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것이 좋아
나는 더위보다 추위를 많이타고 찬음식을 먹으면 잘 체하는 체질이라 뜨거운 것을 더 좋아한다. 그 다음으로 선호하는 것은 식어버린 미지근함이 아니라 차가운 것이다. 호불호가 뚜렷한 성격탓인지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나 사람은 싫다. 차가우면 차가웠지 애매한 미지근함은 싫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표현하라고 하면 다시 생각해보니 '미지근한 온탕'이다.
어릴 때 우리집에 위인전집이 있었다. 나도 이런 위인전이 만들어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야무진 꿈을 꾸던 아이였다. 이런 무의식의 영향 탓인지 학창시절에는 자서전을 곧 잘 읽었다. 그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보는 것이 재밌었다. 그러면서 언젠가 나도 자서전을 쓰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꿨다. 사주팔자나 운세를 믿지 않고 내 돈주고 본 적도 없다. 우연히 손금이나 사주가 좋다는 말을 들으면 (누구나 들었겠지만) 겉으론 그 말을 믿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그 말이 진짜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다음에 더 할 수 있어라며 늘 노력을 미뤘다. 아래 문장을 그냥 품고만 살았다. 언젠가 나에게도 뭔가 있겠지라는 헛된 희망도 함께.
당신이 알고 있는 그 이상의 무엇이 당신에게 있다.
<손바닥 자서전 특강>
고등학교 때 매일 본 신문 덕분인지 어느 순간 부터 Appel, FANG(Facebook, Amazon, Nexflix, Google), 유니콘, 스타트업 이런 기업이 너무 멋져보였다. 세상을 바꾸는 기업의 일원이 되거나 그런 기업을 만들고 싶다 생각했다. 생각과 현실의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내 일이 아닌 듯 생각했나보다.
진짜 하고 싶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갈길을 가야한다. 하지만 나는 지나가다 신기한 것이 있으면 쳐다보고, 친구를 만나면 놀다가고, 구덩이에 빠지면 나와서 갈길 가면 되는데 더 땅굴을 파 들어가는 등 산만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꿈도 컸지만 나의 메타인지 부족으로 인해 어느새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다 보니 뜨거운 온탕이, 식어버린 미지근한 온탕이 되어버렸다.
늘 그렇듯 핑계거리는 있었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에서 썼듯이 비극이 있긴했다. 돌이켜보면 비극에 너무 오래 잠겨있었다. 그 이후로 작은 비극에도 오래 잠기곤 했다. 비극에서 빨리 헤어나오는 법을 늦게 터득했다. 내가 지인들에게 쓰는 편지 말미에는 '늘 좋은 일만 가득하세요~!' 라고 쓰곤 했다. 하지만 비극도 내 삶의 일부란 것을 받아들인 후로 편지 글은 바뀌었다. 늘 좋은 일만 가득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잘 이겨내시길 바란다고.
마침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었고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란 말에 꽂힌 덕분인 듯 하다. 인생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내가 선택할 수 없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나의 반응과 태도뿐이다. 어떤 비극을 겪어도 그것에 주눅들지 말자고 다짐했다. 저말은 곧 '도전하라, 한번도 실패하지 않은 것처럼', '살아가라, 한번도 비극이 없었던 것처럼' 등등으로 보였다.
<손바닥 자서전 특강>을 읽기 전엔 글쓰기에 관한 조언만 가득할 줄 알았는데, 나의 지난 삶까지 돌아볼 수 있었다. 나처럼 소재를 찾기 어려워하거나 보여주기가 아닌 설명밖에 하지 못할까봐 뫼비우스 구성이라던가 현재-과거-현재 식의 서술 등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까지 알려준다. 그것을 내것으로 만드느냐는 다시 내 몫이겠지만
자서전을 쓸 만큼 무언가 이룬 것은 부족하지만 앞으로 써나갈 나의 자서전엔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고 나 또한 잘 살았다고 생각할 만큼 페이지도 내 삶도 알차게 채워나가고 싶다. 손바닥만한 일이라도 소중하게 기억하고 배워야겠다. 나의 삶을 내가 원하는 대로 표현할 날은 아직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