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눈
하루 종일 함박눈이 온다.
순식간의 모든 곳은 겨울왕국이 되었다.
살면서 이렇게 눈이 왔던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하염없이 눈이 왔다.
그는 경북에서 태어나 경북에서 자라고
경북을 벗어나본 적이 없었던 터라 하얀 눈이 내린 도로의 운전이 익숙하지 않다.
6~7년 전쯤인가 대구에 눈이 와서 한번 쌓인 적이 있었는데, 겨울에 눈이 오는 경우가 많이 없어서 제설차가 아예 없다고 했다. 그때 온 도시가 마비였고, 미끄러운 길을 감행하고 움직이는 경북인은 없었다.
그 역시도 익숙하지 않은 눈길이라 아주 천천히, 조심스레 운전을 하고 있었다.
차의 속도는 50을 넘어가지 못하고. 40.30으로 점점 속도는 떨어지고
비상등은 켜놓은 상태에서 운행을 했다.
차가 움직이는 건지, 차선을 지키고 있는지, 운전을 하고 있는 건지 조금은 헷갈렸다.
눈이 조금 잦아들자 차들은 조금씩 눈길을 빠져나가기 위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부~우웅~~~
1톤의 트럭이 굉음 같은 소리를 내며 우리를 추월했다.
눈이 뎅그래진 그는 나에게 물었다.
"나 지금 천천히 가는 거가?"
"응, 아니~ 괜찮아. 조심히 가면 되지~"
그런데 솔직히 속으로 조금 답답해질 판이었다.
고속도로라 너무 천천히는 위험할 것 같았다. 아니 그냥 그가 잘하고 있다고 얘기해주고 싶었다.
익숙치않은 눈길에 나 피곤하다고 본인이 운전을 하고있으니..
그런데 1톤 트럭이 굉음을 내고 추월한 지 1분도 안되었는데... 또 다른 굉음이 옆에서 들렸다.
부~우웅~~ 달려오던 차가 또 추월했다.
Good moring!
인사하듯 귀여운 모닝한대가 우리를 제치고 빠르게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다.
저 모닝 어떡해!? 우린 눈이 마주쳤고 그와 나는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는 서로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답답한 거북이운전을 하고 있었기에 뒷 차들이 계속 답답했었나보다.
"트럭까지는 어떻게 얘기를 했는데 모닝은 도저히 카바를 쳐줄 수가 없네~"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터진 웃음은 주체할 수 없었다. 눈이 익숙하지 않은걸~ 어쩌겠어!
그는 눈이 오니까 천천히 달린 것이 아니라, 그냥 함께하고 싶은 시간이 길어지라고,
매일 일만 하고 있으니까 눈보라 치는 차 안에서라도 데이트를 하려고 천천히 간 거겠지 그렇게 우린 애둘러 생각하고, 덕분에 우리는 신나게 웃었다.
그래 데이트 못하면 어때,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에 일도 하고, 웃을 수 있음에 감사하면 되지.
벚꽃
작년 꽃피는 봄엔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
일찍 끝나는 날이라도,
멀리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만날 수가 없었다.
벚꽃은 피어나는데
길가에 꽃들이 피어나고 있는데,
데이트라는 데이트를 언제 해봤지 싶었다.
매일매일 고된 일정에 보고 싶은 사람들이 쌓여가고 있었다.
갑자기 일정이 취소되어서 나는 쉬는 날이지만,
그가 바쁘다. 나는 먼 길 돌아 돌아 그에게 가서 현장을 도왔다.
그나마 이렇게 같은 일을 하며 도울 수 있음에 감사했었다.
이렇게나마 잠깐이라도 얼굴을 보고 저녁에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으니까,
함께 일하며 보내는 시간들이 재미있었다.
처음엔 괜찮았다. 사람 마음이 그렇다.
처음엔 좋았는데, 나중엔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지 싶었다.
말이라도 어디 가자, 어디 놀러 가자 한마디 없는 그가 야속했다.
"자기는 나랑 하고 싶은 것이 없어?"
섭섭하다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앞뒤 사정 현장까지 뻔히 알고 있는 내가
굳이 이것저것 하자고 하는 나를 한심하게 보는 것 같았다.
그래, 그냥 이렇게 우리는
하고 싶은 거 없이, 먹고 싶은 거 없이,
뭐 설레는 마음도 없이
그냥 흘러가는 대로 시간을 흘려보내.
그렇게 우리는 차 안에서 지나가는 길에 벚꽃을 보았다.
그렇게 나는 괜스레 서러워지는 마음을 벚꽃과 함께 날려 보냈다.
그렇게 흘러간 내 시간이 아까웠다.
함께 하지 못하는 날이면
갑자기 그가 뜬금없이 지나가는 길에 찍은 꽃 사진을 보내왔다.
동생들과 포항에서 과메기를 먹는다며 과메기 사진을 보내왔다.
처음 먹는 맥주인데 뚜껑을 열면 거품이 올라온다며 맥주 사진을 보내오고,
편의점 앞에서 바람이 좋다며 동영상을 보내왔다.
동생들과 함께 야구를 보러 가서는 함성소리를 녹음해 보내기도 하고,
오늘은 동생들과 함께 펜션을 갔다며 단체사진을 보내왔다. 바다사진을 보내기도 했고,
낚시를 하다가 하늘이 예쁘다며 사진을 보냈다,
오늘은 피자랑 맥주를 먹고있다며 즐거운 시간들을 사진에 담아 보내왔다.
낚시터를 갔는데 소똥냄새가 지독하다며 사진이 왔고, 신발을 샀다며 새신을 신은 발모습을 보내왔다. 일하러 갔는데 행사장에 아무도 없다면서 지루한 시간을 사진으로 담아보내주었다.
그는 시시콜콜 문자를 보내면서 본인의 사생활을 공유했다. 그런데 나에게만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나랑 같이 있는 시간에도 하늘 사진을 찍어 다른 이와 카톡을 했다. 눈이 오는 날에는 엄마에게 사진을 보내기고 하고 , 음식사진도 다른 이에게 보내기도 했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이들이 찍어서 보내온 사진들을 보여주기도 했고, 자주 지인들과 사진으로 소통하는 그의 모습이 있었다. 나는 평소 그렇게 연락을 지인들과 자주하는 편이 아니였기에. 그의 문화가 그렇다 이해했었다.
나에게 보내는 사진들이 다른지인들과 주고받는 사진들과 횟수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방식은 같았기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좋은 시간 함께하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과 보고 싶다는 그만의 표현이였다.
사진으로 본인이 보내는 모든 시간을 공유하고 싶어 했었던 것 같다.
몰라주는 나에게 섭섭했을 것이지만, 그것이 그렇다 말하지 않았고 표현하지 않았다.
내가 스스로 알아주기를 바라고, 내가 알아서 느낄 수 있기를 바랐을까.
나는 그가 스스로의 시간을 잘 보낼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함께하지 못하는 시간들이 아쉽기도 하면서, 왠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조잘조잘거리며
나는 늘 그에게 뭐가 먹고 싶다고 이야기했었다.
오늘은 샐러드 먹자,
오늘은 왠지 매콤하게 닭발이 먹고 싶어.
김치찌개 먹을까?
집에 들어가서 피자한판 시켜 먹을까?
오늘은 저기 커피숍 갈까?
나 콘서트 보러 가고 싶어.
와 저기 야시장이 열린데!
아니 이번에 로이킴이 콘서트를 한다는데?
함께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었다.
함께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았었다.
언젠가부터 돌아오는 대답이 부정적이었다.
그 식당은 너무 멀어. 나 그거 안 먹잖아.
나랑 오늘 약속했는데 당연하다는 듯 다른 동생이 온다고 다른 데 가자고 하기도 하고
일찍 끝나는 날이면 그냥 혼자 낚시터를 가기도 했다.
나와는 아무것도 함께하고 싶은 것이 없는 것 같았다. 이것저것 하자고 하는 것도 이제는 하기 싫어졌다. 뭐가 같이 먹고 싶은 것도 없어졌고 함께하고 싶은 것도 없어졌다.
마냥,
갑자기 쉬는 날이면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아무것으로나 끼니를 때우고, 뭔가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만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전엔 쉬는 날이면 나는, 쉬지 않고 놀았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영화를 보거나, 뮤지컬을 보거나, 핫플을 가면서 뭔가를 끊임없이 움직였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접할 때 오는 즐거움이 나에겐 휴식이었다.
그와는 내가 너무 다른 걸까
우리 둘의 대화가 없어지고 있었다.
서로의 관심사가 달라지고 있는 것 같았다.
식당을 가도 각자 핸드폰으로 할 일을 하고, 핸드폰의 화면을 보기 바빴다.
마주 보고 앉아 있어도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은 없었다.
한 번은 일을 하고
늦은 점심을 위해 식당에 마주 앉아있는데
역시나 핸드폰을 보고 있는 그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소리를 켜고 동영상을 보는 그가 싫었다.
벌써 이렇게 섭섭했던 마음이 여러 번이라 그날은 나도 화가 났다.
너무 한 거 아니냐, 따져 묻는 나에게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어제 난 운전하고 자기는 핸드폰 보면서 웃다가 나한테 보여주고 웃었을 때 내가 기분 나쁘다고 하던?
나: 밥집이랑 지금 운전하고 있을 때랑 다르잖아
너: 둘이 있는 건 똑같은데 그건 되고 왜 이건 안 돼? 다음부턴 식당에서는 안 하면 되나?
하필 그날 핸드폰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만
우리의 대화가 단절되고 있고,
의무감에 일 때문에 우리가 함께 하고 있고
암묵적으로 서로에게 귀찮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함께 하는 짧은 식사시간에서 조차 핸드폰만 보는 것아서 섭섭했었다.
아니, 더 정확히는
우리의 마음이 희미해져가고 있음에 섭섭함을 느꼈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사람의 관계는
과연 어떻게 지속되는 걸까?
나는 나의 인간관계 안에서 어떤 사람으로 분류되는 걸까?
스스로에게 냉정한 사람인 것인지,
아니면 원대한 사람인 것인지,
사랑스럽거나? 혹은 이기적인 거나?
사람들은 각각의 생각에 차이와 자신만의 기준으로 나를 판단하겠지.
나에게 지금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인 걸까?
지금 나에게 좋지 않은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닌 것일까?
서로의 마음의 크기를 연인사이는 갑,을로 얘기하는데, 우린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걸까?
우리는 언제까지 좋은 관계과 유지될까?
내 마음이 자꾸 섭섭한 마음이 드는데 난 을인건가? 원래 그런사람을 내가 너무 집착하는건가? 그냥 서로를 그냥 풀어놓아야하는걸까?
사소한것부터 다른점이 보이는 우리는
아직도 싸우고 있다. 아직도 감정 소비를 하고있고,
서로의 의견이 달라서 섭섭해하고 있다.
우리의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하는 과정인 걸까?
서로 나쁜 마음이 있는것이 아니라
그냥 그도 나도 원래 그런사람들인것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티격태격하는걸까
겨울이 가고, 봄이 지나
다시 뜨거운 여름이 왔다.
우리는 계절이 지나면서 계속 변했다.
변하지 않는 건 말하지 않아도 말보다는 진한 서로를 향한 애잔한 마음인걸까?
그도 나도
우리는 오늘도 서로의 마음을 살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