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파이, 넷플릭스의 콘텐츠 유통 전략
세계 최대 음악 스트리밍 업체 ‘스포티파이’는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레이블(음반 제작사)을 통하지 않고 직접 뮤지션들과 계약을 맺고 음원을 받는다. 뮤지션이 자신이 만든 음원을 주면 검토를 한 후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한다. 레이블은 통상 뮤지션이 만드는 제작 전후의 모든 과정을 이끈다. 기획부터 시작해 스트리밍 업체에 음원을 공급하는 역할까지 맡는다. 스포티파이는 이를 과감히 생략, 레이블을 제외하고 뮤지션과 직거래를 하려는 것이다. 아직 시범 단계지만 뮤지션들에게서 수백여곡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마트나 편의점 같은 유통업체들이 직접 제품을 만들어 팔듯, 플랫폼 업체들이 PB(private brand·자체 브랜드) 콘텐츠를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스포티파이처럼 제작사를 생략하고 창작자와 직접 거래를 하기도 하고, 넷플릭스처럼 아예 이들에게 자신들의 콘텐츠를 만들게도 한다.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콘텐츠’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PB전략은 이제 스포티파이, 유튜브 등 영역을 뛰어넘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플랫폼 업체들이 유통업체들의 PB 전략을 가져온 것은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넷플릭스는 2007년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OTT) 플랫폼을 만들었다. 그런데 5년만에 위기에 부딪혔다. 그해 360억달러에 콘텐츠 공급 계약을 맺었던 스타즈엔터테인먼트가 5년 후 금액을 10배 인상해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이를 교훈삼아 2013년 오리지널 콘텐츠 ‘하우스 오브 카드’를 만들었다. 다른 플랫폼 업체들도 콘텐츠를 안정적으로 수급하기 위해 이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또 스포티파이는 적자 부담을 덜기 위해 PB전략으로 돌아섰다. 사용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저작권료 지급으로 2017년 3억7800만유로(약 4873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레이블에 돌아가는 몫을 최대한 줄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들의 전략은 창작자들에게 환영받고 있다. 대규모 자본을 제공받기 때문에 제작비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플랫폼 업체들은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창작의 자유도 최대한 보장한다. 창작자들은 제작사가 가질 수 없는, 플랫폼 업체만의 방대한 데이터에도 매력을 느낀다. 스포티파이는 뮤지션들에게 플랫폼 이용자들의 데이터도 분석해 제공한다. 그의 노래를 언제, 어떤 사람들이, 어디서, 어떤 구간을 많이 들었는지 등이다. 뮤지션은 이를 받아 다음 음원을 만들 때 활용하면 된다. 대중들도 반기는 분위기다. 창작자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거의 날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 자신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더 많이 즐길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플랫폼 업체들은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PB콘텐츠에 각자의 개성도 담기 시작했다. 유튜브는 최근 한국에서 첫 오리지널 드라마 ‘탑매니지먼트’를 선보였다. 이전에 공개한 ‘방탄소년단: 번 더 스테이지’ ‘달려라, 빅뱅단!’ ‘ 권지용 액트 III: 모태’에 이어 K팝을 소재로 한다. K팝에 관심이 많은 국내외 팬들을 이용자로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카카오는 웹툰과 웹소설, 문학 지식재산권(IP)를 다량으로 갖고 있는 카카오페이지를 활용해 콘텐츠를 제작할 계획이다.
유통업체의 PB상품이 인기를 얻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다. PB상품이 처음 나왔을 당시엔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것 말곤 특별한 장점이 없었다. 호기심을 보였던 소비자들은 곧 외면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후 점차 질을 높이면서 관심을 회복했다. 최근 플랫폼 업체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PB콘텐츠를 좋아하는 것도 가성비와 연결된다. 매달 일정 금액을 내면 그 플랫폼에 있는 수준 높은 콘텐츠들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하지만 PB콘텐츠가 쏟아지면서 한편으론 외면받는 작품들도 생겨나고 있다. 결국 PB콘텐츠가 살아남는 방법도 ‘가성비’라는 PB 전략의 기본에 있지 않을까.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