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일자리를 찾아서

추운 겨울 현실과 이상을 끊임없이 타협하던 초라한 시절

by Am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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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어 보일려고 큰 사이즈의 컨버스 신발끈을 꽉 조여 매었던 그 시절의 나

힙합이라는 꿈이 있지만 현실을 모른 척할 수 없는 법이었다. 당장의 방세와 식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직업이 필요했다. 꿈과 다른 직업을 갖는다는 건 한편으로 패배감을 느끼게 만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아무 직업이 아닌 내가 원래 계획했던 방향인 패선의 결이 같은 의류 매장에서 일한다면 더욱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나는 매장에 일하는 직원이 세상 멋있어 보였다. 그들에게는 자신만의 빛과 색을 뿜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유니클로나 자라(ZARA) 같은 SPA 매장에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저럴게 될 수 있을까 동경했다.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힙합으로 돈을 버는 건 평생이 걸려도 불가능할지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매장에 취업하는 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막무가내의 삶처럼 보여도 최소한의 현실성을 있었다. 그래서 의류 매장에 보이는 대로 이력서를 넣었다. 서비스 직에 대한 경력이 없는 20대 초의 평범한 남자의 이력서는 10군데 넣으면 한 두 군데 정도만 면접 연락이 왔다. 면접을 가게 되면 늘 준비 안된 상태에서 창고 같은 공간 한편에 간이 의자를 앉아서 얼마나 일할건지 혹은 잘할 수 있냐는 준비 없는 질문을 몇 가지 툭툭 주고받고 끝이 났다. 대부분의 면접 결과는 따로 통보 없이 무소식으로 불합격을 인지해야 했다.

첫 번째 희망 돈벌이 직업이었던 옷가게 매장은 예상대로 쉽게 합격되지 않았다. 그 시절의 경제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당시 잘 나가는 브랜드라면 지원하는 사람이 꽤나 있어 보였고 매장도 바쁜 것과 반대로 새로운 사람을 채용하는 데 있어서는 절실해 보이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비교대상이나 세상의 경제 흐름에는 무지했으니 그저 나 자신이 부족한 사람이라 그런 것이라 생각하며 가볍게 넘어갔다. 현실을 딱딱함에 세상을 미워하지는 않았다. 당시에는 모든 문제를 노력의 부족이나 거만한 생각 따위로 결론지었기 때문에 좌절에 빠질 일은 거의 없었다. 그저 좀 더 일하기 어렵고 쉽게 받아주는 곳을 지원하면 된다. 그래서 2차 스텝은 패스트푸드 같은 체인 식당이었다. 전에 곰탕집 주방에서 일하면서 일반 식당에는 진절머리가 났지만, 햄버거나 샌드위치를 판매하는 곳은 TGIF와 롯데리아 알바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나름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패스트푸드 점도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열 군데를 넣으면 한 두 군데 정도 연락이 왔다. 기억나는 면접에는 서브웨이가 있었는데 적극적으로 잘할 수 있다고 표현했지만 그곳에 점장은 잘할지 걱정된다느니 오래 할 사람을 찾느냐니 푸념만 계속 뱉었고 혼자 적극적인 면접은 당연하게도 연락 없는 불합격이었다. 지난 근무를 퇴사 후 삼 개월 간 계속되는 불합격은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주머니는 비어 가고 식사는 늘 계란볶음밥이었다. 당시에는 식사에 대한 불만 없이 원체 잘 먹었지만 이러한 식사도 못하는 지경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때 가장 희망하던 일자리에서 연락이 왔다. 패션 브랜드 자라가 포함된 인디텍스의 헤드헌터 면접 연락이었다. 그때의 기분으로 면접을 본다고 합격을 자신할 수 없었지만 걱정을 잊고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무언가 준비할게 생겼다는 이유 자체로 기분이 좋았다.

1차 면접은 헤드헌터에서 자체적으로 필터링하는 면접이었다. 복장은 깔끔하면서도 정장은 피해달라고 하였다. 어차피 정장은 있지도 않았고 검정 블레이저에 검정 티셔츠로 상의를 맞추고 하의는 검은색에 통이 조금 넓지만 기장은 복숭아뼈가 보이는 바지를 입었고 양말은 면 소재의 검은색의 긴 발목 양말이었고 신발은 검은색 오버사이즈한 기본 컨버스를 꽉 쪼아 신었다. 그때의 복장을 돌이켜보면 이상하게 무언가 꼬질하고 학생스러운 느낌이 든다. 하지만 당시에는 가장 깔끔한 복장이었다고 생각했고 아마 그랬을 것이다. 까만색으로 무장하고 머릿속은 전날 급히 배운 회사 정보들로 뒤죽박죽 했다. 몇몇 주워들은 CEO의 이념을 어떤 식으로 잘 아는 척 관심 많은 척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고 당시 외웠던 이념에는 ‘직원은 매장의 얼굴이다.’라든지 ‘패션은 생선가게에서 생선을 파는 것과 같다’ 따위였다. 면접 장소는 강남의 한 사옥이었고 간단한 서비스나 진상 고객 대처 등을 물어보는 면접으로 끝이 났다.

면접을 보고 난 뒤 합격을 해도 2차 본사 면접까지 봐야 한다는 사실이 합격을 더욱 멀게 느껴지게 만들었지만 다행히도 2일쯤 지나서 대행사의 1차 면접 합격 연락을 받았고 마지막으로 인디텍스 본사 면접을 하면 된다고 설명받았다. 인디텍스 본사는 코엑스 무역센터 높은 층에 위치해 있었다. 늘 지점에서만 면접 보다가 하늘과 높은 빌딩이 보이는 창문이 있는 사옥에서 면접을 보니 괜히 들뜨면서도 어색했다. 면접은 그 당시 봤던 그 어떤 면접보다 체계적인 느낌이었다. 쉽게 말해 가장 면접다운 면접이었다. 다만 특이한 건 한 번에 5명 정도 들어가서 면접담당자 1명과 면접을 보는 형태였다. 비교 경험이 없던 나는 이것이 글로벌 기업의 면접인가 생각했다. 면접의 질문은 대행사에서 보던 것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다만 면접관은 질문은 지정해서 주는 식이 아니라 아는 사람이 손 들거나 눈치껏 발표하는 방식이었다. 당시 난 면접관 질문에 생각나는 대로 제일 먼저 답하고 자신감 있는 말투로 크게 말했다. 큰 목소리와 과도한 자신감에 면접관은 간혹 웃음을 가볍게 피식 보였다. 당시 기억나는 질문으로 자라홈 남성 섹션에 지원했는데 남성 섹션은 채용하는 직원이 적어서 근무하기 어려운데 다른 브랜드에서 일할 수 있냐고 물었는데 당장 밥 벌어먹는 것만도 급한 내게 브랜드고 아동복이고 중요한 게 뭐가 있겠냐는 마음에 큰 목소리로 “저는 다 좋습니다. 다 가능합니다” 라든지 영어는 잘하냐는 질문에 “많이 모자랍니다.”라는 부끄러울 수 있는 질문도 전혀 부끄럽지 않게 당당하고 크게 말했는데 당당한 대답에 면접관이 웃었던 걸로 기억한다. 능력치로 보았을 때 유학한 면접자도 있었고 근무 경험이 많은 면접자도 있어서 부족한다는 걸 인정했지만 면접 분위기만큼은 합격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들었다.

면접이 끝이 나고 한 달 정도가 지났다. 인생은 차갑게도 합격 연락이 오지 않았고 이제는 기가 한풀 꺾여서 전처럼 열정적으로 지원하고 면접 볼 에너지도 줄어들었음을 느꼈다. 간간히 당일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는데 당일 아르바이트로 잘만하면 한 달 식비정도는 유지하니 생각보다 천천히 오래 달려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무렵 면접을 본 인디텍스에서 전화가 왔다. 전화의 내용은 합격하였는데 자라가 아닌 자라홈에서 일해도 괜찮냐는 연락이었고 더 이상 식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과 멋진 장소에서 일할 수 있다는 기쁜 마음으로 근무를 수락했다. 첫 근무일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도로 한편에 눈이 쌓여있던 2018년 1월 3일.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