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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경 Feb 23. 2017

조성진과 쇼팽… 위대한 음악가는 반전으로 말한다 (1)

<컬처푸어 당신에게, 첫번째 편지> …클래식리치로 가는 길 ①  


<조성진과 쇼팽…위대한 음악가는 반전으로 말한다>       


‘피아니스트 조성진’.

 평소 클래식엔 전혀 관심이 없는 분도, 이 이름을 최근 한번쯤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기사나 SNS 등에서 대단한 실력을 가졌다, 어떤 대회에서 상 받았다더라 이런 이야기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국내 클래식계에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리고, 더 나아가 세계에서 주목을 받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죠. 그런 의미에서 이런 존재가 대한민국에서 나왔다는 것 자체가 기쁜 일입니다. 물론 국내에서도 대중들에게 꽤 알려진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올해 23살밖에 안된 젊은 음악가가 국내외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 그런 음악가가 척박한 한국 클래식계에서 탄생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조성진의 기적은 2015년 10월에 일어났습니다. 한국인 최초로 ‘쇼팽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을 한 것이죠. 쇼팽의 고향인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5년마다 열리는 이 콩쿠르는 차이코프스키국제음악콩쿠르(러시아), 퀸엘리자베스국제음악콩쿠르(벨기에)와 함께 세계 3대 음악 콩쿠르로 꼽힙니다. 6살에 피아노를 시작한 그는 11살이었던 2005년 쇼팽 콩쿠르를 보며 꼭 출전하겠다는 꿈을 꿨다고 합니다. 그리고 10년만에 이 꿈을 이루고야 말았는데요. 그의 나이 고작 21살이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614oSsDS734

'쇼팽국제피아노콩쿠르' 결선. 조성진은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유튜브.



 조성진과 쇼팽엔 공통점이 있습니다. 어쩌면 위대한 음악가 중 많은 이들의 공통점일 수도 있죠. 하지만 유독 두 음악가엔 이 공통점이 두드러지는데요. 그 공통점은 ‘반전’입니다.


 천재 음악가에겐 대중의 머릿속에 각인된 이미지라는 것이 존재하죠. 마치 드라마 한 작품을 보고나면 연예인과 그 드라마 속 인물을 동일시하는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나는데요. 조성진은 쇼팽의 음악을 잘 소화해 내고, 쇼팽의 작품들은 섬세하고 평온한 곡이 많죠. 그러니 조성진의 이미지 또한 그렇게 보입니다. 쇼팽도 마찬가지입니다. 섬세하고 평온한 곡을 만든 그의 삶과 음악활동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여기에 갇혀 있지 않는 음악가들입니다. 대중들의 예상보다 훨씬 자유롭고도 힘 있는 손과 마음을 가진 존재들이죠. 대중들이 접하게 되는 그들의 음악은 그 모든 것을 꾹꾹 담아내고 빚어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두 인물은 자신의 위대함을 반전으로 증명해 내고 있습니다.    

  

1.조성진의 ‘확장성’...틀에 갇히지 않는 힘     


‘~ 스페셜리스트.’

 연주자에겐 이런 타이틀이 종종 붙습니다. 한 유명 음악가나 한 장르를 특화해서 잘 소화해낸 사람에게 대중들이 붙여주는 것이죠. 조성진에겐 콩쿠르 입상 순간부터 쇼팽 스페셜리스트란 타이틀이 생겼습니다. 기자간담회 등 공식석상에서도 그는 앳된 얼굴에 차분한 말투로 말을 이어가는데요. 쇼팽 음악이 주는 느낌과도 비슷한 인상을 받게 됩니다.


 스페셜리스트 타이틀은 정말 영광스런 것입니다. 전문성을 인정받는 동시에 관련 무대에 설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일까요. 수많은 연주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스페셜리스트 타이틀에 안주합니다.


 그러나 ‘쇼팽 스페셜리스트’인 조성진은 ‘쇼팽 스페셜리스트’만은 아니기 위해 부지런히 날개짓을 합니다. 어린 나이에 스페셜리스트 타이틀을 가졌지만 이를 즐기기만 하는 것이 아닌거죠. 사실 아직은 관객들이 바라지 않는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공연장에서 많은 관객들은 그가 가장 잘하고 유명한 작품들을 연주해주길 바랍니다. 연주자들에게도 그게 편하죠. 하지만 조성진은 벌써부터 그 틀을 깨려는 시도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그의 손끝은 무한한 확장성을 지니고 반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올해 1월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국내 첫 리사이틀(독주회)은 이를 입증하는 무대였습니다. 1부에서 관객들은 낯선 그의 모습과 마주하게 됐는데요. 알반 베르크의 ‘피아노 소나타 b단조’,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9번 c단조’를 연주한 것이죠.

 20세기 현대음악가 베르크의 이름조차 처음 듣는 관객들이 꽤 있었을 겁니다. 슈베르트의 곡 역시 익숙지 않은 작품입니다. 게다가 두곡은 매우 난해합니다. 정교하게 터치를 이어가면서도 몽환적이고 로맨틱한 분위기까지 내야합니다. 조성진은 이 어려운 도전에 과감히 나섰습니다. 그의 나이, 그의 경험, 그의 이미지를 벗어난 것이었죠.



올해 1월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조성진의 리사이틀(독주회). @롯데콘서트홀




 물론 그가 가장 자유로웠던 순간은 2부 쇼팽의 음악에서였습니다. 쇼팽 발라드 1~4번 연주에서 그의 손은 너무나 가볍고 역동적으로 건반 위를 오갔습니다. 콩쿠르 입상 후와도 달라진 모습이었습니다. 그 짧은 시간동안 조성진만의 감수성과 해석이 완성된 것이었습니다. 그의 2부 공연은 한편의 멋진 대서사시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여기에 머물기만 해도 충분할 것 같은데, 그는 대형 피아니스트로의 험난한 길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베르크와 슈베르트 연주는 쇼팽 작품을 연주할 때처럼 자유롭진 못했습니다. 그는 균형을 잃지 않고 연주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긴장한 듯 힘이 살짝 들어간 느낌도 있었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1부에서 위대한 음악가의 모습을 느꼈습니다. 소리는 서서히 피어나더니 공연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맺힌 그의 몽글몽글한 땀방울을 엿볼 수 있었죠. 여기서 쇼팽 스페셜리스트에게서 쇼팽이 아닌 다른 음악가의 작품을 듣고 더 큰 감동을 받는 반전의 묘미가 나타났습니다. 어쩌면 조성진은 쇼팽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조성진 스페셜리스트’ 그 자체가 되어 ‘조성진’이란 하나의 장르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아닐까요.

  

 *다음 회에선 '2.쇼팽,'시인'으로는 설명 불가한 폭발성'이란 부제로 해당 글을 이어갑니다. 많은 기대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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