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퇴근을 못해서요.

by 아모나

모니터 우측 하단을 흘깃 쳐다본다.

‘오후 9:03’

퇴근시간 6시를 훌쩍 넘겨버린 시간이다.

사무실 안은 텅 비어 있고 ‘나’와 ‘한 사람’만 남아 있다.


딸깍 딸깍,

의미 없는 마우스 클릭, 파란 바탕화면만 이리저리 눌러보고 있다.

할 일을 끝낸 것은 아니다. 그저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싶다.

지쳐버렸다.


내가 퇴근하지 못하고 모니터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이유는

사무실에 남아있는 한 사람에게 얹혀서 퇴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차가 없다.

동료의 차를 얻어 타고 있다.


워낙 함께 야근이 잦아서 동료가 퇴근하자고 하면 하는데,

오늘처럼 먼저 퇴근하고 싶을 때는 난처하다.

외진 곳에 회사가 자리 잡고 있어서

버스정류장까지 가려면 30분을 걸어야 하고, 버스의 배차간격 또한 30분.

도보는 사람이 잘 다니지 않아서인지 풀들이 무성하게 무릎까지 자라나 있다.


이렇게 출퇴근하기 어려우면 차를 끌고 다닐 만도 한데,

난 그러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지 못하는 내가 병x 같다.


사실 나는 내 소유의 차 한 대가 있다.

검은색 그랜져,

제 나이에 맞지 않아 보이는 연식있는 차 한 대.

아빠의 유산이다.


면허가 있던 나는 그 차를 몇 번 운전해봤다.

조수석에 아빠가 앉아 있기만 하면 나는 어디든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아빠를 잃으면서 난 차를 운전할 용기도 함께 잃었다.


야근이 없을 때는, 그러니까 이렇게 바빠지기 전에는 과장님의 차를 얻어 타고 퇴근했었다.

항상 챙겨주셔서 나는 차 없이도 출퇴근이 가능했었다.


과장님과 퇴근시간이 엇갈리기 시작한 이후로는,

매번 동료에게 태워달라 하는 게 눈치가 보였다.

나는 혼자서 퇴근 잘하는 척,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인 척했다.


“지금 퇴근할 건데, 더 하실 거예요?”

“네, 저는 좀 더 하고 갈게요!”

회사 사람들이 전부 퇴근하고 나서야 콜택시를 불렀다.

외진 곳이라 오천원이 추가됐다.


2만원 가량의 돈을 지불하고 택시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왔다.


집에 들어오고 나면 눈물을 흘렸다.

‘아빠가 있었다면.. 아빠가 있었다면..’

내가 눈치 보면서 퇴근할 일이 없을 텐데,

주말에는 차를 몰면서 운전을 배운다던지,

하다못해 아빠가 데리러 온다던지,

어떻게든,

나도 남들처럼 회사를 멀쩡하게 다니고 있었을 거야.


어른 같지도 않고 그냥 마냥 어린아이가 되어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갑자기 생겨버린 커다란 차는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끌고 다닐지 처분할지도 결정하지 못하고.

퇴근할 때마다 왜, 왜, 내 인생에서 없어졌냐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고작 퇴근하면서,

당신을 매일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그렇게 나는 사직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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