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 화학 선생님이 진짜 웃겼다. 늘 웃다가 수업이 끝났다. 그래서 내가 화학을 좋아한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나는 무조건 이것만 전공하겠다고 고집부렸다. 다른 전공이 더 잘 맞았을 수도 있고 전과하는 방법도 있는데 한번 좋다고 생각한 것이나 시작한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해야 했다. 나는 '처음 든 생각'에 집착했다.
나의 집착 포인트를 생각해보니 나는 늘 처음 떠오른 생각이나 계획에 집착했다. 그것을 잘 바꾸지 못한다. 노빠꾸다. 잘 맞지 않는 연인이었는데도 헤어지지도 못하고 질질 끈적도 많다. 누구를 만나기로 약속했으면 내가 몸이 아프거나 궂은 날씨여도 멀어도 간다. (남이 취소하는 것은 괜찮다.) 갑자기 전화해서 10분 뒤에 나오라는 것도 싫다. 내 당초 계획에 없는 일이니까. 오늘 이 일을 해야 하는데 갑자기 급한 일이 생기는 것도 싫다.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으므로
내가 하려고 맘먹은 곳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터지면 그에 맞게 수정을 잘 못한다. 계획이 틀어지는 것이 싫으니까 어느 순간부터 계획도 잘 안 세우게 됐다. 처음 든 마음을 다시 돌아보지 않고 무작정 가다 보니 내가 전공과 잘 안 맞다고 깨닫는 데도 오래 걸렸다. 전공을 좋아는 했지만 그렇게 잘하지도 않았으면서 전과할 생각도 안 하고 계속 붙잡고 있었다. 취업도 나의 전공대로 해야 한다 집착했다. 처음에 하기로 마음먹은 것, 가기로 한 곳은 가야 하니까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 때문이었을까, 원래 성격이 이랬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계획과 예상에서 벗어나면 계획을 수정하면 되는데 그것을 잘 못한다. 괜히 처음에 집착하게 되고 잘하지 못하더라고 쥐고 있다. 어찌 보면 내가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한 것도 한 번 뛰기 시작해서 멈출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도 있는 것 같다. 무엇을 시작하면 그냥 계속한다. 계획을 못 바꾸니까
자동차의 시동을 끄고 켜는 버튼도 같은 버튼 하나다. 대부분의 기계가 켜는 버튼이나 끄는 버튼이 같다. 그러고 보니 마라톤 경주도 출발선과 결승선이 같다. 시작과 끝은 붙어있다. 계획한 일이 내 예상과 다르면 그냥 끝내고 바로 다시 시작하면 된다. 이것을 깨닫는데 참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지금은 전공과 좀 비슷하지만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생각보다 전공지식을 쓸 일은 없었고 일을 할수록 다른 전공을 했으면 더 잘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는 지금보다 젊었는데 생각은 더 닫혀있던 듯하다. 젊은 꼰대였나
글은 '보여줄' 때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거나 뭔가 하나 남길 수 있습니다.
<손바닥 자서전 특강>
처음이 내게 보여준 설렘 때문에 흔들리며 살았다. 첫사랑, 첫눈, 첫 글, 첫 번째, 첫 사회생활 등등 처음은 늘 설레고 처음이라 뭐든 용서받는다. '첫'이라는 단어만 들어가면 특별해진다. 처음이라 기억에 더 남을 뿐 처음에 집착할 필요 없다. 누구나 처음은 있다. 설렘을 간직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