분야에서 이 분위기를 이끌어 나갔으면 좋겠다. 그냥 모임에서 사람을 만나도 나이를 밝히는 것이 아닌 닉네임으로 서로를 부르고 존댓말을 하면 나이 대신 그 사람이 먼저 보이게 되지 않을까? 어린 사람의 의견이 묵살당하는 일도 없어질 것이고, 나이 많은 사람들도 어린 사람들과 한층 더 어우러질 수 있을 것이다.


그냥 성인은 다 같이 서로 존중하는 친구 했으면 좋겠다. 법적으로 술을 마실수 있는 나이면 그냥 다 친구 하는 것이다. 어떤가 나는 준비가 되어 있다.




할 말 많고 불만도 많은데 논리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슬프다. 한, 오 년이 흐른 뒤에 같은 주제로 다시 논리 정연하게 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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