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희경 Mar 25. 2017

리얼리즘…하나의 이삭에, 두 주먹에 담은 동시대성(2)

<컬처푸어 당신에게, 여섯번째 편지>…아트리치로 가는 길 ②


<리얼리즘…하나의 이삭에,  두 주먹에 담은 동시대성>


2. 그는 왜 주먹을 쥐었나


다시 오르세미술관 전시회 얘기로 잠깐 돌아가 볼까요. 이 전시회엔 매우 평온해 보이는 한 그림이 있었습니다. 쥘 바스티앙 르파주의 ‘건초더미’란 작품입니다. 르파주는 사진을 찍듯 눈에 보이는 것을 고스란히 표현하는 자연주의 화가지만 쿠르베와 밀레의 영향을 많이 받아  리얼리즘적 화풍도 보이는데요. 이 작품에선 두 가지 성향이 뒤섞여 나타난 것 같습니다.


르파주 '건초더미'.

 언뜻 보기엔 앞서 말씀드린 대로 한 부부가 휴식을 취하고 있는 평온한 작품인 것 같습니다. 남편은 잠을 자고 있고 아내는 자다가 일어난 것인지 앉아있죠.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인의 얼굴이 왠지 밝지 않습니다. 지치고 피곤한 표정인데요. 아내의 자세를 봐도 몸이 축 처져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보다 더 인상 깊은 건 곤히 자고 있는 남편의 모습입니다. 얼굴은 모자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그의 자세에서 특이한 점을 하나 찾을 수 있습니다. 두 주먹을 불끈 쥔 것입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주먹에 왠지 힘이 들어간 느낌마저 듭니다.

 두 주먹을 쥐고 잠을 잔 적이 있으신가요. 게다가 힘까지 들어간 상태로 주먹을 꽉 쥔 채 말이죠. 지금 이 글을 보시고 계시다면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시겠어요. 그리고 그대로 자는 상상을 한번 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자세로 잔다는 것은 어떤 심리 상태를 의미할까요. 잔뜩 긴장한 채로, 잠깐 쉬는 것일 뿐 곧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는 것 아닐까요.


  이 그림은 농부 부부가 일을 하다가 지쳐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는 순간을 포착했습니다. 뒤편에 쌓여 있는 건초더미를 보면 그들이 일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남편의 꽉 쥔 손은 자면서도 편히 쉬지 못하는 심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곧 일어나 다시 일을 하러 가야 하는데 대한 부담감을 안고 잠든 것이죠.  아내 역시 일에 너무나 지쳐 멍하니 앉아있습니다.  푸르른 색감에 고요하고 평온해 보이는 그림. 그러나 여기엔 작은 표정과 손짓에 보통 사람들의 고단한 삶이 통째로 담겨 있습니다.


  앞서 리얼리즘이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동시대성이라고 얘기했는데요. 더 나아가 조각으로 퍼즐을 맞추듯 이 같은 작품들을 남겨 역사를 기록하고자 했던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신고전주의 등의 화가들이 역사를 화폭에 담아도 이는 일부 위인들에 국한됐습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자 권력을 가진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그들과 멀찍이 떨어져 있던 대다수의 사람들의 삶은 그 시대를 살지 못한 후대의 사람들에게 일일이 전해지기 어렵습니다. 지배하지 못하고 지배된 사람들, 논밭을 일구고 망치로 쇳덩이를 두들기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책을 통해서도 접하기 힘들죠. 그저 두루뭉술하게 당시의 경제상 정도만 짧게 전해질뿐입니다. 그러나 그 시대를 살아갔던 이들의 표정은 어땠을까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청년들은, 아낙들은, 아이들은….그 표정과 느낌을 날것 그대로 알고 싶어 집니다.


 그럴 때 리얼리즘은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화가는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 옆집 사람, 같은 동네 사람을 그릴 수 있죠. 역사책은 이를 하나하나 기록하지 못하지만 화가는 충분히 가능하고, 이 날것에 화가의 감정까지 담을 수 있습니다. 붓질 한번에, 색깔 하나에도 분위기와 의미를 더할 수 있는 것이죠.


 르파주의 그림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얼굴부터 옷, 신발에까지 맴도는 어두운 색채와 얼룩이 보이시나요. 신분의 차이와 그로 인한 빈부 격차, 그보다 더한 행복과 고난의 격차는 색채 하나에도 담겨 있죠. 그렇게 리얼리즘은 보통 사람들의 역사 속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아트리치로 '쉽게' 가는 길…필수+재미만 쏙쏙!>


STEP 1. 꼭 기억해요!

*리얼리즘: 현실을 구체적이고 깊게, 그리고 담담하게!

*리얼리즘 화가: 밀레, 쿠르베, 도미에


STEP 2. 더 알면 좋아요!

*리얼리즘 화가들의 대표작: 밀레-이삭줍기, 쿠르베-오르낭의 매장, 도미에-삼등열차, 르파주(자연주의에 리얼리즘 화풍이 더해짐)-건초더미

*동시대성: 시대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 그러나 무조건 현실을 그대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 시대를 사는 이들의 숨은 감정을 포착하는 게 관건!




매거진의 이전글 리얼리즘…하나의 이삭에,두 주먹에 담은 동시대성(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