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뮤지컬
이게 몇 년만의 문화생활이니, 아니 사회생활인가?
한 달에 한 번, 시청에서 발간한 소식지가 배달된다. 주로 지난달 시청에서 진행한 업무와 행사 보고, 그리고 앞으로 진행할 사업 계획 등을 소개하기 위한 것인데, 그 달의 주요 문화 행사나 광고 같은 생활 정보도 있고, 작가나 마을 사람들 인터뷰도 실린다. 가끔은 이 동네에서 찍은 오래된 흑백사진 구경도 할 수 있고, 아무튼 빳빳한 종이의 동네 소식지는 그냥 잡지를 보듯이 그림을 주로 보면서 후룩후룩 띄엄띄엄 제법 읽을 만하다.
지난달에 소식지를 보다가 뮤지컬 광고를 보게 됐다.
어머, 이건 가야 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데, 사실 어떤 작품이냐 보다도 이 시골 동네에서 뮤지컬을 볼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예매 시작일까지 다이어리에 적어두고, 시큰둥하던 남편을 채근하여 우리 가족 셋과 어머님까지 모두 네 자리를 예약했다.
그런데 몇 년 만의 뮤지컬이냐며 엄마가 너무 호들갑을 떨었나 보다. 다음 주말에 뮤지컬 보러 갈 거라고 했더니, 딸아이가 거부 의사를 밝힌 거다. 끄응.
"나는 안 갈 거야."
남편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연 초에 서커스 공연을 보러 갔다가, 딸내미가 그만 나가자고 보채서 인터미션까지 겨우 버티다 나온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이 소식을 어떻게 전할지 우리 사이에 이견이 좀 있었다. 그냥 당일 고지하고 공연장으로 가자는 게 내 의견이었고, 남편은 차라리 미리 알려서 혹시나 필요하다면 다른 동행을 구할 시간이라도 벌어두라 했다.
남편 말대로 일찍 알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동행을 구할 시간을 번 것은 아니었다. 딸아이를 설득해 보려고 이래저래 용을 썼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론 시간 낭비였다. 아직 네 돌도 안 지난 애가 어쩜 이리 단호한지, 고집부리는 건 제 아빠를 닮은 게 틀림없었다.
이런 상황을 어렴풋이 예상하긴 했지만, 앞 뒤 재지 않고 그냥 표를 질러놓은 게 잘못이었다. 너무나 오랜만에 뮤지컬을 접할 기회가 오자, 극장엔 갈 만한 나이가 된 딸아이와 함께 가고 싶었던 내 마음이 너무 앞섰다. 아이는 뮤지컬이니 서커스니 그런 건 알 바가 아니고, 긴 시간 동안 조용히 한자리에 앉아있어야 하는 게 그저 답답하고 불편할 뿐이었을 것이다. 셰팔리 차바리 박사가 말한 대로 아이가 좋아하는 활동은 부모가 선호하는 것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강요했다가는 관계만 틀어질 테니 아예 그러지 않는 게 현명하다. 그렇긴 한데... 나는 그냥 쿨하게 '그래 그럼!' 하기가 아쉬웠다. 그녀의 책을 두 권이나 읽으면 뭐 하나, 깨어있는 부모가 되어 깨어있는 양육을 하려면 아직 멀었는데, 쯧.
미련 못 버리고 가끔씩 아이에게 슬쩍 물어봤다 퇴짜를 맞았다 반복하며 일주일을 보냈다. ('가기 싫다고 했잖아. 안 가.') 결국 공연 하루 전 날에서야 동행을 구해보기로 했다. 어머님은 뮤지컬보다는 가족과 함께 가는 게 중요했던 거라서 '그럼 나도 안 간다' 하셨다. 나는 딸과 함께 가고 싶긴 했지만 뮤지컬을 보고 싶은 마음도 컸기에 표를 버리느니 시간이 되는 사람과 같이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누구랑 가지?
한 엄마에게 뮤지컬 표가 있는데 같이 가겠냐며 조금 어색한 문자를 보냈다. 이 집은 부모가 갈라서서 따로 살기에 일주일씩 돌아가며 아이를 돌본다. 그 주에는 아빠가 아이와 함께 있는 주라 별일이 없다면 엄마 혼자 단출히 나오기 편할 것 같았다. 그녀는 1분도 안 돼서 오디오 메시지를 보내왔는데, 하필이면 자기가 교육을 받으러 마드리드에 와 있다고 엄청 아쉬워했다. 우리가 진작 이런 걸 했어야 했다며, 이제 아이들 빼고 우리끼리도 종종 만나자 했다. 그러게, 정말 그래야겠다 싶었다. 사실 그녀와는 엄마가 되기 전부터 알던 사이였는데, 아이들 플레이데이트 덕분에 자주 보면서 친해졌다. 말도 잘 통해서 우리 사이 친구 사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정작 둘이 만나서 커피 한잔 마신 적이 없었다.
친구란 어떤 사람인가를 새삼 생각하면서 다른 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 친구는 스페인어 수업에서 알게 됐고, 아이들 없이 만나 커피도 여러 번 마셨으니, 지금 내 주변에서 누구의 엄마로 존재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그냥 내 친구가 맞긴 한 것 같았다. 그녀는 처음엔 갈 수 있겠다더니, 내일 지인들과 바베큐 파티를 하기로 한 걸 까먹었다며 결국은 못 가겠다 했다. 일정도 깜빡하고, 주말까지 일을 하느라 답이 늦어진 걸 보면, 이 친구의 일상도 나 못지않게 피곤하고 정신이 없어 보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혼자 가기로 했다. 이제 시간이 너무 촉박했고, 사실 같이 가자고 할만한 사람도 더 떠오르지 않았다. 남의 나라에서 엄마 노릇을 하다 보니 이럴 때 부를 친구가 없구나 싶어 조금 씁쓸했는데, 샤워를 하면서 기분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가만, 이거 나 혼자만의 시간이잖아?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조금 설레기까지 했다. 그러고 보니 전에는 나 혼자서 여행도 가고,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전시회도 가곤 했던 기억이 났다. 혼자를 선호는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혼자라서 하고 싶은 걸 포기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 자체가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실제보다 훨씬 더 오래전처럼 느껴지는 내 모습. 그 새 잊고 있었나 싶었는데, 혼자 할 생각에 설레는 걸 보니 그건 어디 도망가는 게 아니고, 그냥 내 안에 깊숙한 데 있어서 잘 안 보였을 뿐인 듯했다.
그런데 김새는 결말. 혼자만의 뮤지컬 관람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랬다 저랬다 하다가도 어쨌든 설레는 마음을 안고 샤워를 마치고 나왔더니, 남편과 딸아이가 공연장까지 동행해 주겠다는 것이다. (굳이?) 어차피 비워놨던 시간이니 어머님과도 극장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며, 밖에서 놀고 있겠다 했다. 원래 계획했던 대로 다 같이 공연장 앞에 모여있길래, 밑져도 본전(쯧!), 정말 마지막으로 그냥 뮤지컬을 보지 않겠냐고 딸아이에게 물어봤다. 대답은 역시나 'No'. 평소엔 엄마랑 떨어지기를 굉장히 싫어하는데도 뜻을 굽히지 않는 걸 보면, 뮤지컬 보러 들어가기가 진짜 싫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남편의 친구 가족이 나타났다. 그 집은 아이가 어려서 뮤지컬을 보러 온 건 아니었고, 그냥 점심 먹기 전 산책을 나온 거였다. 어차피 그 집이나 이 집이나 다들 좀 걷다가 바에서 맥주나 한잔 할 생각이었으니, 같이 가자는 얘기가 나왔다. 남편은 급 신이 났고, 어머님은 아들 친구네와 합석하기엔 조금 불편한 상황이 됐다. 상황은 급물살을 탔다. 어머님은 아들의 부추김에 못 이긴 척, 혼자 뮤지컬을 보러 들어가는 며느리를 위해 동행이 되어 주시기로 했다. 그렇게 일주일간 엎치락뒤치락하더니만, 우연에 힘입어 어이없는 급 상황 종료.
공연 시작 전, 어머님은 왜 딸아이가 뮤지컬을 안 보고 싶어 했는지 물어보셨다. 지난번에 노래하고 춤추는 크리스마스 공연을 재미있게 보지 않았냐고 의아해하셨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어머님. 깐따후에고(Cantajuego, 아이들을 위한 유랑극단의 공연) 같은 거라고 하지 그랬니. 그러게 말입니다, 어머님. (아닌 게 아니라 좀 시간이 지난 뒤에 뮤지컬을 보자고 꼬실 기회가 생기면 그 말도 해봐야겠다 싶었다. 극장에서 하는 뮤지컬이라니 너무 각 잡은 공연 같은 느낌에 거부감이 생겼는지도 모를 일. 세 살 꼬맹이 속을 누가 알겠냐만은.)
어찌 됐던 뮤지컬은 좋았다. 시골 동네의 아담한 극장에 앉아있던 그 시간이 제법 괜찮았다. 공연 자체 보다도 이랬다 저랬다 하며 느끼고 생각했던 그 경험 전부가 좋았다. 이곳에서 알고 지내는 사람들과 메말라 있는 내 인간관계에 대해서 새삼 생각해 봤고, 무엇보다도 혼자만의 시간이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기분 상으로는 백 년 만에 본 뮤지컬 덕분에, 나는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 외에도 혼자 혹은 다른 이들과도 시간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아주 조용히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