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소녀 이제야...
여성의 날 아침을 이렇게 보내옵니다
오.등.완, 올레! 하며 힘차게 나의 오전을 시작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꽤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교실로 들어가는 아이를 진심으로 꼭 안아주지 못한 것 같다. 가는 길에 잔소리를 너무 많이 한 것 같다. 하필이면 고모네 식구들을 마주쳐서 둘 다 뚱한 얼굴로 등원하는 꼴을 보인 것 같다. 하긴, 집에서 나가기도 쉽지 않았지. 유치원에 1등으로 가고 싶다면서 옷 입을 생각은 도대체 왜 안 하는 걸까. 어제는 맛있게 마셨던 요구르트가 왜 오늘은 못 먹을 정도로 맛이 없었던 걸까. 그러고 보니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모녀가 짜그락거렸다. 아이가 손바닥으로 내 코를 누르며 장난을 쳤는데, 너무 세게 눌러 조금 아팠다. 엄마가 움찔거리며 얼굴을 돌리는 게 그저 재미있게만 보였는지 하지 말래도 계속 장난치던 녀석. 결국은 그만하라는 큰 소리로 아침을 시작했으니 그 뒤로는 모든 게 매끄러울래야 매끄러울 수가 없었다.
빈속에 커피와 샌드위치가 들어가자 마음이 조금 차분해졌다. 아이에게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힘 조절을 잘 못해서 그렇지 아이는 아침 인사 삼아 그저 장난을 치고 싶었던 것뿐일 텐데 말이다. 결국 지난밤 늦게 자서 피곤했고, 그래서 더 예민했던 건가. 그 전날은 아이가 소아과에 가느라 등원을 안 했다. 그러다 보니 하루종일 붙어있었다. 아이를 재우고 나서 힘든 하루의 끝에 책이라도 마음껏 읽겠다며 늦게까지 깨어있던 게 화근이었군. 아이에게 미안해진다.
전에 엄마가 그랬다. 너는 학교에 가면 그만이지, 엄마는 아침에 기분 좋게 학교에 보내지 못하면 하루종일 기분이 찜찜하다고. 나 역시 그렇게 학교에 온 날은 기분이 좋을 리는 없었겠지만, 학교에서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엄마보다는 그 찜찜한 기분이 그래도 금방 희석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어쩌면 이건 딸아이가 오늘 아침에 어땠던지 잊어버리고 그냥 재미있게 놀다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인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니 아침마다 등교하는 나를 보며 엄마도 속이 많이 터졌겠다 싶다. 그 시절 우리 집 아침상에는 항상 따뜻한 국이 올라와 있었는데, 아침잠이 많은 나는 잠이 덜 깨 비몽사몽 국을 뜨다가 나도 모르게 멍 때릴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답답해하며 나를 깨우곤(?) 했었다. 바쁜 아침 시간에 화장실에서 꾸물럭거리고, 옷장 앞에서 내적갈등 때리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와, 지금 쓰다 보니 내가 다 속이 터진다. 그때 엄마의 마음이 이런 거였나. 어머니, 소녀 이제야...
그래도 육아 난이도에 있어선 나보다 내 딸이 더 까다롭지 않을까. 딸아이는 장난기가 많고, 고분고분 말을 듣는 경우가 거의 없다. 미운 네 살이라더니, 하지 말라면 일단 하고 엄마 아빠가 어떻게 나오는지 본다. 에너지도 많아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잠시 한눈을 팔면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 때가 많다. 나는 어렸을 때 엄마 아빠 말도 잘 듣고, 얌전히 앉아서 블록이나 맞추고 놀았던 것 같은데 이상하다며, 남편에게 그 화살을 돌리면, 남편은 자기야말로 어릴 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아서, 키우기 쉬운 아이였다고 응수한다. 그런데 그 옛날 엄마의 험난했었던 오.등.완.을 생각해 보니... 얘 내 딸 맞네, 내 딸 맞아.
어쨌든. 오늘 유치원에서 데려올 때는 꼭 안아줘야지, 아이가 잘못하면 그 행동만 고쳐주고 아이에게 화를 내지는 말아야지 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는 중에, 시어머니가 보낸 왓츠앱 메시지가 떴다.
Feliz Día de la mujer!
하필, 여성의 날이었다.
'엄마가 더 잘할게'를 반복하는 부족한 엄마의 리추얼을 하던 중이라 조금은 괴리감이 느껴졌다. 휴. 조금 개인적인 수준이긴 하지만 어쨌든 엄마 생각도 하고, 딸 생각도 하긴 하고 있었으니, 여성의 삶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건 맞지 않나, 뭐.
어찌 보면 내가 요즘 육아가 너무 어렵다 느끼고, 아이에게 종종 버럭하는 건 엄마로서의 내 일을 별 것 아닌 시시한 일로 치부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돈이 벌리는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내 시간의 대부분을 쏟으면서도 가사와 돌봄의 가치를 스스로도 인정하지 않았던 게 아니냐는 물음. 가사와 돌봄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담당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더 중요한 건 수입이 들어오는 게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동안 무시당해 왔던 그 노동의 가치를 바로 보는 일이다. 전통적으로 가정 내에서의 노동을 대부분 여성이 담당했던 것뿐이지, 누가 해야 하는가는 개별 가정의 상황에 따라 정해져야 하고, 그 수고는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제대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던 건데도, 마음으로는 솔직히 그렇지 못했던 게 벌써 몇 년이나 된 것 같았다. 살려낸다는 뜻의 '살림'이 가사를 뜻하는 또 다른 이름이란 걸 책에서 읽고는 나름 꽤나 감동했었던 나는 그 마음을 한동안 잊고 지내고 있었다. 스스로도 나의 주된 임무를 시시하게 여기고 있었으니, 사실은 난이도가 꽤나 높은 그 일에 부딪혀 힘이 들 때면 화가 났었던 것이다.
흠흠, 요즘 마구 흔들리는 마음처럼 글도 이래저래 흔들리는 것 같아 요약을 해보자면, 아침부터 아이에게 욱하고는 영 마음이 쓰이던 엄마가 시어머니에게 여성의 날 축하 문자를 받고, 잠깐 여성의 삶과 권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다가, 좀 더 단단하고 멋진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개인적인 다짐으로 오전을 마무리했다는 이야기다. 나도 그랬듯이 결국 내 딸도 엄마인 나를 보며 배울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배울지는 아이가 받아들이기 나름이지만 어쨌든 나로서는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줘야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