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누굴 도왔나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by 유프로

내가 초등학생 때 우리 가족은 영화를 자주 봤다. 주말이면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서 집에서 다 같이 봤다. 나름 우리 집의 평화로운 주말 문화였다. 나중엔 엄마가 홈씨어터까지 설치하셨다. 그 뒤로 오히려 더 자주 모이지 못했지만. 영화는 주로 엄마가 보고 싶은 것이었는데 점점 내가 커가면서 나의 기호도 많이 반영되었다. 비디오 대여점까지 다녀오는 것을 다들 귀찮아해서 내가 대부분 반납하고 대여하러 갔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가 몇 개가 있는데 대부분 재미가 있거나 결말이 좋아서, 아님 느낌이나 스토리가 좋아서다. 저렇게 되고 싶다거나 나의 모토로 삼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 처음 본 영화 하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좌우명이 되었다. 인터넷에서 회원가입할 때마다 비밀번호 찾기 질문의 답은 무조건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라고 했다. 타이핑하면서 되새기고 싶었다.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라는 영화는 초등학교 때 선생님의 추천으로 보게 됐다. 아무래도 주인공이 내 또래였으므로 대단하게 느꼈던 것 같다. 나와 나이도 비슷한데 나는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부모님한테도 잘 대드는 나인데 부모님한테도 저렇게 의젓할 수 있을까?


간단히 영화 설명을 하자면 학교 선생님이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와 그것을 실행할 방법을 생각해오라고 숙제를 내준다. 다른 아이들은 별 거 없었다.(본지 오래돼서 사실 기억이 잘 안 난다) 하지만 트레버라는 아이는 담담하게 '세 사람씩 도와주기'를 발표한다. 우리가 모두 세 사람씩 도와주고, 도움받은 세 사람도 각각 세 사람씩 도와주는 것이다. 그렇게 도움은 계속 전파되고 늘어난다. 그 나이 때에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트레버는 그리고 실제로 세 사람을 돕는다. 그 도움과 취지가 돌고 돌아 트레버의 집으로 돌아온다.


나도 도움의 시작점이 되고 싶었다. 착하게 살자고 마음먹고살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못된 사람들한테까지 착하게 대하거나 도와줄 넓은 아량은 내게 없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인터넷에서 회원 가입할 때 비밀번호 찾기 질문도 없어진 것 같다. 그렇게 저 영화와 내 좌우명은 잊혀 갔다.


잊은 것은 이 영화와 좌우명뿐만이 아니었다. 사춘기부터는 가족보다 친구가 우선이니까 나는 영화를 거의 친구들과 보러 갔다. 부모님은 아마 그때부터 영화를 거의 못 보지 않았을까, 비디오 대여점도 사라져 갔고 집에서 티브이는 다들 잘 보지 않는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세 사람을 돕자는 좌우명은 잊었지만, 이 힘든 사회생활을 견디며 우리를 키우신 부모님에 대한 존경심은 생겨났다. 그래서 가끔 영화 예매를 해드 리거나 같이 보러 간다. 조금 오래 걸렸지만 주말의 가족 영화관을 다시 운영하고 있다.


쓰기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노력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좋은 글은 결국 글을 쓰는 사람의 노력의 결과입니다. 어떤 목표까지 쓰고 고치고 쓰고 고치는 과정을 견딜 수 있는 끈기를 가졌는가, 그런 끈기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손바닥 자서전 특강>


내게 영향을 미친 가치관을 생각해봤을 때 단박에 저 영화가 생각났다. 모호한 목표였지만 방향성은 있었다. 먼저 친절하려고 했다. 오늘 책에서 만난 문장은 글쓰기에 관해 희망적인 말을 건넸지만, 다른 곳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어떤 목표까지 하고 수정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견딜 수 있는 끈기'


내가 도운사람이 못된 사람이거나 도움이 전파되지 않는다 해도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었다. 그렇다고 아예 돕기를 포기하는 것은 진짜 가치관이 아니다. 오늘의 질문을 통해 잊었던 나의 가치관도 다시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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