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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음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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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정 May 29. 2024

엄마라는 이름으로

네게 머문 마음

  교수로 유명해진 아들은 드디어 tv에 출연하게 되었다. 병상에 누워있던 어머니는 tv에 출연한 아들의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된다. 아들을 본 어머니는 고요히 눈물을 흘린다. 고생하며 키운 아들이 텔레비전에 나올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 되었기에 기뻐서 우는 건 아니었단다. 혹여 아들이 일이 많아 고생스러울까봐 우는 것도 아니었단다. 어머니는 그저 다른 출연자는 살이 올라 통통한데 TV 속 당신 아들은 너무 말라 보여 마음이 아팠단다. 어머니는 60이 넘은 아들이, TV에 나올 정도로 유명해진 아들이 여전히 밥도 못 먹고 다닐까봐 걱정이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교수님은 돌아가신 어머님과의 작은 에피소드를 말씀하시며 흐리게 웃으셨다. 엄마라는 자리는 아버지라는 자리로는 대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고 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엄마여서 얼마나 좋으냐고 하셨다. 그 후 돌아가신 어머니에서 뻗어 내려온 당신의 손녀 이야기도 하셨다. 당신도 아들만 둘이라 딸 키우는 재미를 몰랐는데 손녀가 생기자 그 아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하셨다. 어쩌면 그 손녀는 교수님의 어머니가 남겨놓으신 최고의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엄마는 세상에 부러울 게 없는데 딱 한 사람이 부럽다고 했다. 그것은 바로 엄마가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엄마가 살아계셔서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고 해 드리고 싶은 게 있을 때 마음껏 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더 많은 것들을 해 드리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셨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지 근 30년이 되어간다. 엄마의 부러움은 세월의 옷을 껴입으며 옅어지기 보다 그만큼 농익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가끔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이 제일 좋은 시절이 아닐까 하고. 지지고 볶긴 해도 커가는 아이들도 내 품 안에 있고, 부모님들도 건강하시니 이보다 좋은 순간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보고싶으면 만나고 여의치 않으면 전화를 건다. 해 드리고 싶은게 있으면 기꺼이 해 드리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함께 하며 마음을 이어 나간다. 가끔 엄마 음식이 그리우면 해 달라고 하고 그 음식들은 엄마의 정성을 싣고 우리 집 냉장고에 금방 도착한다. 나는 그 음식들을 먹고 힘을 얻고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젊었던 엄마는 워킹맘인 나와 달리 항상 내 곁에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가면 언제나 기다렸다는 듯 엄마가 있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간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엄마의 요리는 항상 따뜻하고 맛있었다. 피자가 흔치 않던 시절, 엄마는 직접 피자를 만들었고 돈까스며 햄버거도 손수 다 만들어 주셨다. 반찬은 항상 바뀌었고 국이나 찌개는 끼니마다 당연히 먹는 건 줄 알았다. 도시락도 싸야 하던 시절이었는데 지금처럼 색색의 재료와 캐릭터들이 등장하는건 아니었어도 뚜껑을 열 때마다 검증된 맛이 허기를 더하곤 했다.     


  게다가 집은 또 얼마나 반짝거렸는지 모른다. 로봇청소기도 없던 시절, 우리 엄마는 하루 두 번씩 청소를 했다. 이 또한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실내 계단으로 이어진 이층 집이 언제나 깨끗했던 건 엄마의 걸레질이었다. 집은 언제나 안락하고 쾌적했고 같은 자리에 가구가 오래 머문다 싶으면 어김없이 구조가 바뀌곤 했다. 철마다 꽃을 피우던 정원도 언제나 잡초없이 깨끗했고 모든 곳이 정갈했다. 집을 그렇게 가꾼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노고가 들어가는지 그때는 몰랐다. 그것이 우리의 유년기를 안락하게 만들어 준 엄마의 사랑방식이었다는 것도 엄마의 집과 정원이 사라지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시간은 엄마와 단둘이 시장을 가던 순간이었다. 시장에 가서 맛있는 것을 사 먹는 것도 아니었고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을 사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엄마와 단둘이 시장가는 것이 즐거웠다. 지금처럼 대형마트들이 있던 시기가 아니라서 우리는 항상 집 앞에 있던 자그마한 재래시장을 다녔다. 매끼니마다 우리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책임져 주던 엄마의 요리는 잦은 장보기가 수반되어야 했다. 장 본 물건이 많아지면 내가 나누어 든다. 엄마와 시장을 다니며 무슨 이야기를 했었는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도 시시콜콜한 일상적 이야기들이었겠지? 그런데도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면 언제나 있던 엄마가, 나와 함께 시장을 가던 엄마가, 우리가 함께 있던 그 시간의 온도가 너무나 좋았다.     


  중3이 된 큰딸과 중1이 된 작은 딸은 아직도 내가 집에 있길 바란다. 학교에 다녀오면 엄마가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아직도 한다. 여전히 안아달라고 하고 내 입에서 칭찬이 나오길, 내 입에서 위로와 응원이 나와 자신들의 가슴에 쌓이길 바란다. 남편은 무척 자상하고 다정한 아빠인데도 아빠에게 집에 있으란 말은 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마음의 경중을 따지자면 남편의 마음이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않을텐데도 엄마가 곁에 머물기를 더 원하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내가 엄청나게 훌륭한 엄마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체력이 늘 부족하여 직장에서 돌아오면 번아웃 되기 일쑤다.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누워있어야 하고 저녁을 준비하려면 재충전이 되어야 움직일 수 있다. 요리와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고 정리정돈을 좋아하긴 하지만 현실은 내 마음의 절반도 못 따라준다. 방전된 체력으로 내 한 몸을 건사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기에 아이들에게 늘 피곤한 모습만 보여주는 건 아닌가 싶어 자주 의기소침해진다.


  육체적인 부분을 대신하여 내가 잘 쓰는 방법은 심리적인 부분을 채워주는 거다. 몸은 침대에 누워있어도 입 속에는 칭찬과 응원을 담으려고 노력한다. 한 번 더 안아주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려 애쓴다. 물론 불쑥 화를 내기도 하고 같은 말을 여러 번 하게 될 때는 목소리가 커지기도 한다. 힘을 빼 보려고 노력하지만 오랜 직업인으로서의 삶이 목소리에 묻어나는 느낌이다. 직장에서는 다정하기 그지 없으면서 가족들에게는 그렇지 못함을 자주 반성하곤한다. 하지만 마음에 묻어 둔 좋은 엄마라는 나무는 칭찬과 응원이라는 햇살 쪽으로 늘 기운다. 때로 시험 날이 되거나 현장학습이라도 가는 날이면 쪽지를 써서 마음을 전하기도 한다. 비록 몸은 늘 곁에 있어 주지 못하더라도 마음만은 저희들의 곁에 있다는 것을 순간순간 상기시켜 주고 싶다.     


  우리 딸들은 나와 함께 한 시간 중에 어떤 시간들을 떠올리게 될까? 내가 엄마의 요리들을 그리워하듯 우리 딸들도 나의 요리를 그리워하게 될까? 이렇다 할 만한 요리가 없는 건 아닐까? 요리 대신 언젠가 내가 보낸 엽서나 내가 했던 말들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딸들이 무엇을 떠올리든 나에 관한 한 그녀들의 엄마가 바로 나여서 참 좋았다고 기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딸들이 우리 엄마처럼 엄마있는 사람을 부러워할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고 싶다. 오랫동안 그녀들의 곁에서 건강하게 함께 하고 싶다.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는 그들의 시간을 곁에서 함께 쌓고 싶다.      


  나를 엄마로 만들어 준, 또한 내가 엄마라고 부를 수 있게 해 준 나의 그녀들이 새삼 고맙다. 내가 엄마를 부르던 순간도, 나를 엄마라고 부르던 순간도 모두 다른 시간과 다른 목소리였으나 마음에서 뿜어져 나오던 따사로움은 늘 한결같다.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언젠가 엄마가 될지도 모를 그녀가 이미 엄마가 되어 버린 나를 부른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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