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희의 『내기』를 읽고-
부모는 그들의 아이가 태어나 사람의 말을 닮은 옹알이를 시작하면 거기에 갖은 의미를 담고 담아 기뻐한다. 또 그 옹알이가 언젠가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되기를 고대하다가 마침내 그 순간이 오면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충만함을 맛보게 된다. 아이가 독립적인 하나의 존재가 되어 다른 존재와 소통할 수 있게 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사랑 하나만으로 인내하고 돌보며 곁을 지키는 부모는 갖은 고생과 시련에도 그 아이가 태어나 자신에게 안겨준 기쁨과 충만감을 잊지 못하고 기꺼이 그 일을 해낸다. 부모에게 그 길고 긴 시간들은 아이의 성장과 갈등에 대해 고민하고 노심초사하는 세월이며 아이가 혼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많은 것을 가르치기 위해 고민하는 순간들의 합이다. 또한 자기 자신이기를 포기하고 부모이기를 선택하는 때이며, 정신없이 흘려보낸 자신의 시간을 먹고 자란 아이를 보며 한 순간 시간여행을 선물하는 기억이기도 하다. 그러니 부모의 눈으로 보는 말(語)이란 자식의 성장을 가늠하는 척도이자 지나간 세월의 기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에게 추억으로 남은 ‘내기’는 학습의 수단이었던 놀이가 습관이 된 경우이다. 그런데 말로 놀이를 하는 것은 비단 등장인물 뿐만은 아니다. 대화의 흐름을 살피며 읽어 내려가다 보면 작품이 등장인물들을 통해 말을 소재로 일종의 장난을 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말(語) 하지 않는 내기, 뛰어노는 말(馬), ‘나’가 처음 했던 말(語), 손으로 말(語)을 표현하는 수어에 대해 이야기한다.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이렇다 할 흐름도 없이 자잘하게 등장하는 ‘말’에 대한 이야기들은 언뜻 보면 아무런 이유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는 주인공들의 대화를 통해 이런저런 ‘말’들을 소재로 등장시키며 주제를 강화하는 특별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은 이러한 방법으로 집중시킨 ‘말(語)’이라는 주제를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나간다.
주목해야 할 것은 작품에서 그토록 강조되고 있는 말(語)은 정작 두 사람의 중요한 순간에 항상 부재한다는 사실이다. 아버지가 제안한 마지막 내기는 두 사람의 마지막 여행을 슬픔으로 물들일 수밖에 없을 그 말을 꺼내지 않도록 함으로써 서로를 배려한 것이었다. 아버지와의 마지막 추억이 될 아들의 하루, 오래도록 간직될 하루를 슬픔으로 망치지 않기 위한 장치였다. 둘은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지만 분명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여행 중 내기에서 이겼음에도 아버지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다. 오래도록 곁에 있어달라는 말, 두 사람을 슬프게 하고 말 그 말을 삼켰다.
이들은 살아오는 동안에도 여러 번 서로를 위해 ‘말하지 않는 것’을 선택해왔다. ‘말하지 않기 내기’는 어린 ‘나’를 위해 엄마가 생각해 낸 규칙이었지만 어느샌가 아버지가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을 때 사용하는 방법이 되었고, ‘나’와 아버지는 그것을 알면서도 굳이 말하지 않았다. 엄마가 갑자기 사라졌던 날에도 '나'는 무언가 나쁜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집에 돌아온 아빠를 보자마자 불안감과 안도감에 눈물이 났지만 결국,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배가 고프다는 말로 그 마음을 대신했다.
아무리 가까워도, 아무리 사랑해도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 서로를 너무 사랑해서 말하지 않는 것 또한 존재한다. 소리 없는 손짓이 ‘수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듯, 사랑하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그 공백까지도 말(語)의 범주에 포함된다. 수어는 그들이 서로를 위해 하지 않았던 말(語)들의 상징이었다. 사랑하기에 하지 않았던 말들은 ‘나’의 마음속 출렁이는 물결이 되어 남았다. 모든 것을 직접 설명하는 것보다 서로의 마음을 품어주는 것이 이들이 사랑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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