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감성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덕 Aug 04. 2019

소고기 뭇국이 좋아지던 날

가장의 무거운 어깨

"아들, 얼른 일어나야지~ 오늘 아빠 도와주기로 했잖아~" 너무나 추운 12월의 새벽이었다.

졸리고, 귀찮았지만 거실로 터벅터벅 나가 이내 엄마는 아침밥 먹고 가라고 재촉한다.

"일어나자마자 밥 안 들어가는데, 안 먹으면 안 돼?" 1시간만 지나면 후회할 일이지만 잠에서 깨어나 아침밥을 먹는다는 건 참 고역이다.

"너 거기 가면 먹을 것도 없어. 조금이라도 먹고 가 얼른"

할 수 없이 앉아 수저를 든다. 겨울만 되면 김치 콩나물국이 최고라며 일주일에 반 이상을 해주신다. 국물 한 술 뜨면 없던 입맛도 생겨 밥 한 공기는 뚝딱이지만 새벽부터 먹는 아침밥은 잘 넘어가지 않는다. 반공기도 비우지 못한 채 집을 나선다.


아버지는 군대를 다녀오시고 나서 불도저를 지금까지 운행하고 계신다. 겨울이다 보니 땅도 얼고 돌도 얼어있어 불도저 앞에 삽날이 빠르게 마모가 되는데 이날은 태어나 처음으로 아버지를 따라 현장에 일하러 왔다. 그때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새벽부터 나와 삽날을 갈자고 한 이유가 점심이 되어 해가 중천까지 올라가면 땅이 녹기 시작하는데 발이 미끄러져 작업하기가 어려워진다.

"아들, 아빠가 여기다가 깊숙이 꽂아 넣을 테니 잡고 돌려봐" 온 힘을 다해 보지만 꿈쩍하지 않는다. 밤새 기계도 얼어붙은 것이다.

"탕, 탕" 쇠막대로 엄지손가락만 한 나사를 요리조리 계속 툭툭 치셨다. "아들, 이번엔 같이 돌릴 테니깐 하나 둘 셋 하면 돌리는 거다" 엄청 뻑뻑하게 조금씩 돌아가는데 하나를 겨우 풀고 나니 운동회 때 줄다리기 한 장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나도 모르게 나사를 헤아렸다. 넉넉잡아한 서른 개가 넘어 보이는데 눈앞이 노래졌다.

"아빠, 이걸 지금까지 혼자 하셨어요?", "전문가 불러서 하면 금방 될 텐데 오늘은 쉰 대요?"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아버지께 물었다.

"그분들하고 작업하면 3시간도 안 걸리지, 근데 일당이 30만 원은 넘어~ 부속 값도 비싼데 인건비까지 쓰려면 만만치 않는구나" 아버지의 말에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생각보다 풀리지 않는 나사 덕에 벌써 정오가 되었다. 땅은 녹아 진흙바닥이 되어 있었고, 대충 점심을 먹기 위해 사온 김밥으로 허기를 달랬다.


뻑뻑한 나사와 같이 차갑게 식은 김밥은 잘 넘어가진 않았지만 힘든 작업을 하고 나니 시장이 반찬이었다. 그렇게 작업은 계속되어 갔고, 결국 오후 3시경 일이 터지고 말았다.

"아이코, 나사가 뻑이 났네~ 이거 큰일이구만" 추운 날씨에 아빠와 나는 힘으로 잡아 돌리니 나사 몸은 그대로 박혀 버리고, 머리는 깨져버린 것이었다.

"어떡해야 해요?" 내일 다시 해야 한다는 불안감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김 사장, 지금 작업하다 나사가 뻑이 났는데 올 수 있어? 그래? 최대한 빨리 오셔요, 조금 있으면 해도 질 텐데 부탁 좀 합시다." 아직 삽날을 다 빼지 못한 상황이라 더 이상 작업은 할 수 없었고, 2시간 정도 기다리니 용접기사님이 찾아왔다. 

이동식 용접 기계로 삽날에 박힌 나사 몸통을 용접하여 빼낼 생각이었는데 위치가 좋지 않아 용접기사님도 굉장히 고생하면서 작업하였다. 저녁 7시가 넘어 박힌 나사 몸통은 간신히 빠졌고, 새로운 삽날을 끼워 빼놨던 나사를 다시 끼우면 금방 끝날 것 같았지만 산속에서 라이트를 비춰가며 진행하니 속도는 더디고, 손과 발이 얼어있어 힘을 가하기가 어려웠다. 설상가상으로 라이트는 방전되어 의지할 것은 달빛이었다.

저녁 9시쯤, 1차적 욕구는 나의 모든 것을 잡아먹었고, 집에서 밥 먹는 생각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다 못해 눈 앞에 아른거렸다. 해가 질 때, 작업 중단하고 내일 정비를 다시 할 수 있었지만 내일은 현장에 투입하여야 했기에 무리하게 진행했었다. 


"아들, 배고프다. 얼른 집에 가서 밥 먹자", 빠르게 차에 올라탔다. 다리는 퉁퉁 부었고, 얼굴에는 감각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런저런 생각을 했는데 아버지가 술만 드시면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다, 그러니깐 꼭 열심히 공부해서 사무실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버지는 어릴 때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하셨다고 했는데 집안 사정으로 학업을 계속 유지할 수 없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진학 전, 나도 아빠 따라 손에 기름 묻히고 싶다고 했지만 극구 반대하시어 인문계에 진학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같이 폭염에 고생할 때면 아버지가 왜 그렇게 공업고등학교 진학에 반대하셨는지 이해가 간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엄마는 걱정된 얼굴로 미안함이 보였다.

"나사가 뻑이 나서 조금 늦었어, 얼른 아들 밥 챙겨줘~" 이미 밥상은 차려져 있었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고기 냄새가 나서 굉장히 흥분한 상태였지만 구운 고기가 아닌 소고기 뭇국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김치찌개처럼 자극적이고, 두툼한 삼겹살 같은 기름진 음식을 상상했는데 별로 좋아하지 않는 소고기 뭇국이라니 오늘 하루 중 가장 실망스러웠다.

대충 먹고 씻어야 지란 생각으로 소고기 뭇국을 떠먹었는데 시원한 맛을 태어나 처음 느꼈다. 어른들이 국 드시면서 "아~ 시원하다" 이러셨는데 "국이 뜨거운데 왜 시원하다고 하지? 나이가 들면 감각이 손상되어 저런 느낌이 나는 건가?"라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하지만 이날엔 그 진정 시원함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그 시원함을 잊을 수 없어 오늘날까지 소고기 뭇국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아버지와 처음 작업하던 저 날이 없었다면 지금까지도 고지식한 아버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대부분 부모들은 자기 직업을 물려받길 원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건 직업의 문제라기보다는 자식 걱정을 먼저 하는 부모의 마음인 것 같다.

무거운 어깨로 살아온 아버지처럼, 나도 가장이 되어 가정을 이끌어 가고 있다. 아버지만큼 내 가정을 잘 이끌어 가기 위해 고단한 하루를 보내는 지금, 엄마의 소고기 뭇국이 더욱 떠오르는 날들이다.


오늘도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랍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