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지 않기로 했다.

적당히 해라 낚시.

by 이원희


적자생존


우리 업에서 소위 '잘 나간다'는 사람은, 쉬지 않고 일 많이 하는 사람이다.

일을 많이 한다건 곧, 살아남았다는 뜻이니까.


그래서 기술은 기본으로 갖추어야 할 핏줄이라면, 영업력은 그 기술에 생명을 불어넣는 피와 같다.

영업력이 뛰어난 그룹엔 권력이 생기고, 그 권력을 휘두르는 자가 생긴다.

일을 하면서 자주 느끼고 있는 건 늑대 같은 권력의 습성은 참으로 간사하다.

(이건 내가 겪는 업계의 특성이며, 남성 비하가 아님을 먼저 밝힌다.)


권력을 쥐고 위로 올라가려고 하는 자, 누군가를 끌어내리고 또 다른 꼭대기를 만들려고 하는 자, 무리를 지어 역모를 꾀하는 자, 뒤에서 꼼수를 부리는 자.. 길고 가늘게. 편법적이고 간사하며, 이간질을 일삼으며 결국 살아남는 건 그들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정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흥할 때는 형님이고 동생처럼 열의를 다하지만, 추락하면 냉정하게 팽한다. 하루아침에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어버린다. 의리는 없다. (내 기준에서 말이다.)


(지극히 내 기준이지만) 그런 그룹에서 형님이었던 그가, 서서히 이탈되기 시작했다.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그곳에는 옛날 제이도 있었고, 돈이면 마다하지 않는 자, 이간질에 끝판왕, 권력이면 사죽을 못쓰는 자가 있었으니까. 늑대들은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서로 물고 할퀴며 상처를 남겼다.


그렇게 서서히, 아니 그들의 계획적인 행동으로 혼자가 되었다. 그는 혼돈의 시기를 보냈고, 왜?라는 물음표를 던지며 생각에 늪에서 빠지는 것 같았다. 일이 조금씩 줄어들면서, 그는 한참 동안 멍한 표정으로 낚시터에만 있었다. 상처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가 낚시하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힘내”라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건 힘을 내야 할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머리통이 얼얼하게 뒤통수를 맞았으니 믿을 수 있는 사람도, 믿고 싶은 사람도, 의지하고 싶은 사람도 없는 것 같았다. 가끔은 내가 옆에 있는 것도 잊은 사람 같았다. 그저 말없이 눈뜨면 낚시터에 있었다.




균열


나와 함께 일하던 직원이 그만두면서, 나는 혼자 일을 하게 되었다.

마침 그는 일이 없어 낚시만 하고 있었고, 자연스레 나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다만 그는 함께 일하는 동생에게 미안해했다. 혼자 벌러 가는 것 같다고.


나는 그의 동생까지 챙겨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콩 한쪽도 나눠 먹자 싶었다.

그가 하루라도 빨리 예전처럼 일을 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전화하는 것도 싫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었기에 움직여야 했다.


우리는 함께 일하며 경제적인 어려움이 계속 쌓여만 갔다. 1년은 힘들겠지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일은 풀리지 않았고, 투자했던 행사들도 실패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기분. 나는 점점 지쳐갔다.


지쳐있던 우리는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렸고, 매일 언성을 높이며 싸웠다. 이 관계를 계속 이어갈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그가 예전처럼 "이기적이니 싫다"라고만 말해도 바로 등을 돌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치 상처받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러다도 그는 낚시터에 가곤 했다. 미래를 그리지 않는 듯한 그의 모습이 싫었다. 무언가를 하려는 의지도, 노력도 없어 보였다. 지금의 빈곤이 그의 탓인 것 같아서 원망스럽기도 했다. 한때는 그를 응원하고 싶었던 내가, 이제는 왜 이런 쓸데없는 행동을 하고 있는가 싶었다. 그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해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나도, 날 잘 모른다.

나의 마음을 이해하고 다독여주 위로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직도 내가 무의식 혹은 의식적으로 하는 행동들에 대해서 구구절절 이유를 설명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그저, 그 순간 그렇게 느꼈고, 내 마음이 그렇게 동요되었을 뿐이다.

나는 나에게 특별히 관대하지도 엄격하지도 않다.

냥 나는 나로 살아가고 있고 때때로 고민하고 반성할 뿐이다.


그런 내가,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그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이 맞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역시도 삶을 '이해'라는 단어로 이끌어가는 사람은 아니었다.

본인도 본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삶이고, 그게 인간일 텐데...


내가 뭣이라고. 그를 이해하겠다고 애썼을까?

돌이켜보니 나는 그와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었던 것 같다.

나의 자존감은 그가 아니라, 내가 무너트리고 있었다.

나는 은연중에 남 탓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해'라는 말 앞에서 절댓값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시간이 흘러도 완성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가 나를 이해하길 바라지 않기로 했다. 나 또한 그를 100% 이해하려 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결심하니 내 마음이 편해졌다. 아니 그냥 나다운 모습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다시 시작


실망감과 배신감은 우리를 병들게 한다.

힘든 마음을 추스르고 싶었고, 나는 나대로 그는 그대로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흘려보낼 수 있기를 바랐다.


조용히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 가족 말고 한 사람이 더 있다는 사실,

그 믿음 만으로도 그의 자존감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 믿음이 다시 일어날 힘이 될 것임을 안다. 이번 일이 전화위복이 되리라는 것도, 더 큰 도약을 위한 발판이 되리라는 것도 안다.


잠잠해진 우리는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조금씩 상처를 보듬었고, 때때로 웃기도 했다.

일이 잘 풀리는 건 아니지만, 일이 조금씩 바빠지며 서로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했다.

각자 잘하는 것을 하기로 하면서 그는 사람을 모으기 시작했고, 나는 아이디어를 모아 일을 순차적으로 계획했다. 아직은 시작 전이지만, 우리는 한마음으로 뜻을 합했고, 마음도 조금씩 편안해졌다.


이제야 비로소,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걸어가고 있다.

한 번씩 또 싸우기도 할 것이고, 우리가 지금의 이 시간을, 훗날 웃으며 떠올리게 되길 바란다.

혹여나 우리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시간이 온다고 해도...


나는 지금의 나에게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리고 그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