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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OND Jul 25. 2020

미술과 미술사; 1800년대 힙한 형, 톨루즈 로트렉

취향잡기 1.3

지난 글 "사실주의는 사실 사실주의가 아니다"를 업로드한지 벌써 2개월이나 지나버렸습니다. 일이 바쁘졌다는 핑계로 조금 더 조사가 필요하다는 핑계로 취향잡기를 업로드하는 것을 미루고 미루었는데 더 이상 미루면 취향잡기도 그저 그런 프로젝트 중에 하나로 끝날 것 같아 오래전부터 쓰고 싶었던 톨루즈 로트렉에 대한 이야기를 써볼까합니다.
(사실은 시간 순으로 야수파와 신인상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로트렉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가장 인상깊었던 로트렉의 포스터 3종(아리스티드 브리앙, 물랑루즈 극단, 이베트 길베르)


01. 가장 인상적인 신인상파, 톨루즈 로트렉

사실 처음 저는 톨루즈 로트렉을 "미드나잇 인 파리"에 나왔던 키작은 미술가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로트렉의 그림들은 사조상으로는 신인상주의로 분류되는데, 같은 신인상주파 화가인 드가, 고흐, 쇠라 등과는 조금은 다른 뉘앙스의 그림들을 그려왔기 때문에 눈여겨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난 4월 예술의 전당에서 톨루즈 로트렉전을 보고나서 제게 가장 인상적인 신인상파 화가가 되었습니다.
(TMI: 정찬용 도슨트님의 도슨트와 함께 들었습니다.)


로트렉은 자신의 작품 뿐만 아니라 외모와 가정사로도 꽤 유명한 미술가입니다. 눈에 띄는 로트렉의 특징은 키가 작다는 것입니다. 그는 154cm의 단신이었는데 어린 시절 계단에서 넘어진 후 다리가 자라지 않아 상체는 어른이지만 하체는 짧은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키는 단순히 사고 때문이 아니라 유전병이었는데 유럽의 귀족 출신인 로트렉은 가문에서 오랜기간 이루어진 근친혼의 영향으로 작은 키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입니다.(이 말을 꼭 써보고 싶었습니다.)


귀족 가문에서 장애를 가진 삶을 사는 그의 인생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순탄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 가문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었던 로트렉은 술집과 캬바레 등이 모여있던 파리의 몽마르뜨 거리에서 창녀와 무희들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술에 절은 생활을 하면서 몽마르뜨 언덕에 있는 많은 공연장이나 가수, 무희 들의 포스터를 그려주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고 합니다.
*로트렉은 장애를 갖기 전부터 고급 미술교육을 받았습니다. (완전한 길바닥 예술가는 아닙니다.)


02. 벨에포크(아름다운 시절)의 천재 비쥬얼 마케터

로트렉의 대표작들은 주로 몽마르뜨 언덕에 있던 카바레 또는 공연을 홍보하기 위한 포스터들입니다. 그러다보니 로트렉의 대표작은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린 대상에 대한 홍보. 조금 다르게 접근하면 로트렉은 타고난 천재 비쥬얼 마케터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위에서 소개한 제게 가장 인상깊었던 포스터 3종을 살펴보면 그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유명한 샹송 가수 브리앙의 포스터입니다. 딱 보기에도 이 포스터는 꽤 파격적입니다. 홍보하려는 대상의 얼굴도 제대로 나와있지 않고 간지나는 뒷모습만 그려져있습니다. 게다가 검정과 빨강 두가지 색깔만 사용한 2도 포스터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포스터를 보자마자 이 그림의 주인공이 브리앙인 걸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브리앙은 세계적인 샹송가수였는데 그의 시그니처가 바로 붉은 머플러와 멋드러진 모자였다고 합니다. 위의 포스터를 살펴보면 멋드러진 모자는 물론이고 재킷 카라 위에 살짝 그리고 소매 밑으로 살짝 그의 붉은 머플러가 보입니다. 그리고 브리앙 우측의 포스터 문구는 아예 대놓고 붉은 글씨로 적어놓았습니다. 의도적으로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 오히려 브리앙의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상승시킵니다. 


지금은 이런 디자인 기법들이 꽤 체계적으로 발전했지만 1800년대에 살았던 로트렉은 자신의 직감으로 브리앙의 포스터를 디자인적으로 완벽하게 그려냈습니다.


두번째는 로트렉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포스터는 캬바레의 무희(Dancer)들을 그려냈는데 이 포스터에서 그의 천재성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이 정교하게 잘 그려낸 그림은 아닙니다. 사실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그려졌고 무희들의 얼굴도 예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포스터 속 무희들이 캉캉춤(당시 유행했던 춤)을 추는 모습에서 역동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포스터를 잘보면 네 명의 무희 중 마지막 무희만 자세가 조금 다른데 의도적으로 통일성을 해쳐 무희들의 댄스를 더욱더 역동적으로 보이게 합니다. 재밌는 점은 자세가 다른 마지막 무희는 실제로 로트렉과 친한 제인 아브릴이라는 무희인데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무희보다 더 주목받을 수 있게 그려졌습니다.


 포스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공연 정보입니다. 아무리 멋진 포스터라도 공연정보를 확인할 수 없다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포스터에서 로트렉은 역시 영리한 방법을 이용하여 포스터의 정보를 강조해냈습니다. 바로 무희들의 자세를 이용한 것입니다. 로트렉 캉캉춤을 추며 들고있는 무희들의 한쪽 발의 끝에 공연정보를 배치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포스터를 볼 때 자연히 무희에서 공연정보로 시선이 이동하게 됩니다.


캉캉춤의 매력, 공연 정보 그리고 친구 돋보이기까지 로트렉은 포스터를 통해 완벽하게 자신이 전달하고자하는 바를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포스터는 샹송가수 이베트 길베르의 포스터입니다. 로트렉은 인물을 대표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아내고 또 이를 활용하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위에서 브리앙이 시그니처 아이템, 붉은 머플러와 모자를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길베르는 항상 공연 때 긴 장갑을 끼고 있었다고 합니다.


샹송가수 이베트 길베르

당시 이베트 길베르는 예쁜 것은 아니라고 하는데 로트렉은 그녀의 공연을 홍보하는 포스터에서 이번에는 과감하게 그녀 자체를 지워버리고 그녀의 긴 장갑만 남겨두었습니다. 이 포스터를 통해 그녀의 긴 장갑은 그녀를 상징하는 시그니처 아이템이 되었고 그녀는 물랑루즈에서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로트렉의 포스터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로트렉은 그 사람의 특징을 잡아내고 그 특징 외의 것은 과감히 버려 그 특징을 사람의 뇌리에 남길 수 있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로트렉이 이런 포스터를 그려낼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몽마르뜨 언덕 거리의 죽돌이였기 때문입니다. 몽마르뜨 언덕에서 생활하며 함께 마시고, 놀고, 부대끼며 누구보다 그들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중에게 어필 할 수 있는 그들만의 매력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03. 그 시절의 포토샵, 석판화

로트렉의 작품을 보다보면 흥미로운 점을 하나 찾을 수 있는데 대부분의 작품이 석판화로 그려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확히 말하면 로트렉의 포스터는 그린 것이 아니라 찍어낸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당시에 포스터는 공연을 홍보하기 위해서 몽마르뜨 거리 여기저기에 붙어있었을텐데 복사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같은 그림을 여러장 그릴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로트렉은 석판화로 자신의 포스터를 찍어냈는데 이 과정에서 그의 천재성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습니다.

석판화 제작과정(출처: 고등학교 미술교과서 - 두산)

간단하게 석판화의 제작과정을 요약하면 1. 돌(석판)위에 그림을 그리고 2. 잉크를 발라서 3. 종이에 찍어냅니다. 로트렉의 포스터로 돌아와 생각해보면 로트렉은 이 모든 그림과 글자를 좌우반전된 상태로 그려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석판화로 색을 표현하려면 서로 다른 석판을 활용해야 합니다. 잉크가 섞이면 여러번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석판화로 알록달록한 그림을 찍어내려면 색깔 갯수 만큼의 석판이 필요합니다. 마치 포토샵에서 레이어를 추가해서 작업하는 것처럼 차곡차곡 레이어를 쌓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차곡차곡 쌓은 석판화 그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똑같은 그림을 여러번 그릴 수 있어야합니다. 외곽선 판과 색칠 판의 그림이 다르다면 색이 외곽선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석판화 작업물들은 그렇게 다양한 색깔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라 굴뤼, 로트렉

하지만 로트렉의 작업물을 살펴보면 로트렉은 석판화를 통해 다양한 색깔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로트렉은 타고난 "센스"뿐만이 아니라 "기술적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outro. 진짜 힙한 형 로트렉

로트렉은 분명 신인상파를 대표하는 미술계의 거장입니다. 하지만 로트렉의 작품을 보면 그는 예술성을 겸비한 뛰어난 마케터입니다. 당대의 미술가들이 갤러리에서 그림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훔쳤다면 로트렉은 거리에서 포스터로 대중들의 지갑을 연 1800년대의 진짜 마케터입니다.




* 잘못알고 있는 부분이나 더 알면 좋은 부분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 

* 제 취향생활에 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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