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사랑한다는 건,

노부부 이야기

by 이원희


경리단길에서


어디든 움직이며 보고 느끼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그와 좋은 곳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길 바랐다.

우리는 제주도, 여수, 부산, 포항, 경주, 서울까지... 틈틈이 시간을 쪼개 전국을 누비면서 데이트를 했다.


한 번은 경주에 갔을 때였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좋아하는 박물관을 가고

핫플에서 차를 마시고, 돌아다니며 수다를 떨었고, 맛집에서 돈가스를 먹었다.

식당에서 줄을 서는 동안도, 차를 마시는 동안도, 골목을 걷는 내내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나의 성격이 지나가는 사람이 빤스만 입고 있어도 눈길 한번 안주는 성격이 한몫했으리라,

아무튼 난 즐거웠고, 그 행복을 만끽하고픈 사람이었으니까. 내 시간 그리고 '우리'에 집중했다.


식당을 고르려고 경리단길 거리를 돌아보고 있을 때, 지나가는 사람 중 남자는 다리에 장애가 있는 분과 여자는 비장애인이었는데 둘의 모습이 예뻤다며 그가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와 비슷한 동선으로 몇 바퀴를 돌고 돌며 계속 마주쳤다고 못 보았냐 물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스쳐 지나갔으나 나는 기억하는 사람도, 눈여겨본 사람도 단 한 명도 없었다.


나: 그랬어? 난 몰랐네

너: 응 예쁜 커플이었어

나: 아,, 그렇구나

너: 남자분이 불편해서 우리 옆을 지나가면 볼 법도 한데 못 봤어?

나: 난 몰랐네. 바로 말을 해주지 그럼 봤을 텐데


그때는 그저, 그들의 보이는 모습이 전부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어떤 관계인지, 어떤 사연을 가진 사람들인지 모르기 때문에 예뻐 보이는 연인이라는 말에 쉽게 동조하지는 못했다. 어쩌면 그 순간조차도, 나는 '나의 시선'에만 몰두했던 걸 지도 모른다.



아이엄마를 보며


한날은 식당에서 옆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는데 미취학아동이 4명이다. 보기만 해도 북적거리며 정신없다. 엄마는 앉지도 못하고 아이들 챙기고 있다. 흘리는 아이, 물 달라는 아이, 우는 아이, 뺏어먹는 아이. 그 누구도 도와주는 않지만 한 마디씩 거든다.


'애는 그렇게 키우면 안 돼.'

'좀 조용히 할 수 없나?'

'집에 있지 왜 나와서 사서 고생하는 거야?'

'애아빠는 어쩌고 저리 혼자 있데?'


한국 사람들은 왜,

앞뒤 사정 모르면서,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저렇게 계속 말을 할까? 아이 엄마는 주변의 시선이 의식되었는지, 아이들 보고 버럭 짜증을 내었다. 아이들은 또 엄마를 보고 운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큰소리가 나는 통에 나도 그 테이블에 시선이 갔다. 결국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것 같았다. 음식이 잔뜩 남은 접시를 4번을 왔다 갔다 하며 치웠다. 그 사이에도 아이들은 시끄러웠다.


나는 그렇다고 넙죽 가서 도와줄 변죽도 없다. 괜히 '힘들죠?'라는 말 한마디가, 진짜 힘든 마음을 만들 수도 있으니까. 그저 관심을 두지 않고, 한 명이라도 불편한 시선을 마주치지 않도록 하는 게 그녀를 위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나는 원래부터 그랬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 역시도 아이들을 안고 외출하면 지나가시는 할머니가 아이에게 덥석 물려주는 사탕이 당혹스럽기도 했다.

그러면 안 된다고 혼을 내는 어른들이 내 아이를 울리기도 했고,

성격이 워낙 와일드했던 큰아이의 체력을 보며 엄마 힘들겠다는 말을 거짓말 조금 보태면 수천번은 들었다. 나는 나에 대해 알지 못하는 그들의 말들이 싫어서 최대한 식당을 가지 않았다.

하지 말라는 소리도 하기 싫고, 아이한테 화내는 것이 싫어서 친구집에 가는 것도 하지 않았다.

식당을 이용할 때면 룸이 있거나 식사시간을 피해 이용하기도 했다. 뜨거운 불이 있는 고깃집은 한 번도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조용한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는 아니다. 심지어 나의 성향은 E다.

하지만, 한 가지에 집중을 하고 있으면 옆에서 누가 말을 해도 잘 모른다.

대답을 했다고 할지라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 내가 4명 이상 함께 식당에 가면 2,3명과 대화를 할 수 있지만 다른 이들과는 대화를 할 수없다.

귀가 10개라고 해도 믿을 수 있는 그는 동시에 10명과도 대화를 할 수 있는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





노부부이야기


그날도 일을 마치고 우연히 들어간 호프집.

옆 테이블의 노부부가 조용히 잔을 부딪히며 나누는 대화는 참 정겨웠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주고받고, 맥주 한잔에 웃음을 담던 그 모습. 난 그들이 부러웠다.


함께 오랜 시간을 살아왔지만, 여전히 할 이야기가 남아 있는 부부. 싸우거나 참거나, 외면하거나 하지 않고, 조용히 오늘 하루를 나눌 수 있는 사람.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분들이 나가시고 나서 동시에 이야기했다.


나: 봤지?

너: 봤어?

나: 멋있다. 그렇지?

너: 나도 저렇게 늙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왠지 그들은 욕심도 없이 살았고, 평생 걱정 없이 지내며, 평온한 그 모습으로 두 분이 서로를 아끼며 살아온 것 같았다. 행복해 보였다.


모든 사람들의 로망이 아닐까,

우아하게 늙어가는 것.

궁핍이 없이 늙어가는 것.

자식 걱정 없이, 하루하루 평온하게 마지막 날을 맞이하는 것.


옆에 있으면 든든하고, 외롭지 않은 사이를 꿈꾼다.





지금의 우리는


우리는 함께하지만 또 따로 사는 사람들이다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자유롭지만 자유롭지 않는 사랑을 하고 있다. 꼭 연인이라고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래서 그는 더 이상

나를 아기처럼 대해주지 않는다,

내가 가자고 하는 곳을 망설이며, 가지 않아야 할 이유를 말한다.

본인이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한다.


나를 위해 선물을 준비하지 않는다.

본인이 하고 싶은 것 범주 안에 나도 하면 좋은 것이 끼여있을 뿐이다.

나를 위해 더 이상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나를 위해 더 이상 돈을 쓰지 않는다.


우리는 함께 시간을 보내지만, 마음은 어딘가 따로 흘러간다.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있지도 않고, 서로의 방식대로 이해한 채 살아가고 있는 관계.


사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고,

나도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이혼을 하고, 또 누가 결혼을 해.

한번 실패했으면 되었다. 또 실패하고 싶지 않다.

그냥 인생을 즐기면서 나의 삶을 살아가자.


내 인생의 큰 전환점 같은 것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누군가와 미래를 함께 꿈꾸고, 설계하면서 살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그려야 할 미래가 과연 있을까?

네가 없어도, 내가 없어도 우리는 잘 사는 방법을 잘 아는 사람들이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고슴도치처럼 날을 세우고 있는 상처받는 것이 싫어서 서로에게 상처 주는 사람들이다.


사랑은 식은 게 아니라,

애초에 불타오르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때 분명, 좋았다.

나는 안다. 그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지금 우리는 서로에게 조용히 이기적이거나, 혹은 냉정하거나...


우리는 더 이상 서로에게 그때 그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

현재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렇게 철없이, 겁 없이...






에필로그


글을 연재하는 동안에도,

그와 크고 작은 다툼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계획했던 이야기들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했어요.


말을 하지 않으면,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마음이 사람 마음이라..


글을 쓰며 나를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그때의 기억들을,

지금의 감정들을,

조금 더 솔직하고 담담하게 꺼내놓고 싶었습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