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머문 마음
이름 모를 택배가 도착했다. 생각보다 상자가 크다. 내용물이 무엇인지 빠르게 스캔한다. 무려 생화(生化)다. 크기에 비해 가벼운 상자를 들고 얼른 집안으로 이동한다. 택배 칼을 들고 리드미컬하게 상자를 해체한다. 신문지에 똘똘 말린 꽃의 정체는 무엇일까? 내가 좋아해 마지않는 노랑색 튤립이다. 꽃을 보호해 주던 신문지를 재빠르게 분리수거한다. 꽃을 다듬고 어울리는 화병에 물을 채운다. 아직 채 피지 않은 노란 튤립을 꽂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에, 살아있는 가구 같은 꽃을 둔다. 오갈 때마다 나와 눈이 마주치는 튤립. 니가 거기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행복하다.
내 취향의 생화를 꽂아 두고 피어나고 저무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작지만 큰 행복이다. 장미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며 쨍한 색감보다 파스텔 톤 꽃을 좋아한다. 말려도 색이 그대로인 스타치스도 자주 사는 편이며 유칼립투스처럼 원하는 방향으로 뻗어 나와 꽃의 아름다움을 살려주는 것들도 좋아한다. 수국의 풍성함도, 라넌큘러스의 우아함도 사랑한다. 튤립의 발랄함이나 백합의 맑음에도 손이 간다. 꽃뿐만 아니라 천으로 만든 작은 파우치나 소품함도 내 취향이다. 만든이의 정성도 내 것이 되는 느낌이랄까? 내 취향의 핸드메이드 물건과 마주칠 때면 무턱대고 사고 싶은 마음과 쓸모의 가치 사이에서 한참을 고민한다. 나무로 만든 제품은 또 어떤가? 싸고 컬러풀한 플라스틱들을 제치고 나무의 시간을 온전히 담은 접시나 바구니, 부엌용품들에는 눈길 한 번, 손길 한 번이 더 머문다.
그릇도 좋아해 마지않는다. 그중에서도 오발 접시가 내 취향이라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꽃무늬를 싫어하며 단정한 흰색을 좋아하지만 정직하게 생긴 모양보다 수줍은 듯 약간의 멋을 부린 접시를 좋아한다. 요즘은 흰색뿐인 접시들 사이에 시크한 블랙을 넣으면 어떨까 하고 고민하는 중이다. 좋아하는 브랜드는 언제나 눈여겨보며 운명같은 만남이 이루어지기를 손꼽아 기다리기도 한다.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기에 문구류도 애정한다. 격자무늬 내지의 질 좋은 공책, 필기감이 좋은 볼펜이나 만년필, 그 모든 것들을 담아둘 수 있는 멋들어진 필통까지. 그런 것들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작가가 된 기분이다. 이뿐이랴? 어린아이처럼 인형도 좋아하여 한때 인형을 수집하기도 했었다. 웃고 있는 얼굴을 좋아하고 공주풍보다 캐주얼한 인형들이 취향이다. 주근깨가 그려져 있으면 그 즉시 데려와야 했고, 멜빵바지를 입었거나 여름을 닮은 까무잡잡한 피부의 인형이라면 사족을 못 쓴 적도 있다.
최근 들어 내가 놓치지 않고 보는 구독 채널이 있다. 컬러풀한 가구들과 귀여운 아이템들로 가득한 어느 집의 일상을 보여주는 채널이다. 그 채널에는 주로 언니와 동생이 등장한다. 가끔은 언니와 동생을 동시에 알고 있는 친구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들은 한 집에 모여 맛있는 음식을 해 먹기도 하고 서로의 인테리어 아이디어들을 벤치마킹 한다. 서로의 집에 초대를 받으면 항상 그들의 손에 작은 선물이 들려 있다. 그것은 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이기보다 이미 있지만 집안에 신선함과 새로움을 채워 줄 아이템들이다. 디자인 감각이 돋보이는 작은 러그, 트리 모양의 접이식 냄비 받침 같은 것들.
선물을 받아든 언니와 동생은 친구들에게 갖은 리액션을 다한다. 화면 속에서도 그것이 정말 그들의 취향이라는 것이 묻어난다. 갖고 싶었으나 세상 어디에 있는지 몰라 헤매고 있었는데 마침 그것을 친구가 떡 하니 내 앞에 가져다주는 것 같은 느낌. 물론 러그도 이미 그 집에 깔려 있고, 냄비 받침이야 몇 개나 있겠지만 친구가 준 러그와 냄비 받침은 그녀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과 또 다른, 전혀 새로운 것이다. 그녀들의 취향인 선물을 받는 마음이 얼마나 반가울지 상상이 간다. 그 물건들을 꺼내 쓰며 매일이 똑같던 식탁은 새로운 식탁으로 변신할 것이며 러그 한 장이 거실의 분위기를 180도 다르게 변화시켜 줄 것이다. 그 순간 느껴질 행복이 이미 화면 밖까지 마중나와 있다.
좋아하는 품목이긴 하더라도 내 취향이 아니면 그것은 짐이 될 뿐이다. 너무 많은 물건을 가지고 사는 삶에 대해 경계하기에 집에 있는 물건들의 개수는 균형이 잡혀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새 물건을 사는 것도 주저하게 되고 되도록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 수명을 다할 때까지 오래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선물이라면 다르지 않을까?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마음을 담아 선물한다고 하면 기꺼이 받아야 하지 않을까? 얼마 전 내게로 온 꽃 택배는 그래서 더 설렜다. 완벽히 내 취향인 꽃이 왔다. 내가 샀어도 좋았을 텐데 응원의 마음까지 실어 보낸 꽃은 감동 그 자체였다.
내 물건 늘리는 것은 싫고 갖고 싶은 물건이 있을 때 내가 잘 쓰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그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는 것이다. 물론 너무 비싸거나 큰 것은 서로에게 부담이 되므로 피한다. 하지만 작고 부담스럽지 않은 경우, 그 물건의 주인이 누구일지 생각해 보고 그 혹은 그녀들에게 선물을 한다.
얼마 전 직장을 옮기는 동료들에게 텀블러를 선물한 적이 있다. 나는 한 브랜드를 좋아하면 그 브랜드에 오래 머무르는 편이다. 그 텀블러도 내가 좋아해 마지않는 브랜드였다. 그릇 브랜드인 줄 알았는데 언젠가부터 화병도 나오고 시계도 나오고 텀블러도 나오고 있다. 특이한 모양과 세련된 색채의 텀블러는 한눈에 나를 사로잡았다. 집에 텀블러가 있었기에 또 살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사지 않기에는 너무 내 취향이었다. 직장을 옮기는 동료들에게 아쉬운 마음을 담아 그 텀블러를 선물했다. 비록 그것이 그녀들의 취향에 맞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내 취향이 담긴 물건을 산다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설레었다.
또 언젠가는 직장동료의 자리에 갔다가 그 위치에 꽃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친구가 꽃을 좋아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모른다. 그저 내 마음이 움직였을 뿐이다. 한편으로는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보편타당한 이유를 갖다 대며 꽃을 사야 할 이유를 만들고 있었다. 다음 날 꽃 한 다발을 화병에 꽂아 선물로 가져갔다. 휑하던 자리에 꽃으로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다행히도 너무 예쁘다며 환하게 웃어주던 동료의 마음 덕분에 내 마음에도 꽃이 폈다.
거실 탁자 위에 꽂혀 있던 꽃이 지금은 사라졌다. 내게 은은한 향과 보는 재미를 선사한 후 조용히 자신의 시간을 마감했다. 지금쯤 봄 향을 실은 꽃 한 다발을 다시 사야 하는데... 오래 전 그날처럼 느닷없이 택배가 도착하기를 기다려본다. 혹은 그 언젠가의 나처럼 불쑥 꽃다발을 건네줄 수 있는 누군가와 약속이라도 성사되었으면 좋겠다. 그것도 아니면 유튜브 채널처럼 내 취향이 듬뿍 담긴 선물을 들고 올 누군가를 집으로 초대라도 해야 할까보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내 취향을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을 선뜻 내밀어 줄 나의 사람은 누구일까?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그리고 부담스럽지 않고 기꺼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거리가 어느 지점인지 알고 있는 그 사람은 누구일까?
나의 취향을 알아줄, 가장 나의 취향인 그 사람을 오늘도 수소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