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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음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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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정 Feb 13. 2024

힘빼고 go

내게 머문 마음

모두가 잠든 밤, 극심한 통증에 잠을 깼다. 왼쪽 엉덩이의 중심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 ‘악’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이를 악물고 고요함을 지키려 애써본다. 배속을 느리게 설정한 영상처럼 천천히 몸을 움직여 본다. 왼쪽으로 돌아누워도, 오른쪽으로 돌아누워도 통증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번에도 나의 열정이 나를 아프게 하나보다. 밤새 열정의 통증으로 뒤척이던 나는 결국 아침이 되자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병원으로 향했다.     

  나의 최대 무기는 성실과 노력이다. 늘 머리가 좋지 않다고 생각하던 나는 성실과 노력만이 나의 살길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학창시절에는 공부해라 소리 한 번 듣지 않고 자발적으로 의자를 떠나지 않는 모범생이었다. 그 덕에 대학입학과 함께 땀띠를 엉덩이에 문신처럼 새길 수 있었다. 땀띠가 자랑스럽진 않았지만 그간의 성실과 노력을 잊지 말라는 징표 같아 싫지 않았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던 땀띠 자국은 목욕탕을 갈 때마다 나의 뒷 통수를 근질거리게 만드는 장본인이 되어주었다.     


  대학 졸업반 때는 취미로 배구를 배웠었다. 며칠 짜리 단기 연수였고 그때 처음으로 배구란걸 체계적으로 배웠다. 누구보다 열심히 듣고, 보고, 따라 했다. 손목에는 멍이 훈장처럼 들어있었고, 눈은 반짝이다 못해 번뜩였다. 누구보다 잘하고 싶었고 열심히 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연수 막바지에 이르자 나의 열정은 이상 증세가 되어 나타났다. 물이 가득 찬 것처럼 무릎에 이물감이 느껴지고 무릎 꿇는 자세가 되지 않았다. 누구보다 잘하고 싶었지만 누구보다 일찍 배구를 그만두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나의 지나친 열정이었다.     


  이런 성실과 노력은 단순히 운동을 하거나 공부할 때만 발휘되는 건 아니었다. 고민을 하거나 걱정을 할 때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업무처리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민원에도 밤잠을 설쳤고, 상대방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도 지나치게 깊이 고민하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처구니 없지만 그래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무언가에 대해 온 마음을 다해 바닥까지 고민해야 그 일이 일어나지 않거나, 순조롭게 해결된다고 생각했다. 밤잠도 설쳐가며 고민했기에 자려고 누우면 천장에는 고민과 걱정들이 반복되는 유튜브 영상처럼 생생하게 재생되곤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운동이 습관이 되도록 하기 위해 격일로 온천천을 달리던 나는 근력운동을 병행하고 싶었다. 그래서 생애 최초로 필라테스를 수강하기로 했다. 열심히 하고자 하는 마음은 늘 그렇듯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를 찾아왔다. 50회 수강권을 한꺼번에 끊고 열심히 필라테스 수업을 들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선생님을 따라 했고, 한 동작 한 동작 최선을 다했다. 내 몸의 모든 근육들이 깨어나기를 바랐고, 나의 몸은 이미 성실과 노력으로 아름다워져 있는 것만 같았다.     


  한 달 정도 필라테스를 열심히 다닌 어느 날, 왼쪽 엉덩이가 유독 당겼다. 운동하면 으레 근육통이 뒤따른다 생각했고, 근육통이 심하게 오는 것이 열정의 흔적 같아 뿌듯하기까지 했다. 혹시나 동작이 정확하지 않아 생기는 통증인가 싶어 선생님께 친히 물어보기도 했다. 선생님은 왼쪽 엉덩이 근육이 오른쪽보다 약하거나 몸이 조금 뒤틀렸을 수도 있다고 하셨다. 더 열심히 하다 보면 근육도 풀리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생각은 오산이었다. 필라테스 학원을 마치고 나올 때는 분명히 잘 걸어서 나왔는데 자고 일어나자 좀 더 아팠고, 그날 밤이 되자 돌아누울 수도 없을 만큼 심각한 통증을 겪어야 했다. 단순 근육통이라고 생각하기엔 통증의 정도가 지나쳤다. 날카롭고 굵은 송곳이 통증 부위를 마구 쑤시는 것만 같았다. 남편의 도움을 받아 찾아간 병원에서는 체외충격파와 각종 물리치료를 권했고, 먹는 약까지 처방해 주었다. 다행히 3일치 약을 먹고 나자 통증은 사라졌고, 일주일간의 휴식 후 다시 필라테스 수업에 갈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은 나에게 늘 말한다. 열심히 하지 말고 그냥 하라고. 온몸과 마음 다 바쳐 열심히 하지 않더라도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꾸준히 하기만 하면 된다고. 나는 그런 남편에게 늘 내 말이 맞고 당신 말은 틀렸다는 듯이 소리치곤 했다. 열정을 갖고 진심으로 그 일을 해야 성과가 좋다고. 그래야 발전도 있는 거라고.     


  열정을 갖고 진심으로 일해야 성과가 좋다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나는 이제 남편의 말도 맞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때로 나의 지나친 열정이 나 스스로를 힘들고 아프게도 했음을 인정한다. 성실과 노력이라는 이름 아래 내 마음의 소리를 외면하거나 몸과 마음의 건강을 돌보지 않은 순간도 분명 있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결국은 행복하기 위함인데 나 자신을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갉아먹을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열심히 해야지, 힘든 동작도 꾹 참고 해야지 같은 생각은 이제 떨쳐 버리려고 한다. 남편 말마따나 운동할 시간이 되었으니 그냥 간다. 오늘이 쌓이고, 1년이 쌓이고, 언젠가 운동이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될 수 있도록 하루하루 해나갈 뿐이다. 온몸에 주었던 결의에 찬 힘을 빼고 오늘도 그냥 한다. 왼쪽 엉덩이의 예리했던 통증을 생각하며 오늘도 운동복을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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