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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경 Mar 05. 2017

단색화…한국적 비움과 인내가 만든 세계적 열풍 (1)

<컬처푸어 당신에게, 두번째 편지> …아트리치로 가는 길 ①


<단색화… 한국적 비움과 인내가 만든 세계적 열풍> 


 “저건 나도 그릴 것 같은데 왜 저렇게 비싼거야?”

 단색화 작품 혹은 관련 기사를 보면서 이런 얘기 해본 적 있진 않으신가요. 단색화는 유독 다른 그림들보다 이런 말을 더 자주 듣는 것 같습니다. 한두 가지 색으로 된 단색화는 작품 자체로만 보면 너무 단순한데, 가격은 또 엄청 비싸기 때문이죠.


 현재 최고가는 김환기의 작품 ‘12-V-70 #172’로 지난해 11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63억 2626만원에 낙찰됐습니다. 역대 한국 미술품 경매가 중에서도 가장 높습니다. 김환기의 작품은 미술품 경매가 중 1~5위를 전부 차지하고 있으며, 이우환 박서보 등 다른 단색화 화가들의 작품도 매우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죠.


김환기 '12-V-70 #172’


 2014년 말부터 시작된 단색화 열풍은 여전히 진행형인데요. 그 열풍은 한국에서뿐만이 아니라 홍콩 등 아시아, 유럽, 미국 시장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또 다른 의문점이 생기는데요. ‘서양에서도 유사한 작품들이 많은데 한국의 단색화가 주목받고 있는가'입니다.



   1. 반복과 비움으로 우려내다


  단색화에 대한 오해는 눈에 언뜻 보이는 단순함으로만 노력의 정도를 가늠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 같습니다. 단순하게 그린만큼 쉽게 그려졌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죠.


 그러나 단색화는 ‘반복의 미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수없이 반복하고 인내한 결과물입니다. 한국적 특유의 정서가 담긴 자기 수련적 행태에 가깝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박서보는 2015년 SKY A&C의 ‘아틀리에 스토리’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스님이 독경을 반복하듯이,
단색화도 반복을 통해서
자신을 해체하고 비워내는 것입니다.


 박서보는 한지에 연필로 선을 긋고 또 지우고 또 긋습니다. 김기린은 한지를 20차례 넘게 캔버스에 바르고 그 위에 물감을 바르길 반복합니다. 정성화는 고령토와 아크릴 물감을 이용해 떼어내기와 메우기를 번갈아 계속합니다. 여기엔 행위와 행위 사이에 시간이 존재하게 되고, 작가는 수련을 하듯 기다리게 됩니다. 긴 시간을 인내하는 동안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되고, 그 고민을 비워내기를 수없이 반복하는 것입니다.  ‘나도 그릴 것 같다’는 말을 쉽게 하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박서보 '묘법 060220'



 수없는 반복으로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나는데요. 하나는 질감이라는 것이 생깁니다. 단색화는 평면화에 속하지만, 평면에 그냥 물감을 칠한 듯한 밋밋한 느낌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가까이서 보면 두툼한 물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복해서 한지도 바르고, 고령토도 쓰다 보면 하나의 덩어리처럼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이를 또 긁어내다 보면 거칠한 느낌까지 더해져 질감이 더욱 짙어집니다.


 질감이 과하면 답답함을 느낄 수 있겠죠. 그러나 단색화는 한국 미술의 전통적 아름다움인 ‘여백’을 한껏 살립니다. 겹쳐지고 번지고 또 스며드는 무한한 반복 속에서도 한국 작가들은 여백을 절대 빼놓지 않는데요. 강한 질감으로 다가가면서도 생각할 틈을 만들어 놓는 것이죠. 이 틈에 작가의 ‘정신’을 담고, 관객들의 ‘정신’을 담아내고자 했던 것 아닐까요.


 또 하나, 반복으로 인해 나타나는 특이점은 언뜻 보기엔 한 가지 색이더라도 한 가지 색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질감에 따라, 보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 색이 다양하게 다가옵니다. 두께와 각도에 따라 빛이 비칠 때 색이 다르게 보이는 것이죠. 이를 통해 관객들은 은은하면서도 다채로운 느낌을 받게 될 수 있습니다. 관객들은 이리저리 위치와 시선을 바꿔가며 그림이 주는 감동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으니, 단색화는 ‘참여형’ 작품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보니 단색화가 더 따뜻하고 향기 나는 작품이란 생각이 들지 않으신가요. 한국적 인내, 기다림으로 스스로를 비우며 채워나간 그림이 단색화인 것 같습니다.


 서양화에도 ‘미니멀리즘’이란 비슷한 화풍이 있습니다. 단색화가 미니멀리즘의 하나로만 분류되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엄연히 차이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입니다.


 미니멀리즘도 단순하면서도 간결한 게 특징이고, 연속과 단절을 강조하면서 이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여기엔 이성적이면서도 차가운 듯한 느낌이 담겨 있습니다. 단색화엔 이보다 여리면서도 단단한 감성이 깃들여 있고, 여백으로 인해 자연적인 성격도 가미돼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전문가들은 “단색화엔 서양화에선 볼 수 없는 ‘곰탕’ 같은 매력이 있다”고들 합니다. 기다리고, 지켜보고, 우려낸 깊은 맛의 그림이란 얘기가 아닐까요.


미니멀리즘 화가 도널드 저드의 '무제-번스타인 90-01'.



 홍콩 등 아시아에서뿐만 아니라 유럽, 미국의 미술시장에서도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겠죠. 서양의 미니멀리즘과는 비슷한 듯 다른 작품. 미니멀리즘엔 없는 한국 특유의 감성이 깃든 그림. 미술평론가 윤진섭은 단색화를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한국의 단색화’ 전에서 영문으로 ‘Dansaekwha’라고 쓰기도 했는데요. 이제 정말 단색화가 세계에서 고유명사 자체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음 회에선 '2.시대와 시장이 만든 열풍, 그리고 명암'이란 부제로 해당 글을 이어갑니다. 많은 기대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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