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작은 소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난나의취향과 윤글 Aug 26. 2016

푄현상

"높새바람 같은 사람을 만났어요."



"푄 현상이 뭔지 알아요?"


뜬금없었다. 느닷없었다. 터무니없었다. 그는 어이가 없단 표정을 하면서도 여전히 강렬하고 건조한 눈빛으로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나는 이미 이상한 사람으로 찍힌 김에 갈 때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눈 딱 감고 말을 잇기 시작했다.


"공기가 모이면 구름이 되죠. 구름은 높은 산을 넘기도 해요. 산꼭대기로 갈수록 구름의 온도는 낮아지고 습해지거든요, 그럼 구름이 머금고 있던 습기로 비를 뿌려요."


(그는 여전히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비를 다 뿌린 구름은 산꼭대기를 딱 넘어서면서부터 아주 뜨겁고 아주 건조한 바람을 내뿜기 시작하거든요? 이게 동북풍인데 높새바람, 푄 현상이라고 해요."


그는 몸에 힘을 풀고 어디 한 번 해보라는 듯 의자에 몸을 기댔다. 하지만 눈빛은 계속 그대로였다.


"당신 눈빛이 그래요, 지금. 고온 건조. 어디서 높새바람 맞고 온 것처럼 딱 그래요."


뒤이은 내 말에 그는 봉변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내 눈빛이 뭐가 어때서요?"


"이글거려요. 너무 뜨거워. 나를 마주보고 있는 내내 그랬어요. 하루종일 눈에 힘을 그렇게 주고 있으면 안 힘들어요?"


내 물음에 그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던 것은 어떤 의미였는지 생각하려는 찰나에 그의 대답이 들렸다.


"오지랖이 넓으시네요."


"네, 근데 그냥 할 얘기 없이 어색하게 앉아 있는 것보단 좋지 않아요? 당신 눈을 보고 있으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강렬해서 좋은데 너무 건조해서 말라 비틀어질 것 같다고. 실제로 높새바람이 불면 그곳에 식물이 말라 죽곤 하거든요."


"그래서, 제 눈빛에 당신이 지금 말라죽을 것 같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럼 그만 일어날까요?"


그의 얼굴은 이제 조금 화가 난 것 같았다. 네가 뭔데 그런 얘기를 하냐고 말하고 싶은 것처럼 입술이 씰룩대는 게 보였지만, 첫만남이라 무의식적으로 예의를 차리는 것 같았다.


나는 아랑곳않고 답했다.


"아뇨, 지금은 당신이 말라죽을 것 같단 얘기예요. 당신에게 비를 뿌려주는 누군가가 필요할 것 같단 얘기예요."


다시 어이없는 표정. 그는 의외로 표정에 모든 것이 드러나는 사람인 것 같았다. 속을 숨길 줄 모르는 사람, 내가 찾던 사람.


"나는 바다에 눈을 담가 해수를 채운 것 같은 눈빛을 가졌다고 누가 그랬어요. 그러니 당신에겐 내가 필요해요."


그는 답했다.


"나가죠, 커피라도 한 잔 더 해야 할 것 같네요."


그가 처음으로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깨를 으쓱해보이고 먼저 일어났다. 뒤따라오는 그의 눈빛이 느껴졌다.


여전히 건조하고 뜨거운.


우리는 높새바람과 비가 되어 산을 하나 넘었다.








윤, 그리고 글.

매거진의 이전글 추억전당포로 오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