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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보르미 Jun 17. 2023

영혼을 내어 주고 구했던 사랑, 인정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

엄마에겐 동서가 한 명 있었다.

동서는 딸 둘에 막내아들을 하나 뒀다.

그 하나뿐인 아들이 일곱 살 되던 해에 버스에 치여 죽었다.

사촌오빠라 불렀던 그 아들과 나는 두 살 차이.

5살 때 일이라 나는 전혀 기억에 없고, 어른들을 통해 들은 이야기다.

사촌오빠는 그 어린 나이에도 작은엄마에게 늘 자신이 엄마에게 집을 사줄꺼라고 이야기했다고 했다.

그리고 사촌오빠는 결국 사고 보상금으로 작은엄마에게 집을 선물했다.


사촌오빠의 사고는 예고도 없었고, 안녕이라는 인사도 없이 헤어짐을  주었다.

작은엄마는 정신을 놓았고, 엄마는 그런 동서를 위해서 굿을 했다.

분명 그렇게 급하게 간 아들이 할 말을 다 못 하고 갔을 거라고...

굿판이 벌어졌고, 사촌오빠의 영혼이 엄마에게 들어올 수 있게 엄마를 내어주었다 했다.

그리고 엄마는 사촌오빠의 목소리를 내며 작은 엄마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작은엄마는 살아났고, 우리 엄마는 자리에 누웠다.

며칠을 못 일어나던 엄마는 무슨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갑자기 벌떡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엄마에겐 여동생이 세 명 있었다.

자식도 일곱이나 있었지만, 엄마는 동생들도 자식처럼 돌봤다.

야간 일을 하는 동생부부를 위해 아직 국민(초등) 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넷째 딸을 그 집으로 보내 겨우 세 살 어린 그 조카들을 돌보게 했다.

넷째 딸은 매일 밤, 버스를 타고 그 집으로 가서 이종사촌 동생들의 잠자리를 돌봐줬고 이모는 무척 고마워했다.

그러다 이모는 우리 집 2층으로 이사 왔다.

겨울이면 우리 집 김장만 해도 100 포기 이상이 필요했는데, 이모집 김장까지 같이 해줬고, 이모는 냉큼 잘도 받아갔다.

시시때때로 엄마의 손길을 받았고, 이모에게 엄마는 언니이기보다 엄마였다.


엄마에겐 남편이 한 명 있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집안일을 묵묵히 해냈고, 없는 일도 찾아서 하는 부지런함을 가진 엄마는 매일 아침 계란 프라이를 두 개를 해서 남편 상에만 올렸고, 퇴근 후엔 여름은 시원한 미숫가루로, 겨울은 미지근한 미숫가루로 몸의 보양을 도왔다.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왔을 땐 많은 자식들로 행여나 집구석에 들어오기 싫다는 느낌이 없게 집안을 정리하고, 자식들이 떠들거나 설치지 않도록 단도리 시켜 피곤해서 돌아온 남편에게 쉼을 내주었다.

힘든 내색은 잘하지 않았다.


엄마에겐 일곱 명의 자식이 있었다.

열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는 이야길 늘 하시며, 어느 누구 하나 더 이뻐하고 이뻐하지 않은 적이 없다는 이야길 자주 하셨다. (그러면서 자식들이 속상하게 하면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씀도 자주 하셨다.)

가족이 많으니 늘 아껴 쓰고, 아껴 쓰는 삶을 살아야 한다며 늘 손수 먼저 실천하셨다.

엄마는 그렇게 살았다.



게리 채프먼의 5가지 사랑의 언어(생명의 말씀사)에서 사랑에도 언어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1. 인정의 말

2. 함께 있는 시간

3. 선물

4. 봉사

5. 육체적인 접촉


엄마의 사랑의 언어는 인정의 말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하나뿐인 동서에게 자신을 희생하며 형님으로 인정받기를 원했다.

작은엄마는 엄마랑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그 일을 계기로 엄마에게 마음을 열었고, 그때부터 잘 지냈다고 했다.


엄마는 동생들에게도 자신을 희생하며 언니로 인정받기를 원했다.

지독히 이기적이었던 엄마의 엄마에게서 맏딸로 희생을 했지만 인정받지 못했고, 동생들을 통해서 그 인정의 사랑을 채워갔다.

이모들은 엄마를 언니 그 이상으로 따르고, 의지했다.


엄마는 하나뿐인 남편에게 인정받기 위해 일곱 명의 자식을 낳았고, 남편의 가족들에게도 최선을 다했다.

힘들어도 힘들다는 티를 내지 않았고, 오늘 하루가 마지막인 것처럼 열심히 하루를 살았다.

아빠는 엄마의 사랑의 언어가 인정이라는 것을 몰랐고, 그래서 엄마는 늘 사랑에 목말라 있었다.


엄마는 일곱 명의 자식에게 열심히 사는 모습으로 인정받기를 원했다.

아끼고 아끼는 삶이 열심히 사는 모습이라 여겼고, 여든이 넘은 지금까지도 집안의 도배를 셀프로 했고, 옥상의 방수 페인팅도 셀프로 했다.

쓸만한 물건은 길거리에서 보면 무조건 주워오고, 일회용품도 씻어서 재사용하기도 했다.


엄마의 사랑의 언어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심리 상담을 받던 어느 날, 상담선생님이 그러셨다.

내가 인정받기를 원하는 만큼 엄마도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이라고...



엄마는 이제 인정의 말을 해주어도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오히려 옛날일을 떠올리며 역정을 낸다.

엄마의 사랑의 언어를 너무 늦게 알아차려버렸다.


사랑은 배우고 익혀야 할 기술이다(에리히 프롬)

40년 이상 서로를 알아왔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기술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기술을 익힐 시간이 짧게라도 있음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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