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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의취향과 윤글 Jun 19. 2016

추억전당포로 오세요.

당신 추억을 맘껏 그리워할 수 있도록 그리움을 드립니다.


딸랑-.

어서 오세요, 추억전당포입니다. 맡기실 물건은 이쪽으로 주세요.


저기, 손님, 여기 처음이시죠? 제가 여기 주인인데 낯선 얼굴이라서 여쭤요. 이곳 이용법을 잘 모르시는 것 같아서. 그런데 어떻게 찾아오셨어요? 찾기 쉽지 않으셨을 텐데. 아, 인터넷에서 보셨구나. 대단한 정보력이시네요, 하하.


흠흠, 그럼 이쪽으로 오세요. 처음이시니 제가 간단히 설명해드릴게요. 여기다 추억이 담긴 물건을 맡기시면 그 추억 만큼의 그리움을 드려요. 그리움이 다 닳으면 맡기신 추억을 돌려드리구요.


그럼 남는 게 없지 않냐구요? 하하, 아니죠. 저는 손님의 시간을 가져가요. 그리움 한 달치를 드리면 손님은 한 달동안 앓으셔야 하니까요. 그동안의 시간은 추억의 빛을 바래게 하는데 쓰인답니다. 그러고 보니 남는 게 딱히 없긴 한 것도 같네요 하하.


왜 이런 전당포를 하냐구요? 제가 겪어봤거든요. 미친듯이 그리워 죽겠고 그래서 그리워하다 보면 그리움이 다하잖아요. 그럼 이 물건에 담긴 추억만큼은 색이 바래요. 꼭 흑백사진처럼 머릿 속에 남아서 '언젠가 그랬구나, 그랬었구나.'할 수 있게 되거든요. 그럼 그 이후부턴 그나마 견딜 수 있게 되고. 제가 겪어봤더니 이게 제일 빠른 방법 같더라구요.


여길 찾는 사람은 얼마나 많냐구요? 사실 많이 찾진 않아요. 추억이 바랜다는 걸 믿지 않는 분들도 꽤 많거든요. 그런데 한 번 오셨던 분들이 닳은 그리움을 다시 들고 오셔요. 그리움 연장이 가능하다는 증서를 함께 들고 오시면 연장도 해드리거든요. 마음이 깊을수록 추억의 빛도 진하니까요.


이렇게 말하고 나니 여기는 별 의미가 없네요. 하하, 그래도 나아지신 분들이 다시 오셔서 저쪽 책에 후기라든가 방명록 같은 것들을 남겨주시기도 한답니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죠?


보통 사람들은 얼마나 그리워 하냐구요? 음 글쎄요, 이건 평균을 낼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사랑의 심도나 마음의 정도는 사람마다 차이가 심해서요. 아마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년 정도가 될 거예요. 참고로 저는 아직 추억이 남아서 주기적으로 조금씩 그리워하고 있어요. 방법은 많으니까요.


이렇게 적극적으로 질문해주시는 분은 처음이라 신기하기도 하네요. 감사합니다.


자, 그럼 이제 손님의 추억을 살펴볼게요. 그거, 아까부터 손에 들고 계시던데 이걸 맡기실 건가요? 어디 한 번 볼게요. 따로 추억을 설명해주시지 않아도 된답니다. 제가 느낄 수 있거든요. 주인답죠?


우와, 여기에 굉장한 추억이 담겼네요. 이건 그리움 연장을 서너 번 정도는 해야겠어요. 어찌 이걸 들고 견디셨어요? 대단하시네요.


감탄이 너무 길었나요? 죄송해요. 너무 놀라서. 여기 그리움 한 달치예요. 연장 보증서도 써드릴게요. 연장 보증서를 잃어버리시면 그리움도 추억도 어정쩡하게 남아버려서 더 괴로울 수도 있답니다.


아 참, 하나 더 조심하셔야 할 게 있어요. 이건 절대 쉽게 바랠 추억이 아닌 것 같지만. 물건은 제게 있지만 기억은 손님께 있어요. 손님의 머릿 속 기억이 바래지기 시작하면 그리움이 훼손되고 수명이 줄어들어요. 그렇게 되면 연장 보증서가 있어도 그 부분은 제가 어떻게 해드릴 수가 없어요. 혹시나 해서 말씀드려요, 혹시나 해서.


다음에 또 뵐 것만 같아서 그런지 사담이 많이 길었네요. 시간 많이 뺏기셨나요? 죄송해요. 의도한 건 아닌데.


어, 다른 손님이 오시네요. 그럼, 손님 조심히 가세요. 반가웠어요.


어서 오세요, 추억전당포입니다. 맡기실 물건은 이쪽으로 주세요.









윤, 그리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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