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지휘자가 가져야 할 구체적인 음악적 자질은 무엇일까요. 지휘자는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 등 오케스트라의 모든 부문에 대해 알고 각 악기의 소리와 특성에 대해 간파하고 있어야 합니다. 수많은 악기가 동시에 울려퍼지고 있어도 어떤 악기의 소리와 박자에 문제가 있는지 바로바로 캐치하는 민감한 귀와 섬세한 감각도 필요하죠. 2016년 8월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공연에선 구스타프 말러의 ‘천인교향곡’이 연주됐었는데, 곡 제목처럼 오케스트라와 성악가, 합창단 등 1000명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천인교향곡이 연주되는 것은 흔치 않을만큼 기적적인 일인데요. 이 기적의 구심점이 되는 사람 역시 지휘자이며, 지휘자는 각 악기의 연주부터 합창단원들의 소리까지 놓치지 않고 세밀하게 포착해내야 합니다.
지휘자에겐 작품 자체를 분석하고 자신만의 해석을 할 줄 능력도 요구됩니다. 몇백년 전 만들어진 클래식 곡도 어떤 해석을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오케스트라 연주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바이올린을 떠올려볼까요. 바이올린의 활을 긋는 것을 ‘보잉(bowing)’이라고 하는데요. 이를 어디서 올리고, 어디서 내릴지에 따라 음악이 주는 느낌 자체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활을 올리면 소리는 점점 커지는 효과가 나는데요. 반대로 활을 내려서 그으면 한 지점에서 소리를 강조하는 악센트를 주게 되지만 점차 소리가 줄어들게 됩니다. 이를 원곡과 다르게 지휘자의 해석에 맞춰 연주하게 되면 또다른 느낌을 주게 됩니다. 실제로 연주자의 해석도 중요하지만 오케스트라 공연에선 지휘자가 이를 체크하고 지시하는 많다고 하네요.
악보를 통째로 외우는 뛰어난 ‘암보’ 실력을 자랑하는 지휘자들도 있습니다. 토스카니니는 ‘걸어 다니는 악보 도서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놀라운 암보 실력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긴 악보라도 세 번만 연주하면 완전히 외웠다고 하는데요. 더 놀라운 사실은 그가 근시 때문에 악보를 보며 지휘하기 힘들었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악보를 통째로 외운 그의 대단한 노력이 실력보다 더 감동적입니다. 앞서 말한 그의 까다로운 리더십은 이 완벽함에서 나왔다는 생각도 듭니다. 모든 파트를 다 외운 채 꿰뚫어 보고 있는 지휘자 입장에서, 자기 파트도 완벽히 소화해 내지 못하는 연주자를 보면 답답함을 느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휘자에겐 무엇보다 중요한 자질이 남아있습니다. 이 모든 능력을 갖추기 위한 필수 자질인 ‘끈기’입니다. 어느 정도의 반열에 올라가면 연습을 게을리할 법도 하지만, 마에스트로들의 노력은 그 타이틀답게 끝이 없습니다. 이를 표현한 번스타인의 말이 유명합니다.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이틀을 연습하지 않으면 아내가 알고,
사흘을 연습하지 않으면 청중이 안다.
그렇다면 국내 오케스트라엔 어떤 지휘자들이 활동하고 있을까요. 대표 오케스트라인 서울시립교향악단은 2016년 9월부터 ‘수석객원지휘자’란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정명훈 전 상임지휘자의 퇴임 이후 서울시향의 불안정한 지휘 체계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했습니다. 수석객원지휘자는 두명입니다. 티에리 피셔 미국 유타심포니 음악감독과 마르쿠스 슈텐츠 네덜란드 라디오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입니다. 차기 상임지휘자가 정식 부임할 때까지 연주 기량을 유지, 보완하는 역할을 하며 이후에도 함께 지휘를 도울 예정입니다. 서울시향은 2014년 말 박현정 전 대표와 정명훈 전 상임지휘자, 단원들 간의 불화로 큰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는데요.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나아갈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갖춘 서울시향이 다시 되살아나기 위해선 단원들을 다독이고 다시 이끌어갈 수석객원지휘자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 보입니다.
KBS교향악단은 요엘 레비 음악감독이 맡고 있습니다. 미국 애틀랜타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출신인 그는 원곡에 충실한 정통적인 해석을 하기로 유명합니다. 2016년 12월 KBS교향악단은 국내 오케스트라 최초로 단 2주 만에 9곡의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선보이기도 했는데요. 지휘자의 도전 정신이 빛난 공연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레비 감독도 뛰어난 암보 실력을 갖추고 있는데요. 2014년 취임 이후 줄곧 악보를 보지 않고 모든 악상과 셈여림 등 구체적인 지시를 단원들에게 정확하게 내린다고 하네요.
앞서 말씀 드린 ‘천인교향곡’ 공연에 섰던 임헌정 지휘자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습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천인교향곡 무대를 성공적으로 이끈 그는 천인교향곡과 같은 말러의 작품들을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말러 스페셜리스트’라고 불리는 그는 앞서 맡았던 부천필하모닉에서 1999~2003년 말러 전곡을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말러라는 작곡가에 대해 국내 클래식 애호가들조차 아는 사람이 드물던 시절, 클래식 저변을 넓히려는 노력이었다고 할 수 있겠죠.
아직 국내 클래식 업계는 가야 할 길이 멀고, 험난한 게 사실입니다. 한국인 마에스트로가 많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나 깊이 있으면서도 새로운 음악을 들려주려는 마에스트로들의 노력은 현재진행중입니다. 이들이 있어 국내 클래식 업계에도 희망의 빛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STEP 1. 꼭 기억해요!
*지휘자의 역할: 오케스트라의 리더이자 구심점!
*마에스트로: 지휘자 중 거장들을 일컫는 말.
*유명 마에스트로: 카라얀, 토스카니니, 번스타인
STEP 2. 더 알면 좋아요!
*국내 대표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서울시향-티에리 피셔, 마르쿠스 슈텐츠 / KBS교향악단-요엘 레비/ 코리안심포니-임헌정
*지휘 관련 영화, 드라마
:지휘자를 위한 1분-앙헬 에스테반 감독 작품. 지휘 콩쿠르에서 벌어지는 지휘자들의 경쟁과 클래식 선율을 감상할 수 있는 영화.
베토벤바이러스, 노다메 칸타빌레-쉽고 재밌게 지휘자들의 세계를 엿보고 싶다면! 국내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를 보는 건 어떨까. 꽤 오래전 작품이지만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