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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하영 Mar 14. 2022

생일 말말말

올 생일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지 못해 준비했다.

축하를 받았다. 손에 꼽을 수 없이. 매년 인사를 전해주는 성실한 사람들과 처음 만난 사람들의 인사. 뭐 하나 쉽고 자잘하게 지나치는 성격이 되지 않고, 덤벙거리는 것 또한 부지런함이 이기지 못했다. 나에게 매년 생일은 큰 의미를 가져다준다. 작년 생일의 인사이트는 "표현에 인색하지 말자"라는 깨달음을 가르쳐줬다. 올 생일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지 못해 준비했다.


비공식 축제
하영, 선생님, 대표, 딸, 조카, 선배, 후배, 언니, 누나, 젤리, 아무. 갖은 이름으로 제각각 축하를 받습니다. 말로 안아주는 당신은 난로 같고, 시기에 맞춰 꽃을 피울 수만 있을 것 같습니다. 주목과 관심을 받는 것을 즐기는 것은 마냥 즐겁지만 않고, 터치 몇 번으로 주고받는 모바일 상품이 빚더미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선물은 무엇인가 다시 질문을 해보자.
물질이 풍요로운 시대에 살아가는 나에게 필요한 물질이 생각나지 않는다. 가끔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물건들이 처치 곤란일 때가 많아서. 영감과 경험으로 물건을 쉽게 치부하거나 소비로 빈 방을 채우는 것에 질려버렸다. 물질로서의 기능보다 정서를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심연, 호흡 같은 것들이 주는 반응에 관심이 많다. 그것이 때때로 혹은 자주 인간답다고 느낀다. 현재 완전한 선물은 축하의 말을 건네받는 것. 가진 시간을 잠시 나눠 쓰는 찰나. 기다림 없이, 그리움 없이, 지금 이 순간 느낌 그대로. 생일 같지 않은 날도 생일처럼 느껴질 수 있을 테니. 서로의 시간을 각자 나눠 갖고 있으니. 매년 같은 날을 맞이한다. 스스러움이 생겼다. 여전히 숫자 3을 좋아하고, 3월엔 모든 감각을 열어두고 느낀다. 내적으로 채워지는 지성과 무지가 나를 더 흥분시킨다. 여전히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편하다는 사실. 확인받지 않고 확인하지 않고, 머리 쓰지 않고 마음으로 행하는 것. 몸이 이끄는 것.
언어로 나를 와락 껴안아주는 사람들. 사랑스러운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을 아는 사람들. 사랑을 떼어주는 사람들. 일 년에 하루는 스스로 사랑성애자를 자처하고 싶다. 완전한 이 순간.
전화번호부에서 이름을 찾아 전화하는 일, 마음을 담아 전송 버튼을 누르는 일, 표현을 전달하는 일, 좋아하는 것으로 나를 꾸며주는 일, 내게 미소를 지어주는 일. 서로의 온도를 교환하는 일. 20대 언저리 생일에서 느낀 것들.


이번 생일 또한 무척 기다려왔다. 생을 부여받은 날.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지막 결실. 우리 집 막내 하영.


"사실 저는 제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3이라는 숫자를 굉장히 좋아하고

3월을 좋아하고,

봄을 좋아하는 특성을 가졌습니다.

봄이 오면 꽁꽁 얼어있던 마음이 녹아내리거든요.

그렇게 새 생명을 피워내고 시작을 알리는 봄을 좋아해요.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그 봄이 역설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이 저를 무력하게 만들기도 했죠.

실제로 봄에 자살률이  높아지고,

봄에 태어난 사람이 정신질환 앓을 확률도 

다른 계절에 태어난 사람보다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죠.

지리멸렬한 사계를 버티고 세상에 나오기 때문이죠.

불가피하던 모순들이 새로 싹을 틔우죠.

언제부터인가 제게는 책임감이라는

마음이 뿌리 깊이 자리했어요. 

책임감은 곧 죄책이나 자책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근시안을 깊고 깊게 만드는 매개가 되기도 합니다.

무언가 받아들이는 것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을 필요로 하네요.

하는 모든 일이 제게 어떤 방향을 가져다주든

안주하지 않는 점이 장점이 될 때도,

단점이 될 때도 있다는 사실을 안고 살죠.

대신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적다는 점을 갖기도 했습니다."

- 봄의 고백 -


 어쩌다 카카오톡 PC에서 9월 캘린더를 열었다 경악을 금치 못하는 일이 있었다. 등록된 전화번호부 기준으로 약 40명의 생일자가 있다. 적게는 한 명, 많게는 5명 이상의 생일자가 메신저에 존재한다. 잊히기 쉬운 것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가끔 상업에 속을 때도 있다. 어쨌든 가진 전화번호부 수 상으로 매일 누군가 태어났다는 이야기이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전화번호가 낡은 것도 사실이다. 영영 안 만날지도 모르는 중학교 동창의 번호까지 이전되어 있으니 말이다. 아이폰의 최대 단점이 통화는 통화목록에서 터치 한 번으로 바로 연결이 되지만, 전화번호부 연락처 하나를 삭제하기 위해서는 편집-스크롤 하단-연락처 삭제 즉, 3단계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그렇게 제거하지 않은 녹슨 데이터 수백 개가 쌓여있다. 한 달 안에 태어난 수많은 생일자의 수를 보고 일찌감치 모두를 챙길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생일'이 주는 생을 애정 수단용으로 확인하지 않는다. 스스로 정한 생일 철칙이었던 '받은 것을 돌려주자=교환 이론' 성립을 깨부숴 버렸다. 당일 생일 축하를 받지 못해도 슬프지 않다. 다 사정이 있으니까. 할 수 있다면 축하는 진심을 담아,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는 만큼만. 타인에게 축하를 받지 않아 서운해할 사람이라면, 벌써 곁에 없을 것에서 미안하다. 잘 지내자.

 평생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지구에 '생일'이라는 사적의 기념일을 무분별하게 타인과 허용하지 않아도 나쁘지 않다. 스스로 손꼽아 기다려왔던 한 해의 특별한 하루를 본인에게 있는 힘껏 축하해 주자. 꽁꽁 언 추위를 보내고, 새순이 돋는 3월이 왔다. 사계 끝에 다시 시작이 왔다. 

 실제로 겨울은 내게 인고를 안겨줬다. 자멸 감히 들 때쯤, 존재가 자그마해지는 스키장과 산, 숲으로 떠났다. 그곳은 나를 감추기 최적의 곳. 못하는 말을 하고 왔다. 다 버리고 왔다가 적확하다. 0은 다시 차곡차곡 곡식을 찾아 주워 담는다. 바구니 볏짚이 쉽게 가려지지 않아 애를 먹었다. 악조건에도 봄이 왔다. 처음 맞이하는 새로운 세상의 발아. 예쁘게 보살피고 있다. 가을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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