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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의취향과 윤글 Jul 04. 2016

몽유병




5월 26일


최근 기록

010-1234-5678

05/23 새벽 4시 27분 발신 19분 15초

05/24 새벽 3시 48분 발신 25분 58초

05/25 새벽 4시 13분 발신 18분 05초

05/26 새벽 4시 42분 발신 23분 01초


요 며칠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를 모르는 이 사람은 내 전화를 받았다.


이상하다. 휴대폰을 끄고 자야겠다.


5월 27일


최근 기록

010-1234-5678

05/27 새벽 3시 56분 발신 17분 14초


분명 꺼놓고 잤는데 일어나보니 폰이 켜져있었다. 그리고 또 전화를 했다. 게다가 오늘은 내가 외출용 옷을 입고 있었다. 난 분명히 잠옷을 입고 있었는데.


불안하다. 불안하다. 대체 나는 누구랑 무슨 얘기를 이토록 한 걸까. 이 사람은 왜 내 전화를 받는 걸까. 어딜 가려고 한 걸까.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


전화를 걸어볼까 하다가 갑자기 섬짓한 기분이 들어 관뒀다. 혹시나해서 휴대폰을 뒤졌지만 통화녹음기록은 없었다. 아무래도 오늘도 전화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게 영 불안하다. 폰은 책상 서랍에 넣어둬야겠다.


05월 28일


최근 기록

010-1234-5678

05/28 새벽 3시 57분 발신 20분 15초


오늘 새벽에도 역시 통화를 했다. 나는 분명히 잠들어 있었는데.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서랍을 열어 숨겨둔 휴대폰을 찾고, 옷을 갈아 입고, 화장을 하다 말았나 보다.


무서워졌다. 이러다 나중엔 나도 모르게 내 방이 아닌 다른 곳에서 눈을 뜨게 될 것만 같다. 혹시 내가 이 번호의 주인을 찾아갈지도 몰라. 어떻게 해야 하지. 침대에 손을 묶어볼까. 어쩌지. 일단 녹음기를 사와야겠다.


5월 29일


최근 기록

010-1234-5678

05/29 새벽 4시 7분 발신 19분 37초


눈을 뜨자마자 최근 기록을 확인했다. 녹음기를 켜놓고 잠들어 다행이다. 녹음기 속에서 나는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요."


나는 새벽에 갑자기 울면서 깼고 한참을 울다가 전화를 걸었다. 보고 싶다고 말하고 한동안 가만히 앉아있었던 것 같다. 전화가 언제 끊긴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전화가 끊겼을 때쯤 옷을 갈아입으려고 벗다가 화장대에 앉아 입술을 칠했던 것 같다. 그러다 또 갑자기 자야겠다며 침대로 돌아와 누웠고 잠들었다.


어지러운 마음으로 녹음을 다 듣고 내 모습을 확인했다. 옷은 입다 말았고 화장도 하다 말아 엉망이었다. 갈아입다 만 하얀 옷과 손, 그리고 입술에 덕지덕지 틴트가 묻어 있었다. 완벽히 엉망진창이다. 이 당황스러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 걸까. 이걸 쓰는 지금도 손이 떨린다. 이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어 확인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무섭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5월 30일


무수면. 전화를 하지 않을 수 있었다.


5월 31일


새벽 4시 44분

010-1234-5678 부재중 1통

받은 메시지 1통


"나도 보고 싶어요."











윤, 그리고 글.

Instagram.com/amoremio_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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