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내가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올림픽 공원에서 만난 유럽인

by Amory

차갑게 비가 내리는 12월의 토요일 저녁 6시.

이른 시간이지만 겨울이라 이미 어두컴컴하다. 차가운 비가 습하게 내려서인지, 공원은 유난히 더 어둡게 느껴졌다. 나는 올림픽 공원을 한 시간쯤 걷고 있었다. 이 세계에 나 혼자 남은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그때 외국인 커플 하나가 나를 불렀다. 어둡고 차가운 올림픽 공원 한가운데서, 그들은 우산을 들고 길을 잃은 고라니처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마치 이곳의 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간절한 눈빛으로 말을 걸어왔다. 그 순간 나는 묘지의 파수꾼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은 어두운 밤과 이질적으로 환하게 빛나는 휴대폰 화면을 내게 보여주며 이곳을 아느냐고 물었다. 화면 속 사진은 비 오는 겨울 밤과는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쨍한 햇살 아래의 올림픽 공원 정문이었다. 다행히도 내가 아는 곳이었다. 나는 20분 정도 쭉 가면 나온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말하다 보니, 그 정문이 공사 중이라 바로 지나갈 수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리며 말을 덧붙였다.

“갈 수는 있는데요, 지금 공사 중이라 컨디션이 좀 안 좋아요. 그래도 20분쯤 쭉 가면 나오긴 해요.”

그들은 너무나 순한 양처럼, 그저 고맙다는 인사를 연신 반복했다. 그들에게 좋은 시간 보내라며 손을 흔들며 그들과 헤어졌다. 머릿속으로는 내가 오히려 고맙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에게 말을 걸어줘서 고맙다고.

하지만 그 고마움을 그대로 말하기엔 상황이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담담하게 “좋은 시간 보내세요”라고만 말했다. 사실은, 길을 묻던 당신들이 오히려 더 고마웠다.


'Actually, I’m glad I met you. Thank you too.'
unnamed.png 올림픽 공원(https://maps.app.goo.gl/M9ovYp5swMwbqo7C8)

(구글 맵스에 올림픽 공원을 검색 후 뜨는 첫 사진은 일행이 보여준 사진이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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