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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경 Mar 01. 2017

조성진과 쇼팽…위대한 음악가는 반전으로 말한다 (2)

<컬처푸어 당신에게, 첫번째 편지> …클래식리치로 가는 길 ①  


 <조성진과 쇼팽…위대한 음악가는 반전으로 말한다>     

    

  2.쇼팽, '시인'으로는 설명 불가한 폭발성

 

 그렇다면 시대를 뛰어넘어 위대한 음악가로 남은 쇼팽은 어땠을까요. 위대한 음악가에겐 오랜 시간이 흐르고 흘러 붙여지는 수식어들이 있습니다. 어릴 때 음악학원에서나 학교에서 이런 것들을 암기하곤 하는데요.

  '음악의 악성 베토벤,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 피아노의 시인 쇼팽…’

 그 영향 때문일까요.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엔 이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쇼팽도 마찬가지입니다.


  ‘피아노의 시인 (Poet of the Piano)’이란 말 자체가 주는 아름다움처럼 쇼팽의 음악은 시처럼 잔잔한 파문을 던집니다. 섬세하고 서정적인 선율을 듣자면 정말 한편의 시가 펼쳐지는 것 같죠.

 하지만 여기서 착각도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쇼팽의 음악적 삶도 정적이면서도 단조로웠을 것 같습니다. 그에겐 불같이 뜨거운 열정보다 평정심을 잃지 않는 온화한 성격이 더 어울려 보이기도 합니다.


  분명 그의 작품 색채를 표현하기에 ‘시인’이란 단어보다 더 적합한 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 단어가 그의 음악적 삶과 내면까진 미처 담아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쇼팽의 음악 인생은 시인이란 말로는 설명 불가한 폭발성을 갖고 있습니다.

 

들라크루아가 그린 쇼팽의 초상화.

 

천재에게 주어진 가혹한 운명이었을까요. 그는 39살의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길지 않은 인생에서 많은 곡을 남기긴 어려웠을 텐데요. 하지만 그의 작품 수는 200곡이 넘습니다. 얼마나 끊임없이 음악을 만들고, 또 만들었는지 알 수 있죠.

 그에게서 수많은 곡들만 탄생한 것이 아닙니다. 쇼팽은 하나의 작품 그 이상인 장르, 양식을 만들어냈습니다. 녹턴, 왈츠  모두 그의 손으로 재탄생한 독립 양식입니다.


 쇼팽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녹턴'일 겁니다. 녹턴은 ‘밤의 음악’이란 뜻의 '야상곡'이라고 하죠. 녹턴은 아일랜드의 음악가 존 필드가 피아노 음악으로 만든 것으로, 밤에 듣기 편안하게 조용히 부드럽게 흘러가는 선율이 특징입니다. 그러나 쇼팽 이전엔 녹턴이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비슷한 형식의 세레나데가 그러하듯 쇠퇴할 운명에 처해 있었죠.


 하지만 여기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 쇼팽입니다. 그는 21곡에 달하는 녹턴을 작곡했죠. 이 과정에서 녹턴은 발전을 거듭합니다. 더 정교해졌을 뿐만 아니라 ‘시간’ 그 자체가 녹턴에 녹아들었습니다.

 쇼팽의 ‘녹턴 15번’을 들으면 이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데요. 처음엔 해가 저물 무렵 하루를 담담하게 마무리하는 듯 조용히 선율이 흐릅니다. 그러다 갑자기 격정적이고 빠르게 진행되며 분위기가 반전됩니다. 밤이 깊어지기 시작하면서 고뇌가 시작되었거나, 창밖에 무거운 비라도 내린 건 아닐까요. 그러다 다시 어둠을 빠져나오는 순간이 다가옵니다. 잠에 들기 직전 고민을 접고 내일을 기약하듯 말이죠.  


  https://www.youtube.com/watch?v=uArPsYTVfiw

쇼팽의 녹턴 15번. @유튜브


 시간의 흐름에 따른 감정의 변화까지 담아낸 그의 녹턴. 여기엔 또 하나의 비밀이 숨어 있는데요. 페달을 더욱 사용하게 해냈다는 것입니다. 쇼팽은 페달을 밟았다가 살짝 힘을 빼고 다시 또 힘을 주는 강약 조절의 레가토 기법을 독자적으로 발전시켰고, 이는 감정의 굴곡을 담아내는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왈츠를 독자적인 양식으로 끌어올린 것도 쇼팽이었습니다. 쇼팽이 작곡한 왈츠 역시 21곡. 이전에 왈츠는 그저 춤을 출 때 깔리는 반주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만 흘려보내던 선율이 어느 순간 춤을 추지 않아도 정말 그 작품을 듣고 싶어서, 순수하게 그 작품을 연주하고 싶어서 찾게 되는 음악이 된 것입니다. 이는 모두 쇼팽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쇼팽의 왈츠 중엔 유명한 작품이 많은데요.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이름처럼 화려하고 경쾌한 ‘화려한 대왈츠’입니다. 대만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에 나온 ‘왈츠 7번’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피아니스트 부닌은 쇼팽의 왈츠 7번을 듣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 곡을 알고부터 피아노와 진정한 사랑에 빠질 수 있었다. 그리고 평생 쇼팽만 연주하고 싶어졌다.”


 그의 또 다른 반전을 보여주는 곡이 있는데요. 많은 분들이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즉흥환상곡’입니다. 떠오르는 대로 곡을 쓴 만큼 자유분방하고, 첫 시작이 매우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두 손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 다른 높낮이의 음들이 교차하게 되죠. 여기서 ‘환상곡’이란 단어가 주는 어감처럼 환상적인 느낌을 받게 됩니다. 거리낌없이 시원하게 쭉쭉 뻗어나가는 선율에 금방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 것이죠. 아마 그동안 조용하고 차분한 쇼팽의 작품만을 들었던 분이라면 이 곡으로 강렬한 인상을 받을 수 있으실 겁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4v4Ipl_UJI

쇼팽의 '즉흥환상곡' @유튜브




 이렇게 수많은 작품을 남겼고,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내는 데는 엄청난 열정이 필요할텐데요. 쇼팽은 음악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사랑 앞에서 그랬는데요. 조용히 사랑의 세레나데만을 부르거나 안정적인 사랑만을 했을 것 같은 이미지로 보이지만 전혀 달랐죠.


 그중에서도 작가였던 조르주 상드와의 사랑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6살 연상에, 결혼까지 한적이 있는, 자유분방하면서도 진취적인 그녀를 쇼팽은 매우 사랑했다고 합니다. 현대에 와선 상드의 진취적인 면이 더 부각되지만 당시만 해도 그녀는 각종 스캔들과 비난을 받았죠. 그러나 꿋꿋이 사랑을 쟁취한 쇼팽을 보면 주변의 시선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 당찬 모습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엔 물론 다소 까칠한 쇼팽을 지켜준 상드의 모성애적 사랑도 있었지만요.



들라크루아가 그린 조르주 상드의 초상화.


 어떠신가요. 평소 조성진과 쇼팽에 대해 떠올렸던 이미지와 좀 많이 다르지 않은가요. 이들의 반전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다 알면서도 잘 지키지 못하는 두 가지로 인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열정과 노력’ 말입니다.

 


 조성진은 한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쇼팽 콩쿠르 결승곡인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우승 이후 정말 많이 연주하게 됐다.
50번은 넘게 한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지루하지 않냐고도 한다.

그런데 50번을 연주하고 나니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무대에서만 50번 이상 연주한 것일테니, 이를 위한 연습은 아마 더 많이 했겠죠. 이 말을 듣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살면서 50번 넘게 뭔가를 해본 적이 있었던가.’


 한곡을 50번 넘게 연주하는 조성진, 짧은 삶에도 혼신을 다해 200곡이 넘는 작품을 쓴 쇼팽.  위대한 음악가들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의 위대함을 깨울 방법을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클래식리치로 '쉽게' 가는 길…필수+재미만 쏙쏙!>                       


 STEP 1. 꼭 기억해요!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쇼팽콩쿠르 우승작: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STEP 2. 더 알면 좋아요!

*쇼팽의 '즉흥환상곡'.

*영화 '피아니스트' : 로만 폴란스키 감독. 유대인 피아니스트를 중심으로 한 홀로코스트 영화. 극한의 절망 속, 한줄기 빛처럼 쇼팽의 음악이 흐른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영화 '피아니스트'를 보기엔 너무 무겁고 부담된다면 주걸륜 감독 및 주연의 이 영화를 추천. 피아노배틀 등에서 쏟아지는 쇼팽의 음악을 듣고,  건반악기가 주는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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