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자신의 분신으로 여기게 된 가여운 여자의 이야기
햇볕에 그을리기 딱 좋은 오후에 밖으로 나간 여자는 훅 들어오는 더운 바람에 불쾌함을 표정에 드러냈다. 모자라도 가져올 걸 잘못했다고 생각하며 걸음을 재촉해 어서 버스에 타려는데 그녀의 걸음을 세워놓는 것이 있었다. 살랑 부는 바람에 흔들대는,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들. 분명 덥다고 찡그렸던 그녀 얼굴이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돌아왔다.
그녀는 무거운 가방을 일단 아무데나 던져놓고 휴대폰 카메라를 들어 예쁘고 작은 그것들의 모습을 최선을 다해 담았다. 그리고는 어느 각도에서든 예쁜 꽃들을 잠시 질투한다.
‘예쁜 것도 정도껏이지. 휴.’
꽃밭에 정신을 홀딱 빠뜨리고 보니 사방에 온통 꽃 천지였다. 자신도 모르게 꽃밭 한가운데로 걸어간 것이었다. 그녀는 천국이 따로 없단 표정을 지어보이곤 꽃잎 하나하나를 일일이 눈으로, 사진으로 남겼다. 그늘도 하나 없는 길가, 불쾌하고 더운 여름 날씨는 어느새 꽃들을 더 예쁘게 비춰주는 고마운 날씨로 탈바꿈해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꽃에 파묻혀 있다가 문득 자신이 꽃을 좋아하게 된 이유를 떠올렸다. 무엇을 좋아하는 데에는 이유가 없다고들 하던데, 그녀에겐 너무나 확실한 이유가 있었다.
"내가 사랑받고 싶어서."
그녀는 사랑을 갈망하는 방법으로 한없이 사랑하는 방법을 택했었다. 그래서 언제나 먼저 주는 쪽, 더 많이 주는 쪽이었다. 그녀의 일방적인 헌신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그녀에게 질렸다며 상처를 주고 떠나는 일이 잦았고, 거의 매번 그런 식의 반복이 일어났다.
그때부터였다.
그녀가 꽃을 하염없이 예뻐하기 시작한 것은.
하다못해 바람에 나부끼는 꽃잎의 향도 놓치지 않겠다 여기기 시작한 것은.
그녀는 그렇게 꽃을 원없이 사랑했고 하염없이 예뻐해줬다. 그녀의 사랑에 꽃은 꽃 그 자체로 응답해주었다. 사랑해줄수록 아름다워졌고, 한 철 깜빡 피었다 지긴 했지만 매 계절마다 다시 돌아와 그녀의 곁을 조용히 지켜주었다.
멍하니 향에 취해 있던 그녀는 휴대폰 화면을 보고 화들짝 놀라며 버스 정류장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지체하지 않고 바로 버스에 탔다.
꽃밭은 늘 그 자리에 있으니 망설이지 않아도 되니까.
그녀는 버스 맨 뒷자리 구석에 앉아 찍어놓은 꽃 사진들을 다시 바라봤다. 역시 꽃은 참 예뻤다. 그녀는 카메라를 켜고 그 앞에서 예쁘게 웃어본다. 하지만 실망을 금치 못하고 카메라를 금방 꺼버렸다.
그녀는 자신이 예쁜 꽃이 되고 싶다 생각한다.
‘언젠가, 내가 한 떨기 꽃이 된다면 누군가는 나처럼 길을 가다 멈춰 서서 한참 바라보고, 예쁘다고 말하고, 사진으로 담으며 자신을 맘껏 사랑해 주지 않을까.’
말도 안 되는 생각은 그녀를 심난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꽃처럼 여겨 줄 사람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운명 따위를 믿으면서도 믿지 못해서, 다가오는 사람들에겐 믿음이 부족했고 그러다 떠나는 사람에겐 미련이 넘쳤다. 그렇게 자신의 눈물을 밟고 넘어지곤 한다. 그래서 상처가 많다.
사랑하면 사랑받을 수 있을 줄 알던 순수한 시절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하는 방법밖에 모른다. 사랑을 주면 좀 받으라던 그의 충고를 매일 되새기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하지만 다른 방법은 모르고, 더 이상 그도 없다.
그녀는 이제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방법을 알 길이 없다.
괴로운 마음을 추스리듯 고개를 두어 번 내젓고 눈을 감는다.
요동치는 버스의 엔진소리는 그녀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했고, 그녀는 그저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윤, 그리고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