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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덕 Aug 15. 2019

홍수가 터져버렸다

한동안 학교에 가지 못했다

때는 2012년이었다. 필리핀 주립대학 교환학생으로 필리핀 라이프가 다시 시작되었다. 한 푼, 두 푼 모아서 어렵게 시작했던 어학연수와 달리 뭔가 업그레이드된 대학 학사를 외국에서 받는다는 것 자체가 감격이었다. 아쉬운 점은 필리핀 대학교들이 세계적으로 유명하지 않아 수료받아도 크게 인정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우물 안 개구리보다는 조금이라도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되었고, 당연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하여 각성을 할 수 있었다.


뭔가 된 것 마냥 설렘을 안고 필리핀 주립대학에서 새 학기를 맞이했다. 우리나라랑 커리큘럼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나라 2학기가 필리핀에서는 1학기 시작이다. 1학기 시작이 6월에 하기 때문에 필리핀 우기가 시작되었는데 "음,, 비가 많이 오는 건가?" 이런 세상 물정 모르는 생각을 했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스콜 현상이 반복하는데 가끔 우산을 들고 다녀야 하나 싶을 정도로 심하게 비가 왔다. 우산을 사용해도 가슴 이하로 다 젖었으니 차라리 시원하게 맞고 집에 가서 씻자 생각하고 홀딱 젖은 날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알다시피 필리핀은 우리나라보다 다습하여 공항 문이 열리는 순간 분무기로 물을 뿌리는 것과 같이 몸에 수분이 붙어버린다. 항상 땀과 수분으로 젖어있다고 보는 게 좋다. 이렇게 한 달 정도 생활하고 있었는데 이 날따라 심상치 않게 비가 내렸다.

"와, 오늘은 엄청 시원하네~" 필리핀은 전기세가 워낙 비싸 집에선 웬만하면 에어컨을 틀지 않았다. 선풍기를 틀면 뜨거운 바람이 오히려 땀을 더 나게 할 때도 있었으니, 그런데 유독 이날 따라 비도 강하고 바람도 제법 선선했다.

"창문을 활짝 열고 자야겠다, 이렇게 시원한 건 필리핀 와서 처음이군" 오후 11시쯤 선선한 기운에 쉽게 잠에 들었다. 새벽 3시쯤 눈을 떠졌지만 아직도 하늘에 구멍 난 것처럼 엄청난 양을 쏟아내고 있었다.

"와, 오늘 엄청 시원하다, 매일 이랬으면 좋겠다" 아침에 벌어질 일을 생각지도 못하고 흐뭇해하고 있었다.

새벽 6시, 여러 친구들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오늘 학교에 오는 건 위험하니 집에서 쉬기 바래~", 다음 메시지 "총장님께서 휴교 지침 내리셨어, 당분간 학교 오지 마, 너무 위험하니깐" 당분간 학교에 오지 말라니 어리둥절했다.

바로 창문 쪽으로 달려갔는데 처음 마주하게 된 현실이었다.





내가 거주하던 곳은 그나마 지대가 높아서 불행 중 다행으로 무릎까지 물이 찼지만 학교 쪽은 이미 잠겨버린 상태였다.

태어나 처음으로 본 홍수는 당혹감을 넘어 공포로 다가왔다. "어떡해야 하지?" 머릿속에 생각나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함만이 감돌았다. 그리고 이어서 학교 행정실에서 연락이 왔다.

"학교에 당분간은 못 올 거예요. 일단 당황하지 말고 몇 가지 위험상황에 대해 말에 줄 테니 잘 기억하세요. 

첫째로 절대 밖으로 나가지 마세요. 여긴 배수로가 낙후되어 있어 땅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걷다가 배수로에 갑자기 빨려 들어갈 수 있거든요. 

둘째로 전봇대 근처에 가면 안 됩니다. 빗물 때문에 감전이 쉽게 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해요.

마지막으로 홍수가 발생하면 전염병이 도는데 그건 쥐 나 고양이 오줌에서 시작한 바이러스예요. 홍수보다 전염병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니 절대 밖으로 나가면 안 됩니다.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언제든지 연락 줘요~ 여기 온 지 얼마 안 되어 홍수가 발생해 유감입니다."


집에는 조리시설이 없어 간단한 스낵, 빵 그리고 라면 정도만 있었다. 이 때는 실시간으로 연락할 만한 SNS가 발달되어 있지 않아 문자메시지에 의존하였고, 뉴스를 보니 필리핀 대통령이 홍수 지역 모두 휴교 처리된 상황이었다. 한국에서 자연재해라면 거의 태풍 정도라 각종 매체에서 자연재해 대비 교육을 해도 숙지한다거나 마음속에 와 닿지가 않아 흘려 들었었다. 일단 사흘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집에서 묵언수행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간중간 폭우가 쏟아지고 오히려 물은 더 불어나는 것만 같았다. 전국적으로 홍수피해는 커져갔고, 최대 피해지역이 내가 있던 지역이었다.

할 수 없어 나흘 만에 밖에 나갔는데 앞이 너무 깜깜했다. 피부가 워낙 약해 더러운 물만 묻어도 빨갛게 두드러기가 올라와 한동안 고생해야 했다.

"지금 마트에 간다고 한들 문은 열려있을까?, 과연 생필품이 남아있을까?" 등등의 잡생각이 끊임없었지만 다행히 인근 주민이 당황하고 있는 나를 보고 이유를 묻더니 물과 음식을 나눠 주겠다고 했다. 이 분뿐만 아니라 짧은 기간이었지만 매일 학교를 오고 가며 인사를 나눈 주민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물이 빠질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다.


홍수가 나고 일주일이면 복구가 되겠지 했지만 한 달이 지나 학교에 갈 수 있었다.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학교에 많은 곳들은 아직 물이 빠지지 않아 교실을 나눠가면서 수업을 진행했다. 더욱 나를 놀라게 했던 건 같은 반 친구들 중 10% 정도는 다시 보기 어려웠는데 그 이유가 집이 무너지거나 어느 마을은 학교를 오기 위해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그 다리가 무너져 다음 학기에나 학교로 돌아올 수 있다고 했다.


요즘과 같이 태풍이 자주 찾아오는 시기에는 이때 생각이 자주 난다. 가끔 필리핀 친구들과 페이스북을 통해 안부를 묻지만 실제 만날 수 없으니 더욱 그리움이 생기는데 이와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해도 항상 밟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을 많이 했다. 부정 성격이 강한 나에겐 신선한 자극이 되었었다.



오늘도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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