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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덕 Sep 15. 2019

진정한 친구가 몇 명이나 되시나요?

갈수록 속 터놓을 친구가 없어지고 있다

총각일 때 명절 연휴가 되면 항상 동창들을 만나곤 했다. 지금은 내가 불참하거나 결혼한 친구들이 불참을 해서 다 같이 만나기는 사실상 어려워졌다.

지난 수요일에는 중학교 동창을 만났는데 다들 사정이 있어 나를 포함해 총 3명이 조촐하게 저녁식사를 가졌다. 이날은 다들 마음이 통했던 건지 속마음을 잘 꺼내지 않던 친구들이었지만 서로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 :  철수야 여자 친구 생겼던데 그분도 아이가 있니?
철수 : 응, 아들 하나 있어~ 내 아들 생각하면 재혼하는 게 맞는 거 같기도 하고,,,
나 : 의외네, 다시는 결혼 생각 없을 줄 알았는데~ 근데 철수야 전에 유리창에 박힌 팔은 괜찮아?
길동 : 그 이야기는 하지도 마.
나 : 왜? 내가 모르는 일이 있던 거야?

철수는 5년 전쯤 이혼을 했는데 지금은 9살 된 아들 하나와 함께 살고 있다. 이혼할 때 전처의 외도 때문으로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상황은 더 좋지 않았었다.

알코올 중독 수준으로 대부분 술로 시간을 보내고 한 달에 5백만 원 넘는 돈을 출처도 알 수 없는 곳에 사용했다고 했다. 그러던 중, 친구가 술좀 그만 마시라는 말에 인사불성인 친구의 전처는 손에 잡히는 대로 던진다는 게 친구 왼쪽 팔에 칼이 꽂혔다고 했다. 친구는 아들이 어떻게 될지 몰라 오른팔로 감싸 안고 병원으로 뛰어갔다는데 더 듣지 않아도 될 만큼 충격적이었다.

언제부터인지 웃는 얼굴을 볼 수 없었던 친구가 머지않아 다시 웃을 거라는 기대감도 사라지고 말았다.




나 : 길동아, 너는 아직 결혼 생각 없는 거야?
길동 : 가정을 꾸리고 산다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없고, 지금이 너무 편하다.
나 : 네가 그게 편하다면 그게 맞는 거겠지. 어느 쪽이든 장단점이 있으니 네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가장 행복한 길로 가는 게 아니겠니?
길동 : 너희도 알잖아, 내가 자식을 낳는다면 이런 집안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창피하다. 가족들과 연락 끊고 산지가 5년이 넘는다 넘어.


길동이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 사이가 좋지 않아 이혼을 하시고, 할머니와 함께 살았었다. 길동이를 중학교 때부터 봐왔지만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날은 굉장히 감정적으로 중학교 때부터 자기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친엄마와 가끔씩 만나고 있는 상태에서 아버지가 재혼할 여자라며 엄마라고 부르라는데 길동이는 최대한 노력하려고 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새엄마가 데려온 고등학생 딸이 자기 방에서 담배를 버젓이 피우고 있는 모습을 보고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때는 길동이가 군대 전역하고 나서였고, 우리들도 길동이를 약 3년 정도 볼 수 없었다.

길동이는 키워주신 할머니 때문에 명절마다 가족들을 만나는데 자주 바뀌는 아버지의 애인과 난폭한 술주정은 할머니의 운명으로 모든 게 끝날 거라고 말했다.

길동이가 그 긴 시간 동안 연락이 안되고 방황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전에는 섬으로 일 다녀와서 연락 자체가 안되었다며 미안하다고만 했었다.




난 이날 친구들에게 현재 건강상태에 대해 말해줬고, 연초에 있었던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 사건들을 말해줬다. 그리고 중학교 모임 자체를 정리하고 싶다고 말했으며 내가 총무였기에 남은 돈을 나눠 각자 계좌에 보내주었다.

어느 한 모임의 회장이나 총무들은 알겠지만 모임 인원이 많든 적든 마음에 딱 맞는 날을 정해 모임 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당일이나 전날에 모임 인원들의 갑작스러운 이탈, 참석을 한다 해도 이른 귀가 등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았다. 사실대로 말하면 그동안 속마음을 감추고 있었다. "결혼도 하고, 직장도 있으니 다들 바빠서 그럴 거야", "내가 진행하는 데 있어 더 매끄럽다면 잘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거야" 등 기분이 언짢아도 비위를 맞췄었다. 하지만 친구의 한마디는 비수가 되었다.


내가 주말 아니면 안 된다고 했잖아. 네 멋대로 약속 정하면 내가 어떻게 가


어느 순간부터 총무가 '을'이 되었고, 친구들은 '갑'의 위치에서 "난 그날 어려우니 다른 날로 정하고 연락 줘" 라던지 "난 당분간 모임 나가기 어려우니 그렇게 알고 있어" 등 서로 배려하는 게 아닌 말 그대로 '모임'이 되어 버렸다.


예전부터 어른들이 진정한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성공한 거라고 하셨다

10년 전만 해도 진정한 친구들이 많은 거 같았다. 하지만 30대 중반을 넘어서 각자의 길도 다르고, 특히나 실익을 따지게 되니 친구들만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볼 때 내가 변할 부분도 존재하니 말이다.

아쉬워하고 서운해하는 친구들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모임이 해체되었다고 우리 관계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언제든 여유가 되면 함께할 수 있는 우리들이니 보고 싶을 때 연락하자고


나도 누군가에 진정한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오늘도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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