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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경 Jan 06. 2019

[컬처insight]파괴가 만드는 예술의 역사

뱅크시의 '풍선과 소녀'

“파괴의 욕구는 창조의 욕구다.”
   말을 했던 화가 파블로 피카소도 미처 상상하지 못했을  같다자신의 완성작을 대중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파괴하는  말이다.  그라피티를 주로 그리며 세계 최고 수준의 거리예술가로 꼽히는 영국 출신의 뱅크시가 이 일을 해냈다.


  지난해 10월 뱅크시의 작품 ‘풍선과 소녀 영국 런던의 소더비 경매장에서 104만파운드( 15억원) 낙찰됐다그리고 낙찰봉 소리가 울리는 순간, 그림은 세로로 잘려나갔다이후 뱅크시는 인스타그램에 피카소의 말을 인용하며 영상을 올렸다액자에 파쇄기를 설치했던 장면그림이 파쇄되자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장면을 담았다그는 “경매에 부쳐질 것을 대비해 몇년  파쇄기를 설치했다 밝혔다뱅크시는 28년간 신원을 숨기고 가명을   사회적 약자를 그리고 예술과 자유를 억압하는 권위를 풍자해 왔다그런 그가 직접 작품을 파괴함으로써 예술을 완성했다소더비의 유럽현대미술 책임자인 알렉스 브랜식이  말은 미술계와 대중들이 느낀 신선한 충격을  드러낸다. “우리는 뱅크시당했다( We’ve been Banksy-ed).”


         영국 소더비 경매장에서 뱅크시의 작품 '풍선과 소녀'가 낙찰되자마자 찢어져 사람들이 놀라고 있다.


  뱅크시뿐만 아니다. 파괴가 만드는 예술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미술음악건축  모든 분야에 해당하는 얘기다 파괴는 단순한 ‘장난 아니다누군가는 “저런  예술이면 나도   있다 말한다하지만 누구나 쉽게 하지 못했던 행위다. 나아가 이 파괴는 예술인들과 관람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들이 알고 있는 예술이 정말 예술의 전부인가”라는


  예술에 절대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 머릿 속엔 정형화된 틀이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원근법을 떠올리고 스케치를 시작하는 것처럼원근법은 움직이지 않고  방향에서 바라본  그대로 투사한다그런데  시점을 하나로 고정시켜야만 할까여러 시점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질문에서 출발한 것이 ‘역원근법이다이에 따라 이동을 하면서 사물을 바라보면   아래를 화폭에  담을  있다. 15~17세기 러시아 화가들은 역원근법을 사용했다하지만 이탈리아프랑스 등에선 원근법이 오랜 시간 기본 공식으로 자리잡았다 공식은 19세기에 와서야 깨졌다후기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프랑스 화가  세잔이 파괴했다세잔은 역원근법으로 다양한 시점을 투영해 ‘ 빅투아르 ’ 등을 그렸다정물화에서 기존의 공식에서 벗어나는 부분은 식탁보로 가려버리는 고도의 테크닉도 선보였다세잔은 피카소를 비롯한 입체파를 탄생시키는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미술의 포문을 여는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다.


   이후의 현대미술은 파괴의 강도와 속도를 높여 갔다소변기에 서명만 한채 ‘이란 제목을 붙여 전시한 마르셀 뒤샹죽은 상어를 유리 진열장 속에 매달고 모터로 연결한 데미안 허스트 등을 파괴자로 부를  있다악동처럼만 보일 수도 있다하지만 예술의 역사는 이들을 기억하고거장이라 칭한다그들이 파괴로써 던진 물음은 예술의 본질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했다뒤샹은 이런 질문을 했다. “왜 직접 만든 것만이 작품인가.”  예술의 본질이 무엇을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 창의적 생각 자체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중절모를  신사들이 비처럼 등장하는 ‘골콩드 그린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얘기도 맞닿는다. “나는 화가가 아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림은 표현방식이자 교류방식이다.”  


  파괴가 던지는 질문이 때론 아프고 충격적일  있다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물결을 거부하는 것은 예술의 본질 밖으로 내몰리는 것을 자초하는 행위일  있다낭만주의 교향곡의 대가였던 요하네스 브람스와 기존 교향곡의 틀을 깼던 구스타프 말러의 대화  토막을 전한다둘이 함께 개울가를 산책하던  브람스는 새로운 사조의 등장에 투덜댔다. “음악은 이제 끝났네요즘 나오는 작품들은 진정성이 없어.” 그러자 말러가 개울을 가리키며 말했다. “선생님저기 마지막 물결이 흘러오고 있군요.” 브람스는 뭔가를 깨달은  웃었다예술에 마지막 물결은 없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물결이 밀려들고, 또 그래야만 한다. 예술의 역사는 오늘도 파괴가 줄 신선한 충격을 기다리고 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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