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사랑으로 살아가는가

시들어버린 장미

by 이원희
다른 향기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삶 속에서 묻어나는 그들만의 향기가

참 많이 다르구나를 느낀다.


과연 나는 어떤 향이 나는 사람이고,

우리는 어떤 향기가 나는 인연인 걸까.


이 세상 모든 연인들은

정말 사랑으로 살아가는 걸까


저 하늘의 별도 달도 따주겠다며

너만 있으면 행복하고, 네가 없으면 죽을 것 같다며

눈물, 콧물 다 흘리며 프로포즈를 했었다.

빛나는 결혼을 했지만,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하자는 맹세는 희미해졌다.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서로 무너지며 악을 지르며 싸우다가,

결국 이혼이라는 곳에 깃발을 꽂으며 사람들은 전사한다.


요즘 TV에서는 연인이나 부부들이 나오는 프로가 참 많다.

그들의 삶 속에 펼쳐지는 이슈들을 보며 나도 공감하고 위로받는다.

그들은 전문가들과 함께 속에 있는 답답한 마음을 쏟아내기도 하며

상처를 보듬고 격려하고 눈물을 흘리며 치유한다.


나 역시 트라우마가 있는 허점투성이의 인간이니까.


나를 안아주며 위로하고 싶기도 하고, 잘하고 있다 칭찬해주기도 하고,

공감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기도 한다.





싸울 태세가 아니었다고,


사람은 다르다.

사는 환경도, 성격도, 기질도 모두 다르다.


골백번 이야기를 해도 다른 것은 같아질 수 없다.

이것은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며,

그냥 그러려니 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오늘은 기운이 없었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머릿속이 복잡했던 것 같다.

자꾸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 같고, 맛있는 것을 먹고 싶었다.


또 그의 지인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난 그의 표정을 살펴야 했고

익숙한 속상함, 안타까운 그의 쓸쓸함이 보였다.

난 이 상황이 위로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있어야 하는 건지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 닥칠 때마다 그저 당황스럽다.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 그의 마음은 말하지 않으니 추측만 할 뿐이다.

애써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난 가만히 있는 것으로 내 역할을 했다.


화가 난 것도 아니었고,

짜증 난 것도 아니었고,

일하다 공황이 왔었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내 귀를 시끄럽게 어지럽혔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이 당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머릿속을 비우고,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아마도,

작년 이맘때 그 일이 생각나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다행인 건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계속 현장에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는 오픈을 앞두고 있었고, 머릿속이 복잡했다.

일이 잘 풀리면 너무나 좋겠지만,

리스크가 있으니 계속 불안했다.

해야 할 일이 많은데 뭔가 일이 손에 안 잡히지 않았다.


밥을 먹으며 무슨 대화를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낮에 공황이 온 것 때문 일 수도 있다.

그저 나의 표정과 말투는 시큰둥했을 것이다.

식당 들어가기 전, 장례를 막 치른 친구와 전화통화하는 그를 보고

내가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착잡해하는 그를 보며 싱글싱글 웃으며 농담하는 것도 어울리지도 않았다.


그는 내가 싸울 태세를 하고, 시비를 걸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의 싸우는 패턴이 다 그랬다고. 밥을 먹다 말고 갑자기 나가자고 했다.

방금 소고기 2인분을 시켰는데 무작정 화를 내며 나가버렸다.

그는 나가면서도 지인인 식당직원에게 "형님, 미안해요"라며 불편하게

나가는 것에 대한 인사는 잊지 않았다. 그 뒤에서 계산하는 나는 도대체 뭘로 본 걸까?


내 감정이 어떤지 들여다보거나 묻거나, 알아보고 싶은 마음조차, 여유도 없었던 것 같다.

내가 기분이 안 좋아 보이니 눈치 보고 있는 본인의 모습이 스스로도 화가 났던 걸까.

그냥 덮어두고 나의 싸울 태세였다고 싸울 것 같았다며 역정을 냈다.

장례식에 가서 일이고 뭐고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밤을 새우며 위로를 했어야 하는데

일 때문에, 나 때문에 일찍 오게 되어 짜증이 났던 걸까?


집에 가자며 소리를 지르는데 숨이 막혔다.

그냥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집으로 가서 들어가지 못하고 한참을 싸웠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미안하다고 하는 그가

과연 뭐가 미안한 건지,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건지 모르겠다.

도대체 뭐가 어디서 잘못된 건지


이거 지금 나한테 억지를 부리며 화풀이를 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엄마로부터 오는 자존감


그는 지금 나를 필요로 하다는 느낌보다

내가 가진 무언가 때문에 머물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도 사람이니까, 사랑받고 존중받고 싶은데

자존감은 떨어지고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있는 건지 속상하고 억울했다.


이러고 있는 거 엄마가 알면 도끼라도 들고 달려와

다 쫓아내줄 것 같았다.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나니까,

머릿속이 번개 맞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 지금 별것도 아닌 일에 우울하고 자존감 떨어지고 있는 것 같다.

정신 차려야겠다.

내가 중요한 건 '나'인데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구나 싶었다.


그동안 계속 참고 또 참았었다.

스스로에게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질책했으며

그의 비난을 듣고 내가 어떻게 잘못했었는지 곱씹어 보았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다짐했다.

말을 하다가 잘못 선택된 단어로 오해를 살까 봐 말을 더듬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자존감도 떨어졌고, 우울했다.


그런데, 그가 비난한 건 나의 실수도 잘못도 아니다.

그가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반응했고, 나는 내 경험 안에서 해석했다.

서로 다른 지도를 들고 같은 길을 걷고 있었던 셈이다.


그가 다 맞는 것도 아니고, 내가 다 틀린 것도 아니다

반대로 내가 다 맞고, 그가 틀린 것도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섭섭한 마음이 생기면 싸우기가 싫어서 그냥 넘어갔었다.

그 역시도 그랬다.

싸우기가 싫으니까 섭섭한 마음이 계속 쌓아두었고,

그 마음들은 활화산처럼 계속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럼 우리 둘 다 싸울태세였다는 말인가?




불안형, 회피형



내가 다음 생애 다시 태어나면 뭐로 태어나면 좋을 것 같아?


훨훨 날아다닐 수 있는 독수리?

바다를 맘껏 돌아다닐 수 있는 고래?


뭘 할까 고심하던 끝에

옆에 있던 그에게 물었다.


'내가 다른 생물로 태어나면 뭐가 어울릴 것 같아?'

'4짜 붕어?'

'갑자기 붕어? 내가 붕어 닮았나?'

'아니 내가 낚시해서 계속 잡으니까.'


어딜 가든 잡아챌 테니

붕어로 다시 태어나란다.

그럼 너님은 다시 인간인 거고?

그렇게 또 웃는다.



그렇게 농담을 하며,

우리는 다음 생애도 만나야 한다며

웃었던 때가 있었다.


투박하지만 날 위해 농담을 던지는 그가,

복잡한 날 위해 웃을 수 있게 해주는 그가,

한없이 좋았었다.

그가 없어졌을 때면 난 불안했었다.

그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난 무엇을 했었단 말인가,

함께하면서 우리는 지금 뭘 하고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지금 웃지 못하는 이유가

여유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돈? 신뢰? 그것이 다 무너진 걸까,


그는 회피형이고, 나는 불안형이라서 그런 걸까?




돈 그리고 신뢰


모든 관계는 신뢰가 무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돈은 없다가도 있을 수 있고, 있다가도 없을 수 있기 때문에

둘의 신뢰가 무너지지 않는다면 돈은 없어도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신뢰가 없어 서로 불안하다면 그것 또한 삶이 힘겨워진다고 생각한다


부부는 서로를 의지하고 조금은 부족하더라도 웃을 수 있는 힘을 갖는다.

나의 든든한 내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다.


그런데 요즘은 정말 모든 관계는 돈이 제일 중요한가라는 생각이 든다.

왜 자꾸 그런 생각에 사로 잡히며 힘들어하는 걸까?


사람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하는데,

요즘 나의 주변이 힘겨운 건가?


머릿속이 복잡하고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니

글도 써지지도 않고 어떻게 이 글을 정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말하지 않는 사람’과 ‘모든 걸 설명하려는 사람’ 사이에서 생기는 오해,

‘공감받고 싶은 사람’과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사람’ 사이의 거리감.

이 복잡한 감정들을 단순하게 정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왜 나는 자꾸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까,

과연 이 억울한 감정이 연인에서 나오는 감정이 맞는 걸까,

시들어버린 장미처럼, 우리의 사랑도 유효기간이 끝나가는 걸까.

그래서 이해의 폭이 점점 좁아지고, 결국엔 이기적인 해석만 남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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